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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Jan 10. 2020

다독(多讀)인가? 정독(精讀)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인류 기록의 역사는 이집트의 파피루스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미 수천 년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독서의 역사는 어떤가? 인쇄술이 발전하기 전까지는 사람이 직접 필사를 했기 때문에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소수의 지배층이 보유한 고가의 물품이었다. 상류층, 지식계층, 성직자 등 특수한 계층이 지식을 점유한 것이다. 

 본격적인 독서의 확대는 서양에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해서 인쇄술을 발전시킨 이후(약 1,440년대 추정)였다. 즉, 약 600여 년 전부터 책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사람들의 독서량은 점차 증가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도 세종 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1446년)한 이후 소수에 편중돼있던 독서 인구가 늘어났다.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독서의 질을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고, 독서법에 대한 책이 많이 출간되었다. 그런데, 책마다 조금씩 다른 독서법을 제시해서, 독자 입장에서는 어떤 방법이 자신에게 맞는지 다소 헷갈린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 《햄릿》중에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렇게 거창하게 삶과 죽음을 논할 단계는 아니지만, ‘다독인가? 정독인가?’라는 점에 대해서 무엇이 과연 정답일지 궁금할 것이다. 물론 정답이란 없다. 제일 이상적인 것은 다독하면서 정독하는 것인데, 그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사실 독서를 기피하거나 어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 무엇인가?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두꺼운 책을 보면, 아무래도 책장을 펼치기 전에 기가 죽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새 에세이의 트렌드는 점차 얇아지고, 글자 수도 대폭 줄였다. 페이지 수도 200페이지 남짓이다. 

 하지만 만약 300페이지의 두꺼운 책이라면, 아무리 집중력이 좋은 사람도 한 번에 읽기란 쉽지 않다. 1페이지를 읽는데 30초가 걸린다고 해도, 적어도 2시간 반이 걸리고, 1분간 정독을 한다면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지금 이 시대는 역사상 사람들의 정신을 가장 많이 분산시키는 시기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음과 부주의를 유발하는 것들에 시달린다. 몇 초, 또는 몇 분 간격으로 SNS가 업데이트되고, 메신저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한다. 이런 상황에서 2시간 반을 정독하기란 더욱 힘들고, 5시간은 거의 불가능하다. 

 스마트폰을 끄고, 도서관이나 산속에 칩거한다면,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책을 읽다가 메시지를 확인하고, 다시 책을 읽다 보면, 점차 책에 대한 흐름과 리듬이 끊기게 된다. 자연스럽게 책을 손에서 놓는다. 

 한 권의 책을 읽기조차 힘든 환경에서 작가는 어떤 독서를 해야 하는가? 


 사실 한 달에 책을 한 권 정독해서 이 책에서 내가 10가지의 인사이트를 뽑아내어도 되고, 한 달에 10권의 책을 읽어서, 10가지의 인사이트를 뽑아내어도 된다. 

 만약 작가의 독서를 지향한다면, 이왕이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낫다. 작가는 독자보다 더 많은 인풋을 넣어야 더 많은 책을 쓸 수 있다. 또한 같은 메시지의 책이더라도 저자마다 강조하고 표현하는 뉘앙스는 조금씩 다르다. 이렇게 다른 점들을 잘 흡수하고, 나만의 것으로 재창조해야 한다. 

 다수의 작품과 문학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도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뛰어난 소설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소설도, 혹은 별 볼 일 없는 소설도 (전혀) 괜찮아요. 아무튼 닥치는 대로 읽을 것.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문장을 만날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중략) 아직 눈이 건강하고 시간이 남아도는 동안에 이 작업을 똑똑히 해둡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직업으로서의 소설가》중에서 


 어떤 책이든 상관없다. 좋거나 나쁜 책이어도 괜찮고, 소설도 괜찮고, 에세이, 자서전, 자기 계발서, 만화책, 각 종 실용서 등 다양한 책도 도움이 된다. 

 물론 하루키 작가가 말한 다독은 ‘젊은 시절’이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그것은 작가가 되기 전의 단계를 말한다. 작가의 독서는 무조건적인 다독이 아니다. 다독을 하더라도 그중에서 중요한 메시지를 뽑아서 정독해야 한다. 또한 다독은 완독일 필요가 없다. 내가 필요한 부분을 취하면 그 책의 수명은 일단 다한다(물론 언제든지 다시 꺼내서 볼 수 있다).


 결국 작가의 독서법은 다르다. 다독을 하면서, 정독을 겸하는 것이다. 보다 다양한 책에서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뽑아내야 한다. 


 작가의 독서법 = 다독(완독일 필요 없음) * 정독(책 중에서 뽑은 문장, 문단 중에서)

 예를 들어서 10권의 책(다독) * 5가지 메시지(정독) = 50개의 메시지  


 아무래도 작가의 독서는 일반 독자의 독서보다 시간과 정성이 좀 더 들어간다. 책도 많이 사야 하고, 부족한 책은 빌려야 한다. 집에는 항상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물론 독자 중에도 이렇게 적극적인 독서를 하는 분들도 있지만, 작가는 ‘창작’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다독’과 ‘메시지 뽑기’는 필수다. 

 작가는 이러한 독서 훈련을 통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읽기보다는 한 번에 2,3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편이 낫다. 굳이 다 안 읽어도 된다. 내가 메시지를 뽑아냈다면, 다음 책으로 옮긴다. 이러한 행위를 프로세스로 만들고 습관화시켜야 한다. 어떤 작가 분들은 방, 화장실, 거실 등에 다른 책들을 구비해 놓는다. 또한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좋은 책’과 ‘나쁜 책’이 무엇인지 차츰 가릴 수 있는 ‘안목’을 기르게 된다. 


 좋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리를 맛봐야 한다. 그것이 맛이 있으면, 어떠한 조리법과 재료가 쓰였는지 연구하게 되고, 설혹 맛이 없더라도 그 이유를 분석해 내야 한다. 그러려면 다양한 책을 많이 맛봐야 한다. 일류 요리사들 중에는 수시로 다른 레스토랑을 찾아서 요리를 맛보는 분들이 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요리를 개선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음(多吟)(다양하게 음미)을 하지만, 그 음식으로 완전히 배를 채우지 않는다(물론 배가 고프면, 배를 채울 것이다).

 이미 책을 냈거나, 또는 책을 내려는 분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다독을 하더라도 중요한 메시지를 뽑아내는 정독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다독과 정독 모두 중요하다. 말장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더 전문용어로는 일타쌍피(一打雙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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