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화제입니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 그리고 18년 동안 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한 여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의 치밀한 계획. 다소 신파극이나 유치하게 전개될 수도 있었지만, 김은숙 작가의 뛰어난 각본, 〈비밀의 숲〉의 연출가 안길호 감독 덕분에 탄탄한 구성과 내용의 깊이를 더했습니다. Kelley Mcrae의 〈Until The End〉 곡은 드라마의 서정성과 애잔함을 더해줍니다(꼭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예전에는 너무나 만연했던 이 사회의 폭력이 미디어의 발달로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나 싶습니다. 아이들의 폭력도 문제지만, 이에 대한 부모와 선생의 대처도 과거에는 많이 미흡했습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의 담임선생도 권력 있는 학생의 편을 들고, 그렇지 못한 학생에게 폭력을 마구잡이로 휘둘렀습니다(당시에는 참 귀싸대기가 많았죠. 요새 학생들은 다행히 못 봤겠지만요).
이 드라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 동은이 학폭을 신고하지만, 오히려 선생에게 별일이 아니라고 혼이 나고, 나중에 자퇴하려는 그녀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릅니다(역시 귀싸대기). 그것은 그 선생도 학부모에 의해서 돈으로 매수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생 월급으로는 살 수 없는 찬 고급스러운 손목시계가 그것을 반증합니다.
폭력의 가해자는 박연진, 전재준, 이사라, 최혜정, 손명오 5인방입니다. 독수리 5형제?라고도 할 수 있는 이들은 1987년생이고, 드라마의 배경은 2004년입니다. 이들 중 박연진, 전재준, 이사라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최혜정과 손명오는 가정환경이 좋지 않지만, 이들의 ‘똘마니’ 역할을 하면서 ‘호가호위’를 했습니다. 사실 2004년이면 2002년 월드컵 이후이고, 《말죽거리 잔혹사》가 개봉한 연도입니다. 참고로 ‘말죽거리~’ 영화의 배경은 1970년대 강남 8학군의 상문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했습니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도 아니고, 2000년대에도 이러한 폭력이 학교에 만연했다는 것도 참 안타까운 일인데, 드라마를 보면서 그 잔혹함에 놀라게 됩니다(그래서 이 드라마는 청소년 관람불가입니다). 고데기의 온도를 테스트한다고 동은의 팔에 지져대고, 다리가 예쁘게 생겼다고 하면서 다리미로 역시 지져대는 등. 악덕 형사가 판을 치던 시대에나 있을 법한 것이 버젓하게 성행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물론 드라마로 극화된 측면도 있지만, 실제로 비슷한 사건이 2020년에도 벌어졌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드라마를 영화 《친절한 금자씨》와 유사한 면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영화는 자식에 대한 복수극을 펼친 엄마의 이야기(이영애 분)와는 다릅니다. 하지만 희로애락을 알 수 없는, 아니 거의 무표정한 주인공의 얼굴, 그리고 10대, 20대, 30대를 오로지 복수를 위해서 차근차근 준비한 주인공의 불굴의(?) 노력은 ‘친절한 금자씨’를 능가하는 면도 있습니다.
동은은 과거 친구들의 가해 사실을 손쉽게 복수할 수도 있었지만(예를 들어서 미디어에 알리는), 특히 가해자 중에서 으뜸의 역할을 한 연진은 기상캐스터이기 때문에, 외부 평판이 더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들이 천천히 ‘말라가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몸소 느끼기를 원했던 것이죠.
동은의 집안은 가난하고, 어머니는 딸에 대한 애착심도 없었습니다. 동은이 자퇴하려고 할 때, 가해자의 부모들로부터 합의금을 받고, 동은의 문제로 자퇴하는 것으로 사인했습니다. 그리고 ‘달방’에서 도망치듯이 떠나고, 동은을 혼자 남겨둡니다. 동은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몇 번 시도했으나, 결국 살아남기로 결심합니다. 원래 공부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녀는 방직 공장의 기숙사로 들어가서 온종일 일을 하고 밤늦게까지 복도에서 치열하게 공부했습니다. 마침내 검정고시를 모두 패스하고, 교대에 진학합니다. 그녀가 그토록 증오하던 선생의 아들(역시 선생)에게도 접근하고, 연진의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를 노려서 그녀의 담임선생님으로 부임합니다. 이를 위해서 학교 이사장의 비밀을 찾아내서 그를 협박합니다.
이렇게 오직 ‘복수’만을 위해서 사는 그녀에게도 그녀를 흠모하는 주여정이라는 의대생이 있었고, 나중에 의사가 되어서도 그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또한 동은과 마찬가지로 남편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는 강현남이라는 아주머니는 그녀의 ‘복수’에 동참합니다. 조건으로 자신의 남편의 목숨을 원합니다.
동은이 선생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한 이야기는 교실 안에서는 부모의 권력과 부와 상관없이 동등하게 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학창 시절 돈도 없고 백도 없어서, 학폭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에게도(양호 선생님 정도) 도움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복수극은, 합법적인 것과 거리가 멉니다. 몰래 엿듣고, 사진을 찍고, 쓰레기통을 뒤져서 약점을 찾고. 심지어는 살인을 방조하거나 유도하는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폭력의 피해자 강현남, 그녀와 함께 방직 공장에서 일했던 동생, 그리고 양호 선생님은 그녀의 복수극을 찬성하고 응원합니다.
과연 이 사회에서 약자가 당할 수밖에 없는 불합리적인 시스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여전히 돈과 권력은 기득권의 방패가 됩니다. 사실 그들이 쌓아 올린 ‘캐슬’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러한 캐슬이 대물림되는 것은 막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점차 많은 이들이 ‘학폭’과 사회적 차별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요. 또한 자신의 권력을 부당하게 이용한다면 그것이 자신들의 ‘캐슬’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생각도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히 사회적인 시스템을 통해서 이뤄져야 합니다. 누구라도 법 앞에서는 평등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피해자가 오히려 죄의식을 느끼고, 가해자는 떳떳한 그러한 세상이 되면 안 되고요. 그러려면 바른 교육과 가치관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제2, 제3의 동은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스카이 캐슬》이 잘못된 교육 체계와 부의 양극화를 다뤘다면,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과 역시 부의 양극화를 심각하게 다룬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부디 드라마로 끝나지 않고, 더 많은 사회적 시스템이 구비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글로리’한 사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