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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 좀

by 조작가

직장인 밴드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실력도 아니고 음악 지식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예의고 그중에 기본은 약속 시간이다. 지난번 오디션에 참여한 남자보컬은 무려 40분이나 늦었다. 그의 집에서 합주실까지 40분 거리라니까 그는 약속시간이 되어서 출발했던 것이다. 노래 실력으로만 보면 뽑고 싶었지만 우리는 그를 멤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며칠 전 지인 소개로 만난 분도 무려 30분이나 늦게 약속 시간에 도착했다. 유쾌하고 재밌고 에너지 넘치는 분이었지만 그의 이야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신뢰가 가지 않은 이유는 그가 약속 시간을 어겼기 때문이다.

지하철에서 통화하는 사람이 많다. 듣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그의 사생활은 그 칸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게 된다. 그는 왜 싸우게 됐는지, 왜 자기가 기분이 나쁜지를 웅변하듯이 크게 말한다. 그의 가족관계와 직장생활, 사회경제적 배경까지 다 알 정도로 길고도 복잡한 통화가 이어진다.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이럴 땐 책을 덮고 이어폰을 꺼내는 게 상책이다. 아버지는 가족끼리 있을 때도 전화를 꼭 한 손으로 가리고 목소리를 한껏 낮춰 통화하신다. 아버지로부터 배워서인지 나는 지하철에서 전화하는 법이 없다. 혹시 걸려오는 전화가 있다면 아예 받지 않고 지하철에서 내려 통화를 한다. 급한 전화면 작은 목소리로 지하철에 내려 연락하겠다고 하고 바로 끊는다.

자전거 탈 때나 등산할 때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 사람이 있다. 스피커를 달고 라이딩하는 바이크족이 많아지면서 조용히 감상해야 할 수변공원은 불타는 금요일 밤의 홍대 클럽이 된다. 좋은 음악이라면 나도 감상하겠지만 대개는 이들의 음악은 뽕짝이다. 2박자의 빠른 비트에 날카로운 추임새를 듣다 보면 정신을 놓기 십상이다. 이런 음악에 풍경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상대의 말이나 글을 제대로 듣지도 읽지도 않고 제멋대로 말을 하고 덧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난독증이 아닌가 의심된다. 약간의 은유나 비유라도 있다면 다르게, 심지어는 반대로 이해한다. 글쓴이의 의도는 무시되고 오직 자기 말만 해댄다. 최소한 누군가의 말이나 글에 반응을 하려면 그가 하는 말이나 글부터 이해하려고 애써야 한다. 그런 노력이 바로 예의다. 그럴 능력과 성의가 없다면 덧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 어떤 소설가가 말했다.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을 누군가 마구잡이로 읽는다면 기분이 좋겠냐고? 글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값싸게 구입하는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읽어줘야 한다.

강의가 끝났는데도 계속 피드백을 요청하는 학생이 있다. 서비스를 공짜로 요구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마치 변호사에게 법률 자문을 그냥 해달라고 하거나, 회계사에게 기업 밸류에이션을 그냥 해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물건에는 값이 있고, 서비스에는 비용이 있다. 공짜라고 생각해 계속 요구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큰 사고로 나라 전체가 슬픔에 빠져 있는 경우가 있다. 슬프고 안타깝다. 슬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슬픔을 비웃는 이들이 있다. 이건 마치 집이 불타 모두 죽었는데 자기가 맡긴 이쑤시개도 불타 없어졌다며, 자기 이쑤시개 내놓으라고 난리 치는 것과 같다. 이게 과연 인간인가?

위의 사례는 최근에 모든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이다. 혹시나 자기 행동이 예의에서 벗어나지 않는지 늘 살펴야 한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공감한다면 충분히 지킬 수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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