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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사모(꼬막을 사랑하는 모임)

by 조작가

어머니께서 명절에 꼭 빠트리지 않고 만드는 음식이 꼬막이다. 추석에 송편, 설날의 떡국과 같은 명절 대표 음식조차도 명절 음식에서 빠진지 오래지만 꼬막만큼은 빠진 적이 없다. 꼬막이 송편이나 떡국보다 손이 덜 가는 건 아니다. 오히려 손이 더 많이 가고 나름 기술도 필요하다. 조정래 선생님은 <태백산맥>에서 꼬막은 주름이 많아 씻기 까다롭고 질겨지지 않도록 슬쩍 삶아내는 기술이 필요한 재료라고 언급했다. 어머니는 순전히 나 때문에 그런 수고스러움을 기꺼이 하시고 계신 거다. 어머니의 꼬막 요리는 꼬막 껍데기를 한쪽만 까서 껍질과 함께 꼬막에 양념간장을 버무려서 만드는데 그 맛이 예술이다. 더구나 맛있는 음식이 많은 명절상에 누구 하나 꼬막에 손대지 않으니 나는 여유 있게 꼬막을 즐길 수 있다.


꼬막과의 첫 만남을 난 뚜렷이 기억한다. 그건 마치 첫사랑의 짜릿함과도 같았다. 그러니까 그때 난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외할아버지 환갑잔치가 있던 외갓집에서의 일이었다. 모두 잔치상 준비하느랴 정신없을 때 나는 혼자 놀고 있었다. 그러다 광 하나를 발견하고 그곳에 들어갔다. 광에는 큰 마대자루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엔 삶은 꼬막이 가득 있었다. 그것이 나와 꼬막의 역사적인 첫 만남의 순간이다. 하나를 꺼내 먹었는데, 짭조름하면서도 탱글탱글하고 담백한 맛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예 마대자루에 얼굴을 처박고 하루 종일 외할머니가 만드신 꼬막을 먹어치웠다.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 뭐든 잘 먹고 가리지 않는다. 그래도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뭐가 있냐고 여러차례 묻는다면 꼬막이라고 답한다. 나처럼 꼬막 좋아하는 친구 녀석이 있다. 그와 만날 땐 으레 만나는 장소의 꼬막 집부터 검색창에 넣고 검색한다. 꼬막 한 접시면 막걸리 두어 병은 그 자리에서 해치울 수 있다. 그 친구와 난 세상에 둘 밖에 없는 '꼬사모'(꼬막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이다.


그와 자주 가는 단골집은 가성비가 좋다. 싸고 푸짐하게 나온다. 소위 맛 집이라고 알려진 꼬막 집은 대체로 한정식집인데 그 양이 사람을 간질 나게 하는 데가 있다. 그래서 술보다 꼬막이 먼저 떨어지곤 하는데 단골집인 그 꼬막 집은 친구와 경쟁하듯 먹어도 아쉽지 않게 먹을 수 있다. 너무 알이 작거나 너무 알이 큰 건 맛이 없는데 적당한 중간 크기의 꼬막만 선별해서 나온다. 조정래 선생님은 <태백산맥>에서 양념 솜씨에 따라 집집마다 다른 꼬막 무침 맛이 난다고 했다. 양념이 꼬막 맛을 좌우하는데 나는 꼬막을 까서 꼬막알만 양념에 묻히는 것보다 반쯤 벌린 껍데기에 양념을 묻힌걸 더 좋아한다. 그렇게 버무리면 양념의 맛과 꼬막의 맛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꼬막 특유의 쫄깃함이 산다. 꼬막과 함께 양념간장 한 종지를 주는데 위와 같은 방식으로 먹게 되면 양념간장 3-4 종지가 필요하다. 얼굴에 약간의 철판을 깔고 양념간장을 계속 달라고 해서 꼬막을 먹어야 하는데 그래서 단골집이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그리고 마지막엔 젓가락으로 껍질이 까지지 않는 꼬막을 숟가락으로 따서 먹는다. 꼬막의 엉덩이쪽에 숟가락을 넣고 병따듯이 따면 왠만한 꼬막은 그 속살을 드러내고 만다. 그렇게 해도 안 따지는 꼬막은 상한 꼬막이기 때문에 아깝지만 버려야 한다. 숟가락으로 따서 먹는 마지막 꼬막은 양념간장에 버무리지 않고 그냥 담백하게 즐기는 편이 좋다.


벌교는 꼬막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전라도에선 꼬막이 잔칫상이나 명절에 빠지지 않고 올라간다. 벌교를 배경으로 한 <태백산맥>에서도 꼬막이 자주 등장하는데 두 가지 이미지로 꼬막은 그려지고 있다. 사랑하는 남자 정하섭과 하룻밤을 지낸 소화가 다음날 그를 위해 아침밥을 지어야 했다. 소화는 마땅한 반찬거리가 없자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한' 꼬막을 반찬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하섭과 하룻밤을 보낸 그 다음날 매일 찾아오던 꼬막 장수가 오질 않자 소화는 안타까워한다. 이 장면에 소화의 애틋한 사랑이 잘 담겨있다. 소화의 꼬막이 애틋함이라면 염상구의 꼬막은 직설적이다. 염상구는 외서댁을 취한 뒤에 외서댁을 '쫄깃쫄깃한 것이 꼭 겨울 꼬막 맛'이라고 표현했다.


<태백산맥> 문학관을 핑계로 벌교에 가서 '어머니의 꼬막' 이든 '외할머니의 꼬막'이든 아니면 '소화의 꼬막'이든 '외서댁의 꼬막'이든 실컷 먹고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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