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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Nov 18. 2020

《스포티파이 플레이》들어보셨나요?

전 세계 오디오 플랫폼의 강력한 경쟁자

 전 세계 음악 시장을 주름잡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의 팝 뮤직은 세계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음악을 다운받거나 스트리밍해서 들을 수 있는 플랫폼은 어떤가? 애플의 아이튠즈, 아마존, 구글 유튜브 등이 있지만 이들과 필적하면서, 전 세계에서 3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스웨덴 회사, 스포티파이가 바로 그들이다. 아마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이 회사에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요새 많은 이들은 스포티파이 플레이에서 ‘무료’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아직 한국에는 정식 출시되지 않았다)


 예전에 우리가 음악을 카세트, LP, CD를 통해서 들을 때는 불법 복제가 아주 심각하지는 않았지만(물론 그 때도 불법 복제가 성행하기는 했다)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음악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으면서 불법다운로드가 기승을 부렸다. 음악가들이 힘들게 만든 음악을 사람들이 무료로 다운받게 되자 저작권 이슈, 음반업계 침체 등의 문제로 이어졌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스포티파이 창업자다. 2006년 여름, 창업자 에크는 스포티파이의 동료들을 구하기 시작했고, 바르셀로나에서 의기양양하게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무료’로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제공한다는 것은 음반사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이 과정이 얼마나 어려울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예측했다면 그들은 절대로 이 무모한 사업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 p37


 당시(2006년)에는 세계적으로 불법 복제를 하는 사이트가 카자, 파이러트 베이 그리고 뮤토렌트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스웨덴 기업이었다. 더군다나 2006년 스웨덴의 신생 정당 해적당이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를 옹호했다. 하지만 불법 다운로드를 하는 업체들은 줄줄이 고소를 당하고 법적 소송에 들어갔기 때문에 저작권 확보가 필요했다. 


 또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아이튠즈라는 애플의 뮤직 서비스를 통해서 곡당 99센트에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잡스는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며 비판했다. 비록 애플과 거래를 통해서 어느 정도 수익을 확보했지만 주 수익원이었던 CD 판매가 부진하면서 음반사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업자 에크는 음반사 사장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대해 눈감아서는 절대 안 됩니다. 파일 공유자들을 끝까지 고소한다고 이길 수 있는 싸움도 아닙니다.” - p82 


 스포티파이가 창립한 2006년 4월. 구글은 같은 해 10월, 17억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서 유튜브를 인수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인터넷 콘텐츠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7년 9월, 이들은 일곱 번째 테스트 버전을 출시했고 20명의 동료들은 단체 사진을 찍으며 기뻐했다. 나중에 이 동료들은 회사가 주식시장에 상장되면서 모두 백만장자가 되었다. 물론 그 전까지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투자자 유치였다. 당시 많은 투자자들이 음악 산업이 사양화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투자를 꺼렸다. 더군다나 스포티파이는 아직 어느 음반사와도 계약을 맺지 못했다. 그들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기존의 것보다 훨씬 뛰어난 뮤직 플레이어였다. 그들은 기술적으로는 확실히 차별화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계속 투자 거절을 받으면서 자금이 슬슬 바닥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창업자 에크가 회사에 돈을 빌려줘서 직원들 월급을 지불할 정도였다. 다행히 공동 창업자 마르틴 로렌손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투자를 유치했고 마침내 2008년 8월 27일에 룩셈부르크에서 A라운드로 등록되어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고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미국 시장 진출인데, 미국의 음반사들은 스포티파이의 사업 방식에 대해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미 스티브 잡스와 아이튠즈에 대한 저작권 계약을 맺은 상황에서 잡스는 이를 뒤에서 훼방 넣었다. 이러한 난관이 있었지만 결국 스포티파이는 회사의 지분을 저렴하게 파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스포티파이는 이후로 승승장구했다. 창립한지 6년 만에 이미 600명의 직원을 둔 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음반사의 영향에서 좀 더 벗어나기 위해서 ‘동영상 스트리밍’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서 회사 내에 작은 프로젝트 팀을 만들고 75명의 인원을 배치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손실만 안겨주었다. 그래도 이 회사는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는 본업에 충실하면서 새롭게 성장하는 팟캐스트 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많은 투자를 했다. 


 스포티파이의 성공 스토리를 보면서 3가지 시사점을 얻었다. 첫째, 기술에서 있어서 확실한 차별화를 추구했다. 그랬기 때문에 이들은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 대비 충성고객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스포티파이는 한 곡이 재생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정했다. 0.5초. 그 원칙은 계속 적용되었다.” - p209


 둘째, 경영진의 역할 분담이 확실했다. 창업자 에크는 기술 개발에 집중했고, 로렌손은 자금 확보에 주력했다. 서로에 대한 간섭은 최소화했다. 셋째, 이 회사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가장 큰 목적을 ‘고객의 편의성’에 두었다. 고객의 편의를 위해서 늘 고민하고, 이들에게 또 하나의 고객인 음반사와 아티스트와 협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회사의 ‘성장’을 지속적으로 추구했다. 창업자 에크는 임원진에게 지켜울 정도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왜 우리는 더 빠르게 성장하지 않는 걸까요?” - p383  


 이들은 애플, 아마존, 구글 등의 초대형 기업의 위협에서도 살아남았다. 회사의 슬로건은 “매 순간을 위한 음악”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객이 늘 스포티파이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플레이스트를 서로 공유하게 만들고, 고객에게 인공지능으로 적합한 곡을 추천해서 편의성을 늘렸다. PC에서 모바일 시대로 바뀌면서 큰 위기를 겪었지만 이를 슬기롭게 잘 극복했다. 


 마침내 스포티파이는 미국 시장에 상장을 했고, 창업자를 비롯한 많은 직원들이 백만장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어쩌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이제 스포티파이는 많은 기업으로부터 견제를 받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들의 혁신이 계속될지 지켜봐야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스포티파이가 정식으로 출시가 되지 않아서 VPN을 통해서 우회해서 사용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기업도 이를 대비해서 미리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뮤지션들에게는 좀 더 좋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 


 *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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