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는 6개월 ~ 1년, 길게는 수년간의 시간이 흘러서 마침내 원고를 마무리하고 책을 출간하게 됩니다. 아무리 출판 시장이 단군 이래로 최고의 불황기라고 해도 역시 책을 읽는 독자는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은 여전히 출간되고 있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작가는 결국 자신의 창작물이 다른 사람에게 읽히고, 널리 인정받을 때 큰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처음에는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자신의 글을 읽고 감동을 받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소박한 마음을 갖지만 막상 책이 나오면, 잘 팔리고 알려진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매일 교보문고의 순위, Yes24의 판매지수를 습관처럼 보게 됩니다(물론 한 달 정도 지나면 시들해집니다). 그것은 당연한 마음입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결과물을 만들었으니 그에 대한 대가를 바라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막상 기대한 바와 결과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어서 2쇄, 3쇄 찍고 이름도 널리 알려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럴 때 많은 작가 분들은 좌절하고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게 됩니다.
저도 그중의 하나였습니다. 첫 책을 쓰고 나서 얼마나 큰 소리를 쳤는지 모릅니다. 10만 부, 100만 부는 문제없다고 호언장담했지만 현실은 냉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인세나 강의로 충분히 생계를 꾸려갈 수 있다는 순진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현실을 너무나 모르고 한 상상에 불과했습니다.
소설과 같이 순수문학을 하시는 분들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글에서 승부를 봐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 보니 전업 작가의 경우가 많고, 새벽이나 밤늦게 글과 사투를 하면서 써 내려갑니다.
하지만 저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그러한 리듬감을 좋아하기 때문에 글과 규칙적인 삶을 병행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일상생활과 글은 어차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평소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방법에 있어서 글 쓰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변에도 글쓰기 예찬론을 설파하고 다니지만 이를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는 않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작가가 되었을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요? 정말로 제각각일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어렵고 모호한 질문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면, 우선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글을 쓰면 마음이 정화됩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힘든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이 겪게 되는데 글을 쓰면 그러한 마음이 조금씩 사라짐을 느낍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라진 다기보다는 더 큰 기쁨이 그것을 덮는다고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상처라는 것은 어딘가에 남게 마련이니까요.
물론 글을 쓰면서 아픈 과거를 들추고 더 힘들어하는 작가님들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현실을 마주하기보다는 그냥 묻혀두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너무 아픈 상처를 후벼 팔 필요는 없습니다. 쓰면서 치유가 되는 분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정화시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면, 그다음은 역시 독자가 나의 글을 읽을 때입니다. 나의 생각과 느낌을 독자도 같이 공감해 줄 때 큰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더군다나 나의 글에서 힘과 용기를 얻는 독자가 있다면 더욱 그렇겠죠. 그렇다고 독자를 너무 의식해서 멋진 글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마지막으로는 역시 책이 세상을 만났을 때입니다. 처음 초고를 쓰고, 토할 만큼 퇴고를 하고, 투고한 후 계약하고의 기쁨은 잠시, 다시 편집자 분과 원고를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이러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 후에 마침내 책이 세상에 나옵니다.
저는 한글 워드 파일이 pdf 파일로 옮겨지고, ‘저자교’에 들어갈 때가 정말로 책이 나온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특히 책의 디자인이 드러나면서 드디어 책의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표지까지 결정되고 나면 그때부터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아, 이제야 드디어 책이 나오는구나. 그런데 정말로 이대로 괜찮을까?’
그동안 자신만만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한없이 작아집니다. 사실 이때쯤 되면 더 이상 원고는 쳐다보기 싫고, 수정 작업이 지루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작가님은 책이 출간된 후에는 자신의 책을 쳐다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마 수개월이나 수년이 지나면 마음이 달라지겠지만요. 그만큼 원고를 쓰고, 고치는 작업을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마침내 원고가 마무리되고, 인쇄소에 pdf 파일이 넘겨지고 인쇄에 들어갑니다. 이때 ‘가제본’이라는 초판 인쇄본이 나오고, 이를 편집자는 꼼꼼히 살펴서 원고 내용, 겉표지, 속표지, 디자인 등 최종 점검을 하게 됩니다.
드디어 출판사의 대표님이나 마케팅 또는 편집자께서 출간 일정을 알려주고, 인터넷 주문이 시작되는 시점, 그리고 책이 서점에 배포되는 시기를 알게 됩니다. D-day가 다가오고, 마침내 책이 서점에 진열됩니다. 이렇게 책이 나오기 전 1주일, 그리고 출간 후 2~3주가 작가에게 가장 행복한 시기입니다. 물론 책이 너무 잘 팔려서 순식간에 2쇄, 3쇄를 찍는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러한 행복을 누리는 작가는 극소수에 불과하겠죠.
결국 1년의 지난한 세월을 보내면서 초고, 퇴고, 투고, 수정 작업을 거친 후 ‘한 달’의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 이후에 책을 바탕으로 강연도 하고, 다른 활동도 하겠지만 이전만큼의 들뜬 마음은 가라앉게 되겠죠.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작가의 마음가짐인 것 같습니다. 책은 결국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니까요. 앞으로 이 책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그리고 다음 책은 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상상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현실감각이 떨어진다고 할 수도 있죠. 1년의 시간을 투자해서 나오는 아웃풋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책을 통해서 마음을 정화하고, 독자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전달하는 행위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유튜브 방송, 노래, 댄스, 그림, 사진 등 나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책은 그 존재감이나 구체적이고 오랜 생명력을 봤을 때 좀 더 다른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작가는 쓰는 것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거나, 또는 느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이 주는 물리적인 느낌과 충족감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느끼고 즐겨야 계속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작가에게 숙명 같은 일인지도 모릅니다. 글과의 인연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