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가족의 좌충우돌 40일간 미국 여행기
먼저 책의 제목을 보고, 정말 기발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보통 ‘위대한 유산’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위태하다’라는 표현을 썼다. 문득 궁금했다. 왜 위태하다고 했을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지만 왠지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유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위태한 유산은 ‘유산은 위태하다’는 의미다.
사실 유산이라는 것이 그렇다. 내가 유산을 받을 확률은 거의 없고 기대도 없지만, 유산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돈이 많은 집안은 자식들끼리 유산을 갖고 싸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형제자매 사이를 갈라놓은 유산은 위태하기 그지없다. 결국 물질적인 유산을 너무 기대하지 말고, ‘진정한 유산의 의미’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 답은 책의 뒷부분에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제준 작가가 또 한 명의 저자인 아빠 제해득 작가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아빠, 나 유산 줄 거야?’
‘그런 건 아빠 사전에 없다.’
유산이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자 아빠는
‘지금 이 순간순간의 모든 것이 유산이다’라고 말씀하셨다.” - 제준 작가
제해득 작가는 중소기업의 사장이다. 아직 물질적인 여유는 많지 않지만 언젠가는 자식들에게 유산을 물려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유산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마침내 미국 여행의 경비 대부분을 대면서 가족들에게 ‘소중한 경험’을 유산 중 하나로 남겨준다. 그랬기 때문에 순간순간 작가가 아들에게 해주는 말 한 마디와 경험이 모두 유산이라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아들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여행도 그 중의 하나였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해서 견문을 넓혀주고, 꿈을 키워주기 위함이었다.
이 책은 아빠 제해득 작가와 아들 제준 작가가 미국 여행기를 각자 써내려간 독특한 구조의 여행 에세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풍경, 멋진 가족사진 등도 감상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아빠와 아들의 진지한 삶에 대한 성찰이 돋보인다.
8명의 가족이 떠난 무려 40일간의 미국 여행. 그것도 서부에서는 캠핑카로 여행을 했다. 아빠, 엄마, 큰누나, 작은누나 가족, 큰누나의 딸 어린 예삐, 그리고 막내아들이 함께했다. 사실 가족 여행은 멋져 보이지만 대부분 여행지에서 많이 싸운다. 나도 부모님을 모시고, 형님과 내 가족 모두 7명이 일본 여행을 갔지만 각자 원하는 것이 달라서 도착 후에는 따로 여행을 다닌 적도 많다.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이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제해득 작가가 이야기한 바와 같이 가족 간에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서로 예의를 갖추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크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말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남이다.’” - 제해득 작가
제준 작가는 이미 《당신의 꿈은 안녕하신가요?》라는 책을 출간했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나만의 길을 가기를 선택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공황장애를 겪었고, 결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지만 자기 자신의 꿈을 찾아가고 있다. 이 여행도 그 일환의 하나인 셈이다.
이번 책은 저자가 직접 기획을 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안타레스’라는 임프린트 출판사를 만든 대표이기도 하다. 책의 디자인도 참신하고, 부자(父子)의 프로필을 서로 써줬다. 정말 참신한 시도다. 또한 글을 공동 집필했는데, 누가 집필했는지 이름이 없다. 그래서 글을 읽으면서 ‘아하’라고 깨닫게 된다. 노련한 글 솜씨가 느껴지는 제해득 작가, 그리고 감수성 깊은 글을 쓴 제준 작가. 이 글들이 잘 어울리면서 서로의 관점에서 여행을 서술해 나갔다.
“그들(동물과 식물)은 행복하지 않다. 아니, 행복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그냥 생존이 있고 그것 자체가 의미일 뿐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불행의 반대 개념으로 불행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결코 행복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이 만든 최고의 예술 작품 중 하나가 이곳이 아닐까 싶어”
“온전한 나로서 불안과 부딪히는 연습 덕분에 현재 약 없이 공황장애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여행은 서부에서 시작한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요세미티, 그랜드 캐년 등 이름만 들어도 너무 잘 아는 곳이다. 이곳에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가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그곳에서 다른 여행객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만든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에피소드 보다는 두 저자의 생각과 인생관에 점점 더 집중하게 된다. 그러면서 곳곳에 가족에 대한 소개와 애정도 잊지 않는다. 아마 이것이 ‘여행 에세이’의 진정한 매력이 아닌가 싶다.
이어서 동부로 여행을 가서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온갖 에피소드(재미있기도 하지만 당시는 굉장히 당황했을 경험)도 다 겪게 된다.
제준 작가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심각한 여행 후유증을 겪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자연과 멋진 풍경을 뒤로 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빠 제해득 작가도 마찬가지다. 다시 회사를 경영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제준 작가는 큰 깨달음을 얻는다.
“지루할 만큼 무난한 이 일상을 얼마나 갈망했던가” - 제준 작가
결국 여행은 여행일 뿐이다. 작가의 누나가 얘기한 바와 같이 가족끼리 멋진 풍경을 함께 한 것만으로도 낭만 그 자체다.
“작은누나: 엄청난 풍경 아래에서 우리가 다 같이 있으니까 너무 좋아. 아 진짜 먼 곳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낭만적이야.”
결국 인생도 여행이다. 우리는 오랜 여행을 하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 책은 가족의 좌충우돌 여행 경험담, 그리고 미리 가보는 미국 여행, 에세이, 인생, 사랑 등을 모두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COVID-19으로 여행을 못 가는 사람들도 대리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간간히 보이는 가족들의 사진도 반갑다.
그나저나 제해득 작가는 여행지에서 삭박을 했다. 새로 태어나기 위함이었다. 문득 나도 삭발이 하고 싶어졌다. 제준 작가는 앞으로도 자신의 꿈을 향한 여행을 계속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