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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Feb 26. 2021

이동현 작가의《배를 타며 파도치는 내 마음을 읽습니다》

인생을 항해하는 스물아홉 선원 이야기

 “부모님이 알고 내가 아는 직업은 하나뿐이었다. 배를 타는 일이었다.” - p23


 배를 탄다는 것은 꽤 낭만적으로 보인다. 큰 화물선을 타고 일도 하고, 돈도 많이 벌면서 전 세계를 여행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어떠한 일도 직업으로 갖는다면 힘들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배를 탄다는 것은 결코 녹녹지 않은 것이다. 


 배 안에서 6개월, 길게는 10개월을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육지에 사는 친구들과 ‘시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배 안의 시간은 다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배를 탄다는 것은 남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유리한 점도 있지만, 오히려 배의 시계는 느리게 흐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육지에서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한다. 

 “배에는 간섭하는 사람도 없다.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감독할 수가 없다.(중략) 오직 스스로 판단할 뿐이다. 그래서 직급이 위로 올라갈수록 독선적이 된다.” - p140


 저자는 23살에 배를 타기 시작한 젊은 청년이다. 그는 배를 타면서 ‘인생’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했다. 아무래도 제한된 공간에 갇혀있기 때문에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가 1등 항해사가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선박 수리업’(기관사)을 하고 계셨고,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직업을 가진 아버지를 뒀기 때문에 저자는 새로운 세상(바다)에 대해서 남들보다 먼저 생각할 수 있었다. 


 선원이 쓴 에세이는 처음 읽어봤기 때문에 흥미진진했다. 책의 초반에 이런 내용이 있다. 저자가 벨기에의 그랑플라스 광장에서 찍은 사진을 아버지께 보내니, 아버지도 같은 장소, 그것도 같은 나이에 찍은 사진을 보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 이과였던 내가 관심을 둔 과목은 문과 계열의 세계사와 국어였다.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었다.” - 27


 저자는 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했지만, 꼭 그것 때문에 바다에 나간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점수에 맞춰서 대학에 진학했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해양대학교에 진학한 것뿐이었다. 자유보다는 선택의 폭이 좁은 규율과 규칙이 더 맞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해양대에 진학했고, 아버지처럼 기관사가 되었다. 


 마침내 배를 탔지만, 결코 녹녹한 생활은 아니었다. 


 “배에서 산다는 것은 여행도 학교도 아닌 예상하지 못하던 다른 삶이었다. 만약 배에 필요한 것이 없으면 만들거나 혹은 참는 법을 배워야 했다.” - p46 

출처: Unsplash

 배에 어떤 화물을 선적하느냐에 따라서 선원의 생활이 결정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일상의 생활용품을 나르는 컨테이너선은 항해 기간이 1주나 2주로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선원들이 꽤 바쁘게 움직인다. 반면 벌크선(주로 모래, 광물 등 화물을 싣는 배)은 최소 2달, 3 달이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느긋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한다.  


 배에서 직급은 숫자가 줄어들수록 높아진다. 저자는 일등기관사다. 배에서 가장 중요한 엔진을 담당하는 기관실에서 근무한다. 기관사의 직급은 기관장, 일기사, 이기사, 삼기사 순이고, 갑판부는 선장, 일항사, 이항사, 삼항사 순이다. 


 기관사의 직장은 해수면 밑이다. 그래서 기관사들은 스스로 ‘물고기’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한다. ‘철로 된 암실’로 출퇴근하는 것이 기관사들의 일이다. 항해사처럼 바다나 해를 거의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시간 개념도 약해지고, 시차 적응도 쉽지 않다고 한다. 


 저자는 시간에 대해서 공감 가는 말을 했다. 


 “내 인생 시계는 나만의 속도로 가고 있는데, 타인의 시간에 맞추려니 자꾸만 마음에 시차가 생긴다.” - p81

 우리가 정하는 나이와 시간은 결국 남과 비교하기 위한 시간일 아닐까? 사람들이 만든 시간이라는 규칙에 맞춰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그렇다 보니 너무 쉽게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고는 한다. ‘이 나이에 무슨’, ‘나이도 어린 것이’ 등등. 

출처: Unsplash

 무엇보다 먼저 배를 탄 아버지와의 추억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저자는 배를 타면서 인생을 돌아보고, 그러면서 아버지와의 관계도 회상한다. 무뚝뚝한 아버지가 자신에게 좀 더 자상하게 대해주고, 본인이 경험한 것을 알려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저자는 23살에 배를 타고나서, 그 경험이 단순히 말로는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기관실에서 일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종종 회상했다. 

 “내가 배를 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아버지와 화해하는 과정이었다.” - p159  


 이 책을 통해서 선원의 삶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고, 배를 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COVID-19으로 사람들은 1년 남짓 집이나 직장 내에서만 주로 생활을 해서 답답했겠지만, 선원들은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30명 미만의 사람들과 6개월 내지는 10개월을 생활해야 한다. 더군다나 배에서는 인터넷도 되지 않기 때문에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게 된다. 


 반면, 자신을 성찰할 수 있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며, 외부의 자극이 적으니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도 있다. 적성에 맞는다면 해볼 만한 일인 것 같다. (물론 좋은 동료를 만났을 때) 

하지만 결국 이것은 자장이냐, 짬뽕이냐의 문제다. 육지의 삶, 바다의 삶. 무엇이 좋은지는 알 수 없다.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기 때문이다. 


“육지에서는 배가 답이라 생각했는데, 배에 오르고 나니 자꾸만 육지가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감성적인 문체와 선원의 삶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인상적인 책이다. 사진도 많아서 읽기에 편하고 좋다. 나중에 아이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좋은 책을 써주신 작가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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