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愼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자왈 군자식무구포, 거무구안, 민어사이신어언, 취유도이정언, 가위호학야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배부름과 편안한 곳을 추구하지 않으며, 일은 민첩하게 처리하되 말은 신중하게 하며, 도道를 가까이하며 바르게 한다면, 호학好學이라 이를 만하다.” - 학이學而 1.14
배움을 위해서 공자학당에 모여든 3천여 명 중에서 호학의 경지에 이른 제자는 ‘육예(六藝)’에 능통한 칠십자(七十子)입니다. 이 칠십여 명 중에서도 공자가 꼽은 열 명의 제자가 있습니다. 이들을 공문십철(孔門十哲)이라고 부릅니다.
“덕행에는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이고, 언어에는 재아와 자공이며, 정사에는 염유와 계로(자로)이고, 문학에는 자유와 자하였다.” - 선진先進 11.2
이 중에서 진정한 ‘호학’의 경지에 이른 제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대표적으로 안연, 자하, 자장, 증자, 자유를 들 수 있습니다.
김원중 교수의《논어》에 의하면, 이들은 각각 21회, 21회, 18회, 15회, 8회 정도《논어》에 등장했습니다. 참고로 1위는 42회의 자로, 2위는 38회의 자공입니다.
자로는 가장 오랜 기간 공자를 수행했기 때문에 출연이 제일 많습니다. 학문적 성과는 출연한 횟수 대비 미치지 못했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에게 꾸지람을 들어도 개의치 않고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자공은 안연 다음으로 총명하기는 넘버 투이지만, 순수한 호학이라는 측면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비록 그의 학문적 성취도 높은 편이지만, 학자의 길을 걷기보다는 부와 명예에 좀 더 집중해서일 것입니다.
요절한 안연을 제외하고, 자하, 자장, 증자, 자유는 후학을 양성하면서, 공자의 사상을 더욱 널리 전파하고, 공부에 진심을 다했습니다.
공자가 꼽은 열 명의 제자 중에서 증자가 포함이 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의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하지만 증자는 이 중에서 나이가 제일 어렸고, 공자의 말기 제자입니다. 더군다나 공자가 말년에 노나라로 돌아온 후 5년 만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아무래도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뛰어난 학문적 성취로 대기만성(大器晩成)했습니다. 그는 매일 세 가지, ‘충忠, 신信, 습習’(학이 1.4)으로 자신을 반성하면서 공부하고 실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학통은 결국 맹자(孟子, 기원전 372년 ~ 289년)로 이어졌습니다.
군자는 배부름과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논어》에서 유일하게 칭찬만 받은 제자는 안연뿐입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1등 제자입니다. 그의 배움에 대한 열의를 공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안회(안연의 이름)라는 제자가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다른 곳에 옮기지 않고, 과오를 두 번 되풀이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히도 일찍 죽었습니다. 지금은 이 세상이 없으니, 배우기 좋아하는 제자를 듣지 못했습니다.” - 옹야雍也 6.2
매슬로의 욕구의 5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생리욕구, 둘째 안전욕구, 셋째 애정과 소속 욕구, 넷째 존경 욕구, 다섯째 자아실현 욕구가 그것입니다.
음식을 통해서 생리욕구를 해결하고, 안전한 장소에 살면서 안전욕구를, 가정을 이루거나 연애를 하면서 애정, 회사나 사업, 다른 단체에 소속되면서 소속 욕구를 느낍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존경을 받게 됩니다(모두가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높은 단계가 자아실현 욕구입니다. 물론 네 가지의 욕구만으로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사랑하고, 존경받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자아실현 욕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욕구를 어떻게 만족하면서 살아야 할까요?
공자는 다음과 같은 답을 제시했습니다. “군자는 배부름과 편안한 곳을 추구하지 않으며(食無求飽, 居無求安 식무구포, 거무구안), 일은 민첩하게 처리하되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敏於事而愼於言 민어사이신어언)”. 말을 아낀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과시하거나 티를 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도道를 가까이하며 자신을 바르게 해야 한다(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 취유도이정언, 가위호학야이의)라고 강조했습니다. 즉, 도를 가까이하고, ‘배움의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호학’은 자아실현의 욕구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나’가 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책을 읽으면서 사색하고, 실천하는 것의 군자의 삶입니다.
배우다 보면 알게 됩니다. 나의 생각이 얼마나 작고, 이 세상과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말입니다. 그러면서 지혜를 터득하고, 삶을 겸허하게 바라봅니다. 그것이 결국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더 많이 읽고, 느끼게 될수록 내가 갖고 있는 것들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아무리 사소한 음식도, 내가 거주하는 공간도 소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더 넓은 아파트, 더 쾌적한 공간을 찾아서 늘 노심초사해야 합니다. 차라리 적당한 불편함을 안고 사는 편이 낫습니다. 그래야 지금 나의 삶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호학의 경지’는 ‘자아실현의 욕구’입니다. 호학은 단순히 배우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운 바를 제대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공자는《논어》에서 ‘실행의 중요성’을 수없이 이야기할 정도로 실행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인仁’의 정신과 자신을 돌아보면서 반성하고, 겸허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공자와 그의 3천 명의 제자는 의식주(衣食住)가 불편한 가운데에서 배움의 기쁨을 추구했습니다. 함께 ‘도’를 추구하면서 호학의 기쁨을 누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