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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Jan 13. 2020

책은 와인과 같다

 “후루룩, 후루룩” 


 와인을 음미한다. 사실 와인은 아무리 마셔도 잘 모르겠지만, 와인을 음미하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색, 향기, 맛이 바로 그것이다. 와인 잔을 빛에 비춰보면서 색깔을 본다. 색깔이 혼탁한 지 정상인지를 보고, 다음으로 코에 가져가서 향기를 맡는다. 좋은 와인일수록 복합적인 향기가 오래 지속된다고 한다(솔직히 복합적인 향기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누군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맛을 본다. 쓴 맛, 부드러운 맛 등이 느껴질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 방법으로 와인을 음미한 후 본격적으로 와인을 마신다. 물론 너무 안 좋은 와인은 바꿔야 한다. 


 책도 이와 같다. 와인처럼 음미해야 한다. 책에도 색, 향기, 맛이 그대로 있다. 색은 책의 디자인, 향기는 책의 제목과 카피(물론 종이 냄새도 가끔 맡는다), 맛은 책의 내용, 즉 콘텐츠다. 특히 디자인은 겉표지도 있지만, 속의 내지도 중요하다. 


 와인의 음미 : 색, 향기, 맛 = 책의 음미 : 디자인, 제목과 카피, 내용(콘텐츠)


 사실 예전에는 이해 못한 부분이다. 전에는 주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기 때문에, 새 책보다는 헌 책이 많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내용만 소화하고, 다시 책을 반납하면 됐다. 가끔 책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디자인보다는 책의 내용을 생각하고 구입한 경우가 많았다. 책은 그냥 맛(내용)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디자인이 도대체 왜 중요한지 잘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독서량이 계속 늘어나고, 책을 낸 작가의 입장이 되자 그 중요성을 점차 알게 되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속담이 있다. 겉모양새를 잘 꾸미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디자인도 중요하다. 최근에는 e-book의 판매 비중이 점차 늘면서 디자인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전히 종이책이 70~80%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e-book이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책의 겉표지(맛), 그리고 제목과 카피(향기)에 끌리게 마련이다. 


 요새 독자 분들은 책을 좀 더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물론 유명한 저자나 강연가, 방송에서 추천한 책들은 색과 향기보다는 ‘맛’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꿈의 와인이라고 불리는 ‘로마네 콩티’라는 와인이 먼지에 쌓여있어도 그 사랑이 변하지 않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강력한 ‘후광효과’를 받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부분에 대해서 관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아직 명성을 쌓기 전이나, 확실한 충성팬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경우라면, 색과 향기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책 표지 색깔, 디자인, 제목, 카피 등이 첫 번째 후킹 요소이기 때문에 책의 콘셉트, 그리고 작가의 개성과 잘 맞춰야 한다. 


 한 번 생각해 보라. 독자가 자신의 서재에 꽂아두고 싶은 책들은 과연 무엇일까? 아니면, 지금 내 책장에 꽂혀있는 책은 어떤 책들인가? 유명 작가 분들의 책도 있고, 주변의 추천으로 구입한 책, 또는 선물로 받은 책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양이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책들을 처분하게 마련이다. 중고서점에 팔거나, 도서관에 기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정말 떠나보내기 싫은 책들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좋은 영감과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 


 이때 책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디자인과 제목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제목만 봐도 힘을 주는 책들도 있다. 참고로 내 책장의 제일 위, 그리고 1위를 차지한 책은 마이클 싱어의 《될 일은 된다》이다. 회사 다니면서, 또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책의 제목을 보거나, 또는 꺼내서 접어둔 내용을 읽는다. 그러면 다시 힘을 얻게 되고, 충전이 된다. 


 책은 이와 같이 강력한 힘과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삼박자를 골고루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역시 삼박자를 모두 갖춘 책은 정말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사랑스럽다는 표현은 조금 이상하겠지만 정말로 그런 마음이 든다. 보고만 있어도 뿌듯하다. 


 물론 색, 향기, 맛, 즉 디자인, 제목과 카피, 내용의 밸런스는 중요하다. 책을 장식용으로 쓴다면 디자인만 중요하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알맹이가 없는 “속 빈 강정”이 되기 마련이다. 


 책은 우리의 의식을 깨워주는 ‘도끼’와 같은 존재가 맞다. 그것은 책의 내용을 이야기한 것이다. 하지만 책은 ‘도끼’와 같은 날카로움도 필요하지만, ‘와인’과 같이 색과 향기, 그리고 맛을 종합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최근에 읽은 책 중의 하나는 정말로 도끼와 같은 날카로움이 있어서 스스로 감탄을 하면서 봤지만 제목과 카피, 그리고 디자인이 너무나 아쉬웠다. 물론 내가 편집자가 되어서 더 잘 만들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책의 내용이 아까웠고, 더 많은 독자 분들이 이 책을 접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반면, 최근에 접한 책은 디자인, 제목과 카피, 내용의 밸런스가 아주 잘 맞았다. 내지의 색깔에도 감탄하면서 책을 살펴봤다. 이런 책들은 독자 분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로서도 뿌듯한 마음이 들 것이다. 


 이와 같이 작가는 소믈리에와 같이 책을 음미할 줄 알아야 한다. 책을 빛에 비춘다든지, 종이 냄새를 과도하게 맡을 필요는 없다. 다음과 같은 과정을 제안해 본다. 


 1. 먼저 책을 만져보고, 느껴본다. 책의 색깔과 디자인, 속지, 종이의 질감을 느낀다. 냄새를 맡아도 좋다. 

 2. 책의 제목과 카피를 살펴본다. 나의 생각과 어떻게 다른 지도 생각한다. 

 3. 저자 프로필과 목차를 훑어본다. 가끔 프로필의 사진이 아쉬운 경우도 있다.

 4. 프롤로그를 간략히 읽어본다. 

 5. 책을 내려놓는다. 결정의 순간이다. 새로운 와인을 받을지, 아니면 마실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대략 2~3분 정도다. 어느 정도 습관이 되면 물 흐르듯이 연결될 것이다. 책을 음미할 줄 아는 작가는 자신의 책도 그렇게 대하게 된다. 그렇다고 지금 나의 책들을 찾아봐서 “그렇게 말하는 당신의 책은 ‘로마네 콩티’인가요?”라고 따지면 할 말은 없다. 나 자신은 꽤 좋은 와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수도 있다. 적어도 책의 ‘맛’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다.  


 작가는 와인을 대하듯이 책을 대해야 한다. 좋은 와인과 나쁜 와인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하듯이 책도 마찬가지다. 3박자가 잘 갖춰진 책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의 책도 그와 비슷한 수준에 가까워진다. 결국 책은 와인과 같다. 누가 알겠는가? 나의 책이 언젠가 로마네 콩티가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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