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에 떠난 아프리카 배낭 여행기
이 이야기(2013년 배경)는 저희 아버지인 조승옥 님이 쓰신 글을 제 브런치에 올린 것이니, 미리 양해 부탁 드립니다. 앞으로 10회 정도 연재 계획입니다. 아프리카 배낭 여행 계획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침 식사는 따뜻한 우유와 샌드위치로 간단히 먹고 8시 30분 출입구 도로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빅토리아 폭포 국경검문소까지 갔다. 택시비는 20콰차로 흥정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40이나 50콰차를 주어야 한다고 한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5킬로미터에 30콰차인데, 1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20콰차로 간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러니까 아프리카에서는 택시비가 고무줄 가격이다. 미터기가 없기 때문에 흥정해야 하는데, 흥정하기에 따라 거의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운전기사가 부르는 대로 돈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운전기사들 또한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일단 불러 놓고 보는 것 같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도 마찬가지. 다만 현대식 쇼핑센터에서는 정찰제가 운영되고 있다.
리빙스톤에서 빅토리아 폭포 잠비아 국경초소까지 가는데 대략 25분에서 30분 정도 걸렸다. 도로 포장이 잘 되어 있고 통행하는 차량도 한산했다.
국경초소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관광안내소에서 폭포 입장권을 20달러에 끊었다. 폭포 관광 출입구를 들어섰는데 5, 6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앉아 있어서 누구 가이드 할 사람 있느냐고 말하자 한 사람이 나섰다. 내가 가이드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우선 이곳 인건비가 싸다는 것과 내가 나오는 사진을 많이 찍어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얼마나 많은 돈을 주고 왔는데 그깟 가이드 비 몇 푼 쯤이야 문제되랴 하는 심사였다.
우선 9시부터 2시간 동안 가이드를 부탁했는데 40달러를 요구했다. 여기서도 흥정을 거듭해 30달러, 20달러를 지나 10달러로 낙착되었다.
잠비아 쪽 폭포를 보는데 1시간 반 정도 걸렸다. 입구 부근에서부터 몇 차례 무지개를 보았다. 지금은 건기라 수량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우기에는 수량이 많고, 지금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라고 한다.
빅토리아 폭포는 원래 현지인들은 "천둥소리를 내는 연기"라는 뜻을 지닌 "Mosi-oa-Tuna"고 불렀다고 한다.
그만큼 요란한 굉음과 함께 물보라를 내뿜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폭포를 처음 발견하여 외부 세계에 알린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선교사이자 탐험가인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인데 그 해가 1855년이다. 그는 조국의 여왕을 기려 폭포 이름을 "빅토리아 폭포"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그는 조국의 여왕을 기려 폭포 이름을 지었지만, 이곳 후세인들은 그를 기려 잠비아와 짐바브웨 양쪽 폭포 입구에 동상을 세우고, 그의 이름을 따 도시 이름을 지은 리빙스톤에는 그의 기념관을 세웠다. 그 기념관에도 그의 동상이 있고, 리빙스톤 공항에도 그의 동상이 서 있다.
폭포의 높이는 최고가 108미터, 폭은 1,708미터다. 수량이 많은 우기 때는 하얀 면사포 같은 물 커튼이 약 2킬로미터에 걸쳐 펼쳐 있다고 상상해 보면 가히 장관이 아닐까?
우기에다가 보름달이 뜨는 저녁에는 늦은 밤까지 폭포를 개방하여 아름다운 달무리 무지개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폭포 자체만을 생각하면 우기 보름달이 뜨는 날을 잡아야 할 듯하다.
폭포 주변의 기후는 5월부터 8월까지 건기에는 시원하고 건조하여 일일 평균기온이 섭씨15-18도, 저녁때는 섭씨 5-8도로 떨어진다. 9월부터 11월까지는 평균기온이 섭씨 25-35도로 덥고 건조한 날씨며, 12월부터 4월까지 우기에는 25-35도의 더운 날씨다.
