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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Aug 23. 2020

《네가 무엇을 하든,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

한쪽 다리가 조금 ‘짧은’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한 ‘길고 긴 동행’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많은 울림을 준다. 사람들이 가장 고픈 것은 무엇일까? 물론 밥이 중요하지만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인정’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한다.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결국 사회에서 명예와 지위를 얻고, 남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함이다. 수많은 연예인을 꿈꾸는 아이들도 인정을 받기 위해서 그 어려운 도전의 길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인정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바로 가정에서부터다. 가정이 인정의 시작점이다. 인정은 사랑이다.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인정을 하게 된다. 아빠와 엄마가 어릴 적부터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감싸고, 인정을 하느냐가 그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 인정을 못 받은 아이들은 인정이 고프다. 


인정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출한다.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책을 열심히 읽거나 노래와 춤을 열심히 추거나 아니면 자신을 학대하거나 문제를 일으키면서 반항을 한다. 최악의 상황은 대화를 중단하는 것이다. 


저자는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따뜻한 인정의 말을 해준다. 부모조차도 못한 사랑의 마음을 베풀었다. 아이들은 사랑과 인정에 고팠기 때문에 저자의 한 마디, 한 마디에 큰 힘과 에너지를 얻었다. 물론 저자도 자신이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 점이 저자의 가장 훌륭한 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보통 어른들은 이미 자신의 아집에 갇혀서 내가 틀렸다고 잘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운영하는 공부방은 아이들의 은신처이면서 안식처였다. 저자는 이를 ‘케렌시아’라고 한다. 케렌시아는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를 의미하는데, 투우장에서 마지막 일전을 앞둔 소가 잠시 쉬는 공간이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도 그런 것이 아닐까? 거칠고 험난한 세상을 나가기 전에 집이 케렌시아고, 학교가 케렌시아인 셈이다. 하지만 나만의 안식처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안식처를 찾게 된다. 저자가 운영한 공부방도 마찬가지였다. 이 곳은 아이들에게 공부뿐만 아니라 상담도 제공하고, 숙식도 제공하고, 나중에는 학부모와도 상담을 진행했다. 


“본격적으로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보석 같은 아이들을 살려내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 일이 제가 했던 ‘24시간’ 밀착 수업입니다.” 


저자는 더 공부하고 나중에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심지어 상담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공부방을 운영하면서도 스스로 공부를 하면서 실력을 키운 것이다.


이 책에는 몇 명의 아이들이 등장한다. 아이들의 스토리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저자도 어릴 적에 장애인으로서 겪은 아픈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 아이들을 이해하고 쓰다듬고 안아주었다. 소외받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느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인정을 받고 싶어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회사 생활도 충실히 했다. 하지만 음악과 작가, 회사원이라는 여러 갈래 길에서 방황을 했고, 결국 글을 쓰면서 나의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는 회사원으로 전문가로서 성장하고 싶고, 또한 세상에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메신저이고도 싶다. 이 또한 결국 인정을 받기 위한 행위였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다. 저자가 인용한 바와 같이 “길이 닫힐 때 불가능을 인정하고 그것이 주는 가르침을 발견하라”라고 파커 J. 파머의 말이 더욱 가슴을 울린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닫힌 길을 발견하고는 한다. 우리는 좌절을 하기도 하고, 도전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만의 케렌시아가 필요하다. 전문가와 상담을 해도 되고, 나만의 멘토를 찾아도 좋다. 나 같은 경우는 책을 읽고, 사색하고, 명상을 하면서 그 답을 찾는다. 물론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공부방에서 함께 한 아이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담담히 펼쳐냈다. 아이의 가슴 아픈 이야기와 저자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아이의 아픔, 저자의 아픔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픔을 딛고, 나아가는 모습이 하나의 희망의 줄기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의 고민거리를 같이 느낄 수 있었다. 내 아이들도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사춘기다. 아이들이 이 책에 나온 아이들처럼 방황하고 힘들어할 때, 과연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어른도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가부장적인 어른의 자세가 아니라 아이의 눈높이로 고백하면 아이들도 이에 대한 답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결코 아이가 아니다.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이 있다. 어른이라고 무조건 많이 안다고 강요하면 안 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생각을 솔직히 전달해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곁에 두고 계속 상기시켰으면 한다. 


저자가 서문에 밝힌 바와 같이 이 책은 전문서가 아니고, 심리 에세이다. 그래서 더 편하게 잘 읽힌다. 어떻게 하라는 지시나 구체적인 가이드는 없지만 책을 읽다보면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내담자를 기다리는 전문상담사의 이론서가 아니다. 이 책은 아픔이 켜켜이 사여서 고개 숙여야 했던 10대와, 그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을 모르는 학부모,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심리학을 공부한 과외선생님이, 직접 체험하고 기록한 세 명의 시점으로 구성된 ‘심리 에세이’이며, 다시 아프다고 하는 청년들, 어른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하는 학부모들을 위한 ‘스토리텔링’이다.” 


많은 부모들이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의 마음을 읽었으면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공부방을 그만 두고, 시작한 상담소에도 언젠가 한 번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더 많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대화하고, 행복한 삶을 찾았으면 한다. 그야말로 수많은 학부모들의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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