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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Jan 30. 2022

결코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삼국지 리더십 

 “황제의 교화를 널리 펴고 팠으나 그 쉽지 않음을 그 누가 알았으리요. 

  나의 소망 어느 날에나 이룰까 애달픔 가눌 길이 없네.

  이제 난 장차 어디에 영광 바칠까, 하염없는 이 괴로움은 또 어이할꼬.” - 《선재행》중에서


 조조는 41세,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었다. 그는 스무 살에 아버지의 권력에 힘입어 효렴에 천거되고, 낙양북부위가 된 후 자신만의 길을 가려고 노력했다. 아버지의 그늘에 머물지 않고, 부단히 그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서 애썼다. 마침내 당대의 명사인 교현, 하옹으로부터 한나라 왕실을 구할 기대주로 인정받았다. 허소는 그가 ‘난세의 간웅’될 것이라고 비꼬았으나 이미 수많은 간웅들이 생긴 마당에 그것은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여 년간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면서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다시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 질주했다. 그는 이미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동탁을 버리고 낙양에서 도주하다가 붙잡혔을 때, 동탁군이 낙양에서 장안으로 도주할 때 이를 혼자 추격하려다가 군대가 거의 전멸했을 때, 그리고 연주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여포와 전쟁 시 죽을 뻔 했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연주의 반란을 잘 평정했고, 강적인 여포를 서주로 몰아냈다. 이 후 그는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한나라의 황제인 헌제를 낙양에서 허현으로 모셔오는 것이었다. 이 승부수가 제대로 먹힌다면 다른 라이벌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다른 군웅들이 이미 황제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세력을 키우려고 할 때, 그는 다시금 가장 중요한 가치인 ‘충심忠心’을 앞세웠다. 황제를 앞세워서 군웅들의 벼슬자리를 조정하거나 임명할 수 있는 ‘인사권’은 엄청난 파워였다. 이렇게 불혹의 나이에 이르러서 드디어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불혹’은 공자가 《논어》의 〈위정편〉에서 언급한 것으로 바로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출처: 《두산백과》). 많은 리더들은 젊은 시절 방황을 하고,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복기하고, 고쳐가면서 점차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찾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도 조조와 마찬가지로 생모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그는 태어났을 때 바로 입양되었기 때문인데, 마음 한 구석에는 친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잡스는 학교에 잘 적응을 못하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한 선생님으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으면서,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는 리드 대학에 입학했는데, 학교에서 자신의 미래를 고민했다. 곧 중퇴하고, 여러 수업들을 청강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자 했다. 


 마침내 그는 21세에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과 함께 애플을 공동창업하고, 애플2를 통해서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했다. 그의 앞날은 화려해 보였지만 후속작들이 성공을 못하면서 결국 31세에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물러나야했다. 그는 NeXT라는 컴퓨터 회사를 창업했지만 그다지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 그는 누구보다 화려하게 데뷔한 젊은 기업인이었지만 잊혀져갈 존재가 될 뻔했다. 

 41세가 되었을 때 애플이 NeXT를 인수하면서 친정으로 돌아오고, 1997년, 42세에 애플의 임시 CEO가 되면서 위기에 처한 애플을 극적으로 살려냈다. 그가 아이팟을 출시하여 시장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을 때 나이가 46세, 아이폰을 출시한 2007년은 52세 때였다. 사실 애플의 본격적인 성장은 아이폰 출시부터였다. 아이폰의 성공으로 애플은 시가총액 2,000조원을 넘나드는 거대한 IT 회사가 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전성기는 46세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56세까지였다. 10년간 그는 그 동안 자신이 배운 노하우를 모두 쏟아내서 애플을 최고의 IT 회사 중의 하나로 올려놓았다. 


 조조가 연주를 처음 차지했을 때다. 그는 그 고장의 명사들을 단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처형했고, 곧 사람들의 민심이 떠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연주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또한 아버지와 동생이 죽은 것을 복수한다는 명목하에 서주의 백성들을 가혹하게 살해하면서, 천하의 민심이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도 몸소 절감했다. 이러한 과정을 겪고 나서, 그는 좀 더 자신의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고, 앞으로 자신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정립했다. 이제 가장 가까운 혈육을 떠나보냈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 나아가야했다. 마흔이 넘어서야 철이 들었다. 


 사실 유비가 제갈량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46세였다. 어떻게 보면 조조는 유비보다 좀 더 빨리 자신의 기반을 닦은 것이다. 이는 빈털터리였던 유비보다 이미 어느 정도 기반을 갖고 시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 손권은 불과 19세의 나이에 형인 손책의 가업을 물려받아서 약관의 나이에 강남 지역에서 자신의 기반을 가졌다. 하지만 그도 어린 나이에 리더가 되면서, 가업家業을 유지하고, 조조와 유비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항상 위나라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동맹이면서 라이벌인 촉나라를 견제해야 했다. 그의 정권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고, 마침내 황제가 된 나이가 47세였다. 

 그는 조조나 유비에 비해서 말년이 좋지 않았다. 조조와 유비가 장자長子를 내세워 정권의 안정을 꾀한 반면, 그는 후계자를 확실히 정하지 않아서 내분을 일으키고, 마침내 막내를 후계자로 정해서 나라에 분열을 일으켰다. 어떻게 보면 너무 이른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생긴 병폐 중의 하나였다. 조조나 유비처럼 젊은 시절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밑바닥까지 내려간 적이 없었다. 


 리더가 되려면 마흔 이후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물론 20대, 30대에 이른 성공을 경험한다면 좋겠지만, 이 때는 더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실패나 실수는 당연한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해야 ‘불혹’의 경지에 이른다. 조조가 한나라의 헌제를 모셔와 위나라의 기반을 본격적으로 닦은 것도,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임시 CEO가 된 것도 42세였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불혹의 나이에 다시 시작한 것이다. 결코 늦은 때란 없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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