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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Aug 09. 2020

아첨과 진심의 차이는 무엇일까?

 과연 나는 아첨꾼일까? 아니면 순수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子曰 事君盡禮 人以爲諂也
 자왈 사군진례 인이위첨야


 공자가 말했다. “내가 군주를 섬기는 일에 예禮로써 최선을 다하는 것을 사람들은 아첨한다고 여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어떻게 이런 말이 나왔을까? 결국 내가 좋은 의도에서 한 행위가 남들이 보기에는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분명히 사랑한다고 생각해서 행한 로맨스가 남들이 보기에는 명백히 불륜이고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위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착각 속에 산다. 내가 하면 문제가 없지만 남이 하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아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를 다치게 하면 그것은 정당방위라고 생각하거나 다른 아이가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봐도 우리 아이의 잘못인데도 끝까지 그것을 믿지 않으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심리일지 모른다. 내가 잘못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회사 초년생이었을 때 선배 한 분이 계셨다. 그분은 누구보다 윗분들한테 잘하고 인정을 받았다. 우리끼리 술 한 잔 하자고 이야기를 하고 나갈 때, 윗분의 전화가 오면 우리와 약속을 너무나 쉽게 취소하고 갈 정도였다. 물론 윗사람이 부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이해가 갔지만 섭섭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선배가 아부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분은 직장 상사가 자신을 생각해서 부른 것이기 때문에 진심을 다했을 뿐이다. 그 상황에서 누가 상사의 청을 거절하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윗분들한테 아부를 해서 혜택을 본 사람들도 종종 봤다. 고과를 잘 받거나 교육 혜택을 받는 경우다. 명절에 상사에게 선물을 갖다 주거나(회사에서는 금지했지만) 윗사람들이 좋아하는 바를 잘 파악해서(업무 외적인) 그것을 맞춰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만큼 그들은 충성을 보이고 최선을 다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명백하게 ‘아첨’이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다수의 사람들은 씁쓸한 미소를 짓거나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상사에게 ‘최선’을 다한 것뿐이다. 상사에 대한 관심과 충성을 보여줬다. 어떻게 보면 꽤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표현이다. 물론 나중에 대가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말이다. 

출처 : Pixabay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다. 다른 사람은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어떤가? 


 여기 회사원 A가 있다. 회사의 지침에 충실하고, 위에서 내려온 숙제를 열심히 하고, 업무에서 승부를 보기 위해서 온몸을 바쳐서 일했다. 별보기 운동을 해도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누구처럼 업무 외적인 것으로 아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남을 신경 쓸 여유조차 없다. 내 일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새 그는 ‘아부 꾼’이 되어있다. 술자리의 도마에 오른 생선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낱낱이 파헤쳐진다. 

 “위에서 숙제가 내려와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고, 저항할 것은 해야 하는데 그냥 통과시켰다는 이유다.” 


 정말 난감한 경우다. 분명히 중요한 일이고, 그것을 누군가 해야 되기 때문에 먼저 나섰다가 매도당한다. 특히 중간 관리자가 되었을 때 이러한 현상이 심하다. 그러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회사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아부 꾼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내가 관리자라면 팀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부당한 일이거나 가치가 없는 일이라면 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업무라고 할지라도 그 본질을 파악하고 필요 없는 부분은 줄여서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그 부분은 상사하고 잘 이야기해서 풀어야 한다. 자칫 업무를 태만히 한다고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팀원들 전체에게도 손해를 끼치는 일이다. 


 답은 소통이다. 위가 되었든 아래가 되었든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팀원들의 이야기가 맞다고 생각하면 동조하고, 경영진의 우려를 무시해도 안 된다. 반대로 경영진의 우려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할 때는 조정 역할을 해야 한다. 아래, 위 듣기 싫은 소리가 있다고 해도 계속 들어야 한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찾아다녀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솔함’이다. 물론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누구나 승진을 꿈꾸고, 더 많은 연봉을 받기를 원한다. 그 누가 진솔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회사를 다닐 수 있겠는가? 그 이면에는 항상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결국 정도의 문제다. 나의 목적이 오직 ‘입신양명’이라면 잘못된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목표는 회사의 안녕과 구성원의 발전과 행복이어야 한다. 다소 고리타분하게 들려도 그러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행동거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출처 : Pixabay

 마지막으로 정말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아첨을 많이 하는 사람들일수록 나중에 부하들에게 바라는 것이 더 많다. 자신이 한 만큼의 아첨이나 의전을 원한다. 회사를 나의 것으로 생각하면서 온갖 혜택을 누리고, 부하직원들에게는 인색한 사람들도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부하 직원들을 배려하고 수위를 조절할 줄 한다. 


 낙심할 필요는 없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제 아첨으로, 또는 정을 호소하면서 승진하려는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다. 아니,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 공자가 말한 바와 같이 ‘예’를 다하여 윗사람을 모시는 것은 필요하다. 나보다 훨씬 더 인생의 연륜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면, 후배 직원들에게도 ‘예’을 다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의 ‘진심’이 덜 오해받을 것이다. 또한 나의 뜻을 더 높여야 한다. 개인의 영달이 목적이 아니라(결과는 될 수도 있겠지만) 회사와 구성원, 그리고 사회에 대한 환원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물론 그냥 ‘아첨’하고 살아도 문제는 없다. 오히려 플러스 요인도 많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제발 다른 사람에게 ‘아첨’을 강요하지는 말자. 나의 ‘예’를 갖추고 진심을 다하면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바라지 말자. 나보다 상대방, 회사, 사회를 더 생각하자. 그것이 바로 공자가 말한 진정한 ‘예’이고 군자의 길이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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