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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Sep 07. 2020

나는 사랑받는 사람인가?

나를 먼저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子曰 : 年四十而見惡焉, 其終也已 
 자왈 : 연사십이견오언 기종야이
 공자가 말했다. “나이가 사십이 되어서도 여전히 다른 사람의 미움을 받는다면, 그 인생은 끝난 것이다.” 

 공자는 40을 ‘불혹不惑’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혹惑하다’는 의미는 “홀딱 반하거나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린다”는 의미다. 즉, 불혹이 되면 더 이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갈팡질팡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하다. 50,60대가 되어도 우리 마음은 흔들리게 마련이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나태한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마음을 공부하고 바른 것을 실천하는 습관을 버리면 안 된다. 


 우리는 보통 20대에 보다 깊은 공부를 하거나 사회에 진출한다. 30대에는 회사에서 일하거나 자신만의 사업을 일군다. 40대에는 관리직에 있거나 회사의 경영진에 있다. 50대, 60대에는 여전히 회사에 있거나 은퇴를 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하지만 요새는 나이에 상관없이 일찍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일반적인 공식으로 살지는 않는다. 나이에 따른 직업의 경계도 점차 파괴되고 있다. 

출처 : Pixabay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흔’은 왜 중요할까? 왜 시중에는 마흔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을까? 


 그것은 마흔이 ‘인생의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70세까지 정정하게 산다고 보면 부모의 품을 벗어나서 우리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시기는 대략 50년이다(물론 일부는 그전에 독립을 하지만 말이다). 20~30대의 20년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탐험하는 나이라면 50~60대의 20년은 하늘의 뜻을 이해하고 순리에 맞춰 사는 나이다. 40대의 10년은 그 중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40대가 중요하다. 40대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남은 인생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지난 20여 년의 경험이라는 밑거름이 있다.


 40대가 갖고 있는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일과 학문과 같은 외형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통찰’을 얻게 된다. 실수나 실패를 경험했고, 후회나 고통도 수없이 겪었다. 이렇게 경험을 통해서 좀 더 나은 인생을 살려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는 나이고, 정신적으로 보다 성숙하게 된다.

 

 문제는 40대가 되어서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경우다. 여전히 세상의 중심을 나라고 생각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 남보다는 오직 나의 안위만 생각한다. 그동안 실수를 통해서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바뀌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50,60대도 그렇게 살고 세상을 떠난다. 


 주위에 이런 분들이 가끔씩 있다.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남의 눈치만 본다. 나의 생각보다는 윗사람들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른다.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는 부분도 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누군가에게 종속적으로 살면서 느낀 억울함을 후배들에게도 풀어낸다. 자신만 그렇게 살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은 남들의 원망을 받고 산다. 사람들의 술안주가 종종 된다. 그런데 이들은 바뀌지 않는다. 이미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세뇌가 된 것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없고, 설사 그러한 능력이 있더라도 굳이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의 지위와 현실에 안주한다. 50이 되어도 마찬가지고, 60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영원한 종이 되거나 또는 누군가의 영원한 보스가 되려고 한다. 


 이런 분들은 의외로 행복하게 잘 산다. 


 남들을 배려하고, 공감하기보다는 나의 안위만을 위해서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미움을 받지만 그냥 그 자체로 만족한다. 정확히 말하면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나 행동이 한 사람에게 평생 남을 상처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종의 소시오패스와 마찬가지다. 사이코패스와 같이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정신적, 물질적으로 피해를 준다. 

 “소시오패스 :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며, 이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 《생활 속의 심리학》
출처 : Pixabay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철없는 사십 대에 대해서 꽤 냉정한 태도를 취했다. 즉 40대가 되어서도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다면 ‘인생은 끝’이라고 말이다. 


 공자가 이렇게 ‘기종야이’(그 인생은 끝난 것이다)라고 냉정하게 말한 경우는《논어》에서 찾아볼 수 없다. 쉽게 말하면 ‘네 인생 종 쳤어’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강하게 이야기한 이유도 자신의 나이에 책임지라는 통렬한 비판이다. 공자는 ‘도道’를 추구해야 하는 삶을 강조했다. 입신양명보다는 먼저 ‘인仁’과 ‘예禮’를 생각하고 꾸준히 공부하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자신만 챙기고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상처 주는 사람들은 용서할 수 없다는 의미다. 


 물론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도 너무나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 도무지 정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대대로 ‘업’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이 쌓은 업보는 언젠가 돌려받는다. 공자가 ‘덕’을 쌓으라고 입이 아프게 말한 이유는 나의 업보뿐만 아니라 후손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설혹 나의 업보를 제대로 돌려받지 않더라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염치’를 알아야 한다. 


 무인도에서 나 혼자 살 것이 아니고 인간 사회에서 제대로 인격적으로 대접을 받으려면 남들과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아니다. 이미 수없이 강조한 ‘인仁’은 결국 사랑이다. 나와 나의 가족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마흔이 되거나 그전에 바뀌어야 한다. 나를 욕되게 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가 아니다. 먼저 나에게 미안한 행위다. 


 지금 나를 돌아보자.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많은가? 나는 누군가에게서 사랑을 받는가? 더욱 중요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나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 남아있는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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