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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맥주

by 조작가

하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커피 마시기다. 일어나서 머리 감고 양치질하고 옷 입는 출근 준비를 제외하고서 말이다(휴일엔 눈 뜨자마자 커피부터 마신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를 '모닝커피'라 하는데 이 모닝커피를 마셔야 비로소 하루가 시작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온몸으로 커피가 퍼지는 게 느껴진다. 그 기분은 정말 기가 막히다. 살아있는 게 느껴진다. 커피는 공복을 달래주고 갈증을 해소해준다. 사실 이건 심리적인 부분이 크다. 커피는 실제로는 칼로리가 없기 때문에 공복 해소에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물을 밖으로 배출시키게 하는 음식이라 더 갈증을 유도한다. 커피를 마셔야 머리가 개운해진다는 것도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 어쨌든 심리적으로는 커피가 공복과 갈증해소, 머리 회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마신다. 여기에 모닝커피가 필요한 결정적으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아침에 화장실을 잘 가는 편인데 언제부터인가 그게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셔야 화장실을 편하게 갈 수 있다. 오전에 외부 미팅이 있을 경우 바로 현장 출근을 하게 되는데 그때 모닝커피를 못 마시게 되면 화장실 갈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하루를 가볍게 시작하는 것과 무겁게 시작하는 것은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외근을 오후로 잡고 오전엔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모닝커피를 즐긴다.


오후의 커피를 왜 모닝커피처럼 '애프터눈 커피'라 부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점심을 먹고 점심보다 더 비싼 커피를 한 잔 마시는데 모닝커피가 화장실을 위한 커피라면 점심 커피는 직장인의 수다를 열어주는 커피다. 우리 또래끼리 모이면 상사를 욕하고, 상사와 함께 하는 커피라면 직장을 욕하는 매개 수단이 된다. 2500원짜리 구내식당 밥은 먹어도 4000원짜리 커피 정도는 마셔줘야 한다. 그래야 잘 나가는 직장인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다. 오후 3,4시는 잠이 쏟아지는 시간이다. 이때도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잠과의 싸움을 벌인다. 그렇게 화장실과 대화와 잠을 깨는 수단으로 하루에 3잔의 커피를 마신다.


하루에 가장 나중에 하는 일은 맥주 마시기다. 맥주 마시기는 공복과 갈증해소 그리고 수면제 역할을 해준다. 저녁에 출출할 때 야식 대신에 맥주를 마시고 운동을 끝내고 갈증 해소를 위해서 맥주를 마신다. 맥주가 가장 필요한 것은 수면제로서의 맥주다. 하루에 마신 커피양에 비례해서 맥주를 마셔야 한다. 이를테면 커피 한 잔을 마셨다면 500미리 맥주 한 캔이 필요하고, 커피 두 잔을 마셨다면 맥주 두 캔, 1000미리가 있어야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다. 커피가 각성제라면 맥주가 수면제인 셈이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커피를 안 마시면 아침에 화장실 가기가 힘들고, 커피를 마시면 잠이 안 와 맥주를 찾는다. 그러다 보니 점점 커피와 맥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커피가 이길 때는 잠을 설치게 되고 맥주가 이길 때는 바로 골아떨어진다. 어쩔 때는 커피와 맥주 간의 승부가 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도 있다. 가장 당한 양은 하루 한잔의 커피와 한 캔의 맥주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잘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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