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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Sep 28. 2020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는가?

평생 도전하는 자세가 진정 아름다운 모습이다

 子路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曰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 

 자로숙어석문 신문왈 해자 자로왈 자공씨왈 시지기불가이위지자여


 자로가 석문에서 하룻밤을 잤다. 성문을 지키는 사람이 “어디에서 온 사람인가?”라고 묻자, 자로는 “공자 선생님의 사람이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굳이 하려는 그 사람 말이오?”라고 말하였다.  


《논어》를 읽다 보면 공자가 도道와 덕德, 인仁이 무엇인지 주로 설파한다. 제자들은 그 내용을 기억하거나 적어두었다가 나중에 책으로 남겼다. 그중에는 제자가 말한 내용도 있고, 제자가 바라본 공자의 모습도 있다. 공자는 꽤, 아니 상당히 고집이 센 인물이다. 자신이 믿는 바를 굽히지 않았다. 비록 높은 벼슬자리에도 올랐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 정치를 펼치지 못했다. 왕권은 약했고, 세도가의 기세는 대단했다. 백성들은 세도가들 때문에 높은 세금으로 고생을 겪고 있었다. 결국 그는 당시 노나라의 세도 가문의 수장인 계손 사와 갈등을 일으키면서 노나라를 떠나고 세상을 주유했다. 


 그는 수많은 제자를 거두었고, 위, 송, 조, 정, 진, 채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진정한 도덕 정치가 무엇인지 설파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순수한 의도와는 다르게 위정자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많은 학자들이 그를 비웃었다. 제자들도 공자를 따르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그의 신념을 믿고 따랐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고집불통 같은 그를 보고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공자의 제자에게 그의 스승을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굳이 하려는 그 사람”이라고 지칭했겠는가? 


 이상적인 도덕정치를 갈망하던 공자는 말년에 정치 참여를 포기했다. 정계에서는 발을 떼는 대신에 제자들이나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상을 알렸다. 그의 후손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받아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고,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했다. 물론 완전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문제가 많고, 잘못된 시스템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서 맹자, 순자, 주자 등 많은 학자들이 과연 무엇이 ‘정의’이고, ‘도덕정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이를 바탕으로 후세의 위정자들은 이들의 학문을 공부하면서 바른 정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가 한 일이 무모하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지만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는 그를 ‘성인’으로 떠받들고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에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에 도전하고 있는가? 아니면 지금 처한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가?

 

 도전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년에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100억 원대의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도전이 아니고, 무모한 꿈일 뿐이다. 도전은 단순히 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목표와 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다. 만약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는 것이 꿈이라면 중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한다. 3년 후 등반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야 하고 체력을 키워야 한다. 뒷산에 오르고, 국내에 있는 산을 등정하고, 산악회에 가입해서 전문기술을 키워야 한다. 주위에서는 이를 비난하고 우습게 여길 수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것이 바로 불가능에 도전하는 행위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글로벌 리더들도 마찬가지 과정을 겪어왔다. 그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다른 이들은 불가능하다고 치부했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와 아마존의 CEO 제프 베조스가 민간 우주선을 띄우고, 화성을 식민지로 만들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 황당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계획에 따라서 한 가지씩 실행을 하자 믿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화성 탐사를 다룬 영화, 드라마도 더 많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꿈이 꼭 실현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이기 때문에 도전할 가치가 있다. 


 인생은 결코 길지 않다. 하지만 목표나 꿈이 없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긴 인생이 되기도 한다. 하루하루 희로애락에 빠져 살다 보면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다. 바쁘게 살 때는 회사에서 진급, 아이들 양육과 교육, 집 장만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러한 목표가 사라진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러한 질문은 퇴직 후에 하면 너무 늦다. 지금부터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거기에 맞춰서 꿈을 꾸고, 목표와 계획을 세워서 이를 실행해야 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연장시켜서 나의 세계관을 확장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과 관련이 없는 부업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의 일이 재미없고, 회사에 출근하는 것조차 지겹게 느껴진다. 퇴직 후에도 내가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지금부터 생각해야 한다. 목표 달성을 60세가 아니라 70세, 80세로 잡아야 한다. 


 내가 아는 모임의 분들은 ‘미라클 모닝’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다. 새벽 2시, 3시, 4시, 5시에 기상해서 자신의 꿈을 밝히고, 꾸준히 노력한다. 새벽 모임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설계하고 이를 발표한다. 일반인들이 보면 다소 황당한 목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를 이루는 분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또 어떤 분들은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글을 전혀 써보지 않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신다. 주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치부하고는 한다. 하지만 무소의 뿔처럼 꾸준히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온 힘과 에너지를 다해서 불가능에 도전하는 자세다. 공자는 비록 살아생전에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꾸준히 학문을 닦고, 가르침을 전파했기 때문에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일조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생각하는 불가능에 도전하면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허투루 세상을 살지 않는다. 누구보다 노력하고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게 된다. 도전을 하면 여러 가지 결과물이 쌓인다. ‘부’와 ‘명예’를 이룬다고 성공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과물이다. 평생 도전하는 삶이 진정 아름다운 삶이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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