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계획에 없던 일인데 연결 연결해서 나를 포함하여 5명의 친구가 모였다. 여의도의 유명한 해물탕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낮술 한두 잔씩 했다. 그래도 아쉬워 근처 호텔 바로 자리를 옮겨 커피 한 잔을 하고 헤어졌다. 계산은 5명의 친구 가운데 돈을 가장 잘 버는 두 친구가 했다. 두 친구 중 한 친구는 약간 촌티 나고 나이 들어 보인다고 해서 대학때, 장구벌레, 아저씨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K다.
K는 헤어지기 전에 나에게 열심히 사는 게 보기 좋다고 말했다. 직장 다니면서 직장인 밴드도 하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게 멋져 보인다는 것이다.
K의 말대로 나는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대학원 시절엔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 조교 생활과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고 날밤을 새면서 공부했었다. 사회생활하면서도 박사과정을 했고, 회사 일과 드럼 연습과 밴드 생활을 했다. 책도 열심히 읽고, 음악도 열심히 듣고 글도 많이 썼다. K의 말처럼 나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런데 열심히 산다는 말은 좋게만 들리지 않는다. 열심히 산다는 말의 의미는 성실하게 살고 방탕하지 않으며 헛되지 않게 산다는 의미일 텐데, 그 말의 이면에는 열심히만 산다, 또는 열심히는 사는데 되는 게 없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슷한 의미의 말이 또 있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공부 열심히 한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공부만 열심히 했지 성적은 별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진짜 공부 잘해서 성적이 좋은 친구들에겐 공부 열심히 한다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냥 공부 잘한다고 하지.
영화 <부당 거래>에서 검사인 유승범이 태경 사장과 골프장에서 골프 치는 장면에 이 비슷한 말이 등장한다. 태경 사장이 어느 괴한으로부터 칼을 맞고 쓰러지자 그의 비서가 달려가 넘어지는 장면에서 유승범이 이렇게 말한다.
"정말 다들 열심히들 산다. 열심히들 살어~"
친구는 내가 사는 게 답답해 보였을까? 가끔씩 골프도 치러가고, 영업을 빙자하여 돈 좀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 머리가 복잡할 땐 해외여행도 다니면서 사는 게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에 비해 나의 모습은 답답해 보였을 수도 있다.
아직도 난 열심히 살고 있다는 얘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듣고 있다. 열심히 사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관심도 없다. 지금 하는 일도 많고 재밌다. 다른 것 할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