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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Oct 01. 2020

우리는 '헛똑똑이'인가?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경지의 진정한 의미

 子曰 賜也 女以予 爲多學而識之者與 對曰然 非與 曰非也 予以貫之

 자왈 사야 여이여 위다학이지지자여 대왈연 비여 왈비야라 여일이관지


 공자가 “사賜야!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비로소 그것을 기억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자공이 “그렇습니다. 그것이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 나는 하나의 근본적인 이치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철한 것이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는 경지는 고사성어로 문일지십(聞一知十)이라고 한다. 《논어》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나오는데, 바로 공자의 수제자인 안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다. 안연은 공자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깨우칠 정도로 대단한 수재였다. 이는 다른 제자들도 인정할 정도다. 어느 날 공자가 자공에게 그와 안회를 비교하면 어떠냐고 질문했을 때 자공은 안회의 총명함을 인정했다. 물론 본인도 “하나를 들으면 둘은 안다”고 은근슬쩍 자랑을 했지만 말이다. 


 이와 같이 총명한 사람들을 볼 때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노력과 끈기’가 중요하더라도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을 보면 왠지 주눅이 든다. 선천적으로 남보다 배우는 것이 빠른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유전자가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다. 더군다나 부모나 형제, 친인척의 지위나 학력을 확인해보면 고개를 저절로 끄덕이게 된다.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재능이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그릿》이라는 책에서 저자가 강조한 바와 같이 ‘끈기’는 필수 요건이다. 재능이 전부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도 노력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는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타고난 능력을 탓한다. ‘나는 역시 할 수 없어.’, ‘어차피 내가 모르는 영역인데...’, ‘저 사람은 나보다 원래 뛰어나잖아?’ 이렇게 자신의 능력을 깎아내리면 마음은 편하다. 적어도 나의 노력보다는 선천적인 능력 탓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자는 ‘그릿’의 이론을 제대로 실천한 사람이다. 그야말로 끈기의 화신이다. 그의 인생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이미 공자의 과거에 대해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공자는 타고난 문인이 아니다. 그의 아버지는 기골이 장대한 무인이었다. 만약 아버지가 계속 살아계셨다면 그는 ‘죽간’보다는 칼을 손에 들었을 확률이 높다. 그만큼 공자의 신체적 조건은 무인이 되기에 적합했다. 적어도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면 그 편이 더 쉬운 길이었다. 불행히도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공자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공자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세웠다. 어린 나이에 온갖 풍파를 겪다 보니 그는 이미 애어른이 되었다. 그러면서 세상의 불공정함을 느꼈고, 자신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당시 어지러운 춘추 시대에 그의 용맹이 한몫할 수도 있었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특히 공자가 살던 노나라는 이미 세도가들이 왕을 조정할 정도로 왕실은 무기력했다. 결국 세상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말’과 ‘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공부에 전념했다. 그는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배움을 찾아서 여기저기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서른에 학문에 기초를 세우고(이립而立) 제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의 제자 자공이 스승이 뛰어난 이유가 결국 많이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공자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는 ‘헛똑똑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조심해야 한다. 헛똑똑이는 “겉으로는 아는 것이 많아 보이나 정작 알아야 할 것은 잘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다.

 


《지능의 함정》의 저자 데이비드 롭슨은 지능이 높고 학력이 우수한 사람들이 의외로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은 판단을 내린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들었다. 잡스는 췌장암 판정을 받은 후 의사들이 권한 치료법을 무시하고, 스스로 민간요법을 공부해서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그는 천재적인 IT 혁신가가 맞지만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즉 지능이 높은 사람들일수록 자신만의 세계관에 빠져서 지식을 맹신하고 다른 사람들의 충고나 의견을 잘 듣지 않는다. 


 “머리가 좋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걸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 《지능의 함정》중에서 


 공자가 강조한 것이 바로 이와 같다. 무조건 많이 안다고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배운 것을 나의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이관지’다. 즉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의미다. 학문에는 그 근본이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관통하는 큰 지혜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책을 많이 읽거나 가방끈이 긴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경험을 통해서 반성하고 나의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 나만의 가치관을 정리해야 한다. 


 공자의 학문을 관통하는 이치는 ‘인仁’이다. 남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세상에 평화가 온다. 위정자도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들도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니 평화가 올 수밖에 없다. 쓸모없는 전쟁이나 갈등이 사라지게 되어있다. 


 공자의 제자 증자는 스승이 말하는 ‘도道’를 충忠과 서恕로 해석했다. 이 또한 ‘인’과 같은 의미다. ‘충’은 마음(心)의 중심(中)이고, 서는 마음(心)이 같다(如)는 의미다. 즉 나의 마음에 중심을 잡고, 남과 내가 같음을 알고 이해를 해야 된다는 의미다. 즉, 모두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마음이 결국 상대방을 사랑하는 ‘인’이다. 모든 것의 뿌리는 ‘인’에 있다. 공자는 결국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논어》에서 나오는 수많은 가르침도 ‘인’이 그 기반에 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아무리 많은 것을 공부한다고 해도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지식을 쌓기보다는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사색해야 한다.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통해서 성장해야 한다. ‘헛똑똑이’가 되어서는 안 되고, ‘나는 모른다’는 화두를 놓지 않고 겸허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해야 한다. 나의 세상에만 빠져 있으면 안 된다. 사랑의 마음을 갖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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