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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Oct 04. 2020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도 불완전한 존재였다. 

 子曰, 過而不改是謂過矣 자왈 과이불개 시위과의 
 공자가 말했다.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으면, 이야말로 가장 큰 허물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란 없다. 위대한 성인이라고 일컫는 사람들도 개인적인 과오가 있다. 유명인들도 마찬가지다. 언론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고충과 고뇌가 있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우리는 매일 실수하고 후회한다. 나도 역시 마찬가지다. 가끔씩 예전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면 너무나 창피하고 후회될 때가 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질렀을까? 왜 그렇게 방황을 했을까?”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은 과정을 겪는다. 실수를 저지르고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을 느낀다. 이 세상이 끝난 것 같고, 하늘이 두 쪽 난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점차 기억에서 사라진다. 누구나 ‘회복탄력성’이라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회복탄력성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 경우 훨씬 더 힘이 들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가 큰 실패라고 생각했던 것들, 그리고 걱정했던 덩어리들도 시간이 지나면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나의 허물을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어른이 된다.

 


 물론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누군가 옆에서 조언을 하더라도 들리지 않는다. 남이기 때문에 쉽게 말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오히려 남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조언할 수 있다. 이러한 조언을 마냥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서 자신은 성격이 좋아서 주위에서 평판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러한 장점이 단점이 되는 경우가 있다. 회사에서 상사나 후배에게 모두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칫 상사에게 아부한다는 인상을 주거나 또는 불필요한 업무에 대해서 싫은 소리를 못하고 후배들에게 업무를 과중시킬 수 있다. 적당히 거절을 해야 하는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 못한다. 때로는 ‘싫은 사람’도 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사실 위의 이야기는 나의 사례다. 회사에서 다면평가를 실시하고 나서 후배들이 나에 대한 평가를 했을 때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꽤 충격적이었다. 후배들에게 되도록 업무를 잘 배분하고 큰 부담을 주려고 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예스맨’이었다. 좀 더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편한 일을 더 선호하고, 하기 싫은 일은 피하려고 했다.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이상주의자, 낙천주의자 면모가 강했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면이 부족하고, 본능과 감정에 충실할 때가 종종 있었다. 이렇게 나의 단점을 늘어놓으면 끝이 없다. 그만큼 불완전한 존재라는 의미다. 


 하지만 수많은 검증을 거친 사람들도 과오가 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봤을 때 ‘티’가 없는 사람은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불완전하다고 자신을 질책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하나의 습관이 될 수 있다. 실수나 실패를 할 때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그러면 그렇지. 난 역시 안 돼.”와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면 정말 그렇게 된다.  


 철저한 반성도 필요하지만 전부가 아니다. 단점을 바꿔서 보면 장점이 된다. ‘예스맨’은 배려심이 있다는 의미이고, 이상주의자, 낙천주의자이기 때문에 그동안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꿈을 꿀 수 있었고, 어려운 상황을 잘 헤쳐 나왔다. 냉철한 이성은 부족했지만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면서 오랜 인간관계를 유지했다. 


 “그렇다고 나의 허물을 정당화하라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이를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을 평생 지속해야 한다.”

 위대한 성인이고 도덕군자라고 일컫는 공자도 허물이 많았다. 공자가 젊은 시절 노자를 찾아갔을 때 노자는 그를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또한 그는 음식에 대한 기준이 꽤 까다로웠다. 예를 들어서 쌀은 아주 새하얀 것이어야 하고, 다진 고기는 잘게 썰어야 했다. 술은 집에서 빚은 것이 아니면 마시지 않았다. 이러한 식습관을 맞추려면 당연히 신경이 많이 쓰였을 것이다. 부인과 이혼한 사유도 그의 까다로운 식습관이 한몫했다는 야사도 전해진다. 


 또한 당시 시대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신분제를 철저히 수호했다. 자신의 애제자 안연이 죽었을 때, 다른 제자들은 화려하게 장례를 치러주고 싶었지만 공자는 반대했다. 안연을 친아들처럼 아꼈지만 그는 벼슬자리에 오르지 못한 ‘평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민의 ‘예’에 맞춰서 소박하게 장례를 지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놀랍게도 제자들은 그의 주장을 무시하고 성대하게 장례를 치렀고, 공자는 이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그것은 그의 장점이 단점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공자는 학문에 뜻을 세운 15세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이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평생 노력했다. 도덕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발로 뛰어다녔고,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까다로운 식습관, 신분제 옹호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공자와 그의 가치를 중요시한다. 


 물론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아무리 비평을 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이미 생각이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고 믿는다. 나의 신념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잘못된 부분은 인정하고 바꾸려는 의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렇다. ‘업그레이드 인간’, ‘리셋’, ‘리프레시’ 등이라는 유행어가 계속 나오는 것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더 나아지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 역사상 수많은 위인과 현재의 유명인도 불완전한 존재다. 성격적인 결함도 있고, 불행한 과거와 실패, 실수담도 많이 있다. 중요한 점은 나의 ‘허물’을 제대로 인지하고 이를 바꾸려는 의지가 있는지 여부다. 그러려면 나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내려야 한다. 나의 장점은 확실히 인정해야 하지만, 단점도 고쳐야 한다. 비록 그 단점이 완전히 고쳐지지 않더라도 이를 인지하고 바꾸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스스로 일기를 쓰면서 반성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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