잠비아 쪽 폭포를 보고나서 짐바브웨 쪽 폭포 관람을 포기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또 한 나라를 들어갔다 다시 나와야 하고 돈도 들고, 게다가 그것이 그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나놓고 생각해 보니 만일 짐바브웨 쪽 폭포를 보지 않았다면 엄청 후회할 뻔했다. 빅팔스의 진수는 짐바브웨 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이드는 짐바브웨 쪽 폭포 관광도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그래서 비자비와 입장료 문제가 있지 않느냐 했더니 문제없단다. 그는 야생동물 감시경찰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식구가 자신을 포한해서 6명인데 한 달 봉급 60달러로는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아 이런 부업(?)을 한다고 한다.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아니라고 해서 또 어떻게 하겠는가?
잠비아 쪽 폭포 관광을 마치고 택시를 타고 빅토리아 폭포 다리를 지나 짐바브웨 국경초소로 넘어갔다. 택시비는 15K. 올 때는 걸어서 왔는데 2킬로미터 정도 되지 않나 생각된다. 가이드는 짐바브웨 입국 비자비 2K만 내고 통과했고, 나는 30달러를 지불했다. 폭포 입구에서 입장권을 사는데 가이드도 요금을 지불하라고 해서 나는 30달러, 가이드는 20달러를 냈다.
짐바브웨 쪽 폭포는 "악마의 급류"(Devil's Cataract)라고 불리는 폭포로부터 시작해서 안락의자 폭포, 말발굽 폭포, 무지개 폭포 순으로 관람 포인트를 따라 둘러보았다.
폭포 상하는 잠베지 강이 흐르고 그 위로 조금 전에 차를 타고 건너온 빅토리아 폭포 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가이드 이야기로는 폭포 상류 잠비아 섬에서는 수영도 가능하다고 한다. 수영을 하려면 배를 타고 섬으로 가야 한단다.
오후 3시 경 폭포 관람을 모두 마치고 걸어서 잠비아 쪽으로 넘어왔다. 오면서 빅토리아 폭포 다리 위에 설치되어 있는 번지점프에서 번지점프 하는 것도 구경하고 폭포 쪽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잠비아 국경 초소에서 재입국 비자를 받고 그 근처에 사는 가이드 집에 가기로 했다. 재입국 비자비는 20달러, 최초 입국 비자비는 30달러. 집에 가기 전에 가이드비 30달러를 주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큰돈은 아니겠지만 잠비아의 국민소득이나 그의 봉급 60달러에 비교하면 제법 큰돈이라 할 수 있다.
그가 사는 곳은 큰 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부락에 있었는데, 국경 부근이라 그 근처에 군부대가 있다고 한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은 관사라고 하는데 무척 협소해 보였다. 가구는 거실에 소파와 소형 TV세트가 있는데 TV세트는 보자기로 덮어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는데 흑백인지 탈러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가이드 나이는 서른하나 부인은 스물여덟인데 아들 둘에 딸 둘이란다. 그러니까 이들 여섯 식구가 한 달에 우리나라 돈 7만 원 정도로 생활하는 것이다. 먹는 것은 밀가루 같은 것을 반죽하고 요리해서 마치 우리 주먹밥처럼 뭉쳐 접시에 담아 놓았는데,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끼를 먹는다고 한다.
부식은 없고 나무 잎 같은 것을 잘게 썰어 찍어 먹는다고 한다. 이것이 1인당 국민소득이 북한(1,074달러)보다 많은 1,426달러인 잠비아의 실상이다. 잠비아가 일럴진데 케냐(820달러)나 탄자니아(526달러)는 어떻겠는가?
숙소에 돌아와서 맥주 4캔을 마시고 저녁은 생략했다. 오후 5시 반 전기가 나가버렸다. 겨울이라 그런지 해도 빨리 지는 것 같다. 타이레놀을 먹고 잠을 청했다. 푹 자고 일어나니 새벽 2시. 이후 3시, 4시, 5시 계속 잤다 깼다 하다가 6시 반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체크아웃 준비를 하고 어제 일정을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