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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Jul 15. 2020

10년은 노력해 봐야 안다

영화〈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경형 감독 이야기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3년은 필요하다고 한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3년은 전문가가 되기 위한 초입에 이른 정도다. ‘풍월을 읊는다’는 것은 누군가 말하는 것을 따라 할 정도인 것이고, 나만의 주관이나 가치관을 가진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적어도 5년은 해봐야 좀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고, 10년을 하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인 회사의 직급 체계에서 사원 4년, 대리 4년 정도 8년을 근무하면 그 분야에 대해서 ‘풍월’을 읊을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좀 더 노력하면 나만의 이론을 정립할 수도 있다. 과장이나 책임이 되면 좀 더 큰 그림을 보게 되고, 업무에 대한 스코프가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10년 정도 일을 하면 나의 업무 분야 관련해서는 웬만한 지식을 갖게 되고, 문제점과 해결책도 곧잘 찾는다. 


 맬콤 글래드웰이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제창한 1만 시간의 법칙을 예로 들어보자. 세계 정상에 오른 사람들을 분석해 본 결과 그 분야에서 1만 시간의 훈련과 공부를 했다는 법칙이다. 회사원의 경우 8시간 근무를 한다고 가정하면, 회의 시간과 이메일 읽는 시간 등을 제외하면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는 시간은 대략 3~4시간 정도일 것이다. 휴일을 제외하면 1년에 1,000 시간 정도다. 결국 10년은 노력해야 1만 시간이 된다. 물론 이는 분야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평일 하루에 8시간을 투자해도 5년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 또는 2년 정도 노력을 하고, 적성에 맞지 않아서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정말로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더 늦기 전에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이 분야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좀 더 참고 노력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 


 만약 내가 세계적인 제빵사가 되기로 했다고 하자. 나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제빵 기술을 익혀서 빵집에 취직했다. 하지만 일은 너무 힘들고, 월급은 쥐꼬리만큼 작다. 예전에 품었던 열정은 사라지고 다른 일을 찾게 된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주변의 시선이다. 아무리 열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의 가족의 지지가 없고, 친구들은 다른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서 직장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심한 갈등을 하게 된다. 애초에 나의 목표 의식이 점차 사라지게 된다. 


 나는 대학 시절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 휴학했다. 전공과목이 나와 잘 맞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고,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시도해 보고 싶었다. 1년 정도 음악을 하고 도저히 음악가의 길은 나와 맞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가요제에도 나가보고, 작곡도 여러 편했지만 규칙적인 삶을 좋아했던 나에게 불규칙적이고 불확실한 음악가의 삶이 잘 맞지 않았다. 물론 10년간 음악가로서 노력을 했다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지만 말이다. 

 그 후로 반도체 회사에 취직한 후 음악을 다시 시작했다. 30세에 시작해서, 39세에 앨범을 냈다. 7년간 재즈 피아노 레슨을 받고, 밴드 활동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맛을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회사 내 행사에서 공연도 하고, 결혼식, 재즈 페스티벌, 재즈카페 등 다양한 무대에 섰다. 그렇게 10년을 노력한 후 39세에 그동안 작곡한 곡들을 집에서 미디로 작업한 후 앨범을 냈다. 집에서 마스터링을 해서 퀄리티는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나만의 앨범을 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었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회사를 10년간 다니면서 많은 고생도 하고, 진로에 대해서 걱정도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한 덕분에 10년 후에 비로소 인정을 받았다. 스스로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평할 정도였다. 그렇게 인정을 받아서 다른 부서로 옮겼고, 다시 시작했다. 내가 모르는 분야였기 때문에 또 고생을 하고, 공부를 해야 했다. 그래도 일을 배우면서 성취감을 느꼈고, 심지어 즐거웠다. 이 부분은 와이프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어떻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정말로 그랬다. 밤늦게 퇴근해도 일이 즐거웠다. 결국 또다시 10년을 보내고 나니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평했고, 회사에서도 역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새로운 10년을 바라보고 있다. 앞으로 2030년을 바라봤을 때 내가 어떠한 모습이 되어있을지 상상해보면서 새롭게 꿈을 키우고 있다. 


 2003년 개봉해서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김경형 감독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떤 일이든 10년은 매달려봐야 그 일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재능이 있는지, 이 일을 좋아하긴 하는지 그런 감은 적어도 10년은 해봐야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퇴로를 끊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 《데뷔의 순간》중에서 


 김 감독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정말 눈물겨운 스토리가 따로 없다. 그는 경희대 신문 방송학과를 졸업해서 KBS에서 근무했다. 순탄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았지만 영화가 너무 좋아서 회사를 그만두고 충무로에 뛰어들었다. 그는 미래의 와이프가 될 사람에게 영화감독이 되면 바로 결혼하자고 했지만 결국 영화는 제작하지 못한 채 결혼을 했다. 촬영장을 다니면서 조감독 역할을 하고, 변변한 작품 하나 못 맡으면서, 계속 시나리오를 썼다. 쓰고, 쓰고 또 썼다. 그중에는 드라마로 제작된 것도 있지만 그냥 묻히고 사라지는 시나리오도 태반이었다. 하지만 그는 감독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와이프는 직장 생활을 하고, 김 감독은 아기를 돌보면서 집에서 시나리오를 썼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에 점차 불안감을 느꼈다. 스스로 낙천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동료들의 성공 소식을 들으면서 그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독립영화를 찍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신임 감독이 되었다. 그때 그는 이미 마흔을 넘겼다. 


 그 이후로 그는 꾸준히 좋은 작품을 내면서 영화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고, 그가 말한 대로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자학과 스스로를 가엽게 여기는 자기 연민의 도돌이표”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때 그를 지지한 것은 그를 믿어준 아내의 내조와 ‘영화 외에는 하고 싶거나 잘할 자신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어떤 일에 열정이 있는지, 재능이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직접 해봐야 안다. 나는 음악을 10년 넘게 하면서 나의 수준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스스로 음악을 즐기고 있고, 가끔은 다른 이들에게도 기쁨을 준다. 글을 쓴지는 3년 가까이 되고 있지만 아직 글로 먹고 살기에는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 꾸준히 그리고 틈틈이 글은 계속 쓸 계획이다. 


 5G 시대를 맞이해서 모든 것이 더 빨라지고 있다. 빠른 다운로드, 빠른 처리 시간 등.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다가온다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릴 머신이 있을 것이다. 결국 너무나 빠른 답변과 결과에 익숙해지면서 우리의 인내심은 반비례해서 빠르게 사라진다. 하지만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3년, 그리고 10년은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꾸준히 도전해야 한다. 물론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하지만, 그 분야 외에 다른 분야가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면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적성에 맞지 않는 것’과 ‘포기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을 돌아보자. 나는 이 일을 사랑하는가? 관심을 갖고 있는가? 호기심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10년 동안 노력할 만한 일인가? 10년 후 나의 모습을 어떨까? 


 답을 내리기 힘들다면, 눈을 잠시 감아보자. 10년 후 그 분야에서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 자리에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되는가? 아니면 떠오르지 않는가? 나의 마음은 답을 알고 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탐색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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