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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Aug 14. 2020

‘덕’을 베푸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다

덕은 쌓으면 쌓을수록 복리이자가 된다. 

 子曰: “德不孤, 必有隣.”
 자왈 덕불고 필유린
 공자가 말했다. “덕德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그 이웃이 있다.”


 선한 사람들이 인정받고, 잘 살아야 하는 것이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다. 바른 사고방식을 갖고, 의롭게 살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 말이다. ‘덕’을 갖춘 사람들은 사회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자. 남에게 베풀기 좋아하고, 자신이 가진 것(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을 기꺼이 나누어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다못해 밥 잘 사 주는 선배를 후배들이 더 따르게 마련이다. 


 반면 잘 나누어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잘 내놓으려고 하지 않고, 오직 출세에만 관심이 있다. 출세를 위한 방법도 잘 알고 있다. 상사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는 것이다. 성공 방정식에 따라서 해바라기와 같이 윗사람만 쳐다본다. 상사의 아바타가 되어서 희로애락을 같이 느끼면서 실적을 내기 위해 아랫사람들을 철저하게 이용한다. 


 사회에서는 업무와 표현(쇼잉 업) 능력을 보기 때문에 사실 ‘덕’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보여주기 힘들다. 사실 회사에서 남을 돕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공이 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남들에게 큰 도움을 주면서도 회사에서는 인정을 못 받는 분들 말이다. 누군가 그러한 보이지 않는 노력을 알아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덕을 베푸는 사람들은 업무를 잘 진행하기 위해서 양쪽을 조율하는 역할을 곧잘 한다. 양쪽에서 불평을 들어주고 토닥이면서 설득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일이 잘 처리되고 나면 음지에서 고생한 사람의 공적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덕’은 숫자로 표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숫자로 표현해야 하는 세상에서 ‘덕’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 고과 평가를 위해서 실적을 입력하는 곳에도 나의 업적 중에서 ‘일처리를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 중재했다.’, ‘사람들의 불평을 잘 들어주고 힘든 사람을 위로했다’와 같은 항목은 없다. 주로 업무 처리 능력, 리더십, 창의성, 독창성 등에 대해서 평가할 뿐이다. 

출처 : Pixabay

 그런데 조직을 매끄럽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중간에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린치핀》의 저자 세스 고딘도 감정노동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사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책에서 언급한 데이비드라는 직원이 있다. 그는 6년 동안 커피숍 체인에서 일했다. 저자가 놀란 것은 그의 태도였다. 이 직원은 굳이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인사하고, 고객들에게 세심하게 신경 썼다. 자신이 커피숍 주인이 아닌데도 말이다. 너무나 신기하게 생각해서 고딘은 그에게 질문을 했다. 


 “데이비드 씨, 어떻게 그렇게 일할 수 있나요?”
 “저는 축복을 위해서 일합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설계했다. 누군가에게 커피숍에서 일하는 것은 상당히 피곤하고 짜증 나는 일일 것이다. 단순한 일과 불평하는 고객의 응대도 받아줘야 한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자신의 일이 ‘선물’이고 ‘축복’이라고 믿었다. 고객들과 교감하는 것이 그에게 행복이었다. 

 만약 내가 이 커피숍의 주인이라고 하자. 직원이 세 명 있는데, 이 중에서 어쩔 수 없이 두 명을 해고해야 한다. 당신이라면 단 ‘한 명’을 남긴다면 누구를 남기겠는가? 커피를 매뉴얼에 따라서 잘 만드는 직원인가? 아니면 데이비드처럼 스스로 나서서 손님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직원인가?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기겠다. 


 4차 혁명을 겪으면서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이미 벌어지고 있다). 물론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되겠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반면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인간만이 갖고 있는 특징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덕’이라고 생각하고, 공자도 ‘덕’을 강조했다. 


 남들에게 잘 나눠주는 사람은 언뜻 보기에 손해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나눠줄수록 덕이 쌓이고, 사람들이 모이게 마련이다. 내가 회사에서 중요한 정보를 관련자들과 같이 나누는 것도 ‘덕’이면서 베푸는 행위다. 나 혼자만 정보를 독점하는 것은 단기적으로 이득으로 보이지만 결국 스스로 발전할 수 없다. 정보를 공개해서 같이 논의를 하고 조직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면서 나도 많은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또한 내가 정보의 중심이 되기 때문에 모든 정보가 나에게 흐른다. 나도 도움이 되고, 상대방도 도움이 된다. 결국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물은 흘러야 한다. 

출처 : Pixabay

 나의 것을 움켜쥔다고 해서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인가? 천년, 만년 그것을 가져갈 것인가? 고작해야 더 좋은 집, 더 비싼 음식과 술, 명예 등이 전부일 것이다. 그나마 명예는 권력을 움켜쥐고 있을 때뿐이다. 그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욕’과 ‘한’이 있다. 물론 욕을 많이 먹어도 상관없다는 사람도 있다. 내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그러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언가 마음에 맺힌 것이 있어서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러다가 마지막 죽음의 순간이 왔을 때 누가 그 사람을 찾아올까? 


 ‘덕’을 베풀면 당장에 이득은 없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평가 결과에 입력할 수도 없다. 하지만 세상은 갈수록 덕이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일을 잘하는 것은 로봇으로도 대체 가능하다. 중간에 중재하고, ‘감정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창조적인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돌아보자. 나는 예술을 하는 사람인가? 덕을 쌓는 사람인가? 아니면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고, 나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는가? 덕은 쌓으면 쌓을수록 복리이자가 된다. 당장 눈에는 안 보이더라도 언젠가는 나에게 돌아온다. 우리가 보통 멋진 풍광을 보게 되면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라는 식으로 덕을 이야기한다. 그만큼 덕은 꾸준히 쌓아야 한다. 덕을 베푸는 자가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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