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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겔 투혼

by 조작가

'링겔'(링거가 맞춤법에 맞지만 우리가 관용적으로 링겔로 부르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했다) 다음에 관용구처럼 붙는 단어는 '투혼'이다. 그런 링겔 투혼을 나도 여러번 해봤다. 보통 일이 몰리는 연말에 감기와 겹치면서 한 번씩 맞곤 한다. 그 해 겨울엔 두 번이나 링겔을 맞았었다. 한 번은 공연을 앞두고 또 한 번은 강의를 앞두고서 말이다.


그 해 겨울 직밴 공연을 앞두고 몸살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공연을 앞두고 리더가 '촌스럽게 감기에 걸리지 마라. 감기 걸렸다고 관객들에게 말해봐야 관객이 그거 감안해서 들어주지 않는다. 몸 잘 챙겨라'라고 말했는데 하필 몸 관리 잘해오다가 공연 일주일 앞두고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낌새가 있자마자 병원을 열심히 다녔지만 공연 전날까지 컨디션이 좋지 않아 결국 링겔을 맞았다. 그리고 이른바 링겔 투혼을 발휘해 공연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아 집중력에서 차이를 보이고 말았다. 리더 얘기처럼 참 촌스러운 짓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지금이야 글쓰기 강의를 한다고 긴장하거나 아프지 않은데 나의 첫 글쓰기 강의 때 아팠었다. 강의 3일 전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그때 PT라는 걸 처음 받았는데 근육까지 단단히 뭉쳐 감기인지 몸살인지 헷갈릴 정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결국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한참 진찰하더니 독감이 의심된다며 나에게 독감 검사를 권했다. '만약 독감이면 타미플루만 먹으면 금방 나을 수 있고 푹 쉬면 괜찮다'라는 것이다. 나는 의사에게 '내일 정말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펑크내면 안됩니다.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니 뭐가 됐든 내일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라고 사정했다. 다행히 독감은 아니었다. 나는 감기 주사도 맞고 약을 타고, 그리고 링겔도 맞았다. 나의 절박함을 의사는 알았을까? 지난번에는 5, 6만원 대의 중가 링겔을 놓더니 이번엔 9만 원대의 최고가 링겔을 놔줬다(역시 장사는 이렇게 해야 한다). 다음날 강의 때 목이 따끔따끔거리고 열이 난 상태에서 4시간 강의를 무사히 마쳤다. 하지만 100% 컨디션이었다면 훨씬 좋은 강의를 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의 링겔 투혼을 두 번씩이나 목격한 친구는 그게 다 내 탓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일을 앞두고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반부터 달리기 시작해서 페이스를 한껏 끌어올리다가, 정작 골인 지점에서는 체력이 바닥나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한다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동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실력보다 늘 시험을 못 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초반부터 의욕을 보이고 무리하게 페이스를 끌어올려 정작 골대 앞에서는 헛발질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내가 초반을 여유롭게 시작하고 후반에 스포트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체질에 맞는 페이스가 있다. 뭐 다음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또 링겔 투혼을 발휘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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