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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Apr 20. 2020

독서량보다 소화량이다.

 “세밀하게 읽는 의미의 정독과 글의 의미를 바르게 파악한다는 정도를 같은 것으로 혼동에서 생긴 오해다.” -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중에서 


 정독(精讀)과 정독(正讀)은 엄연히 다르다. 세밀하게 읽는 것과 바르게 읽는다는 것의 차이다. 공부 박사로 유명한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이렇게 구분했다. 그가 밝힌 바와 같이 책을 몇 권 읽고 정독하고 필사한 것은 바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즉, 100권의 책을 읽거나 한 권을 10번 읽었거나 필사를 몇 권 했다는 것은 독서의 결과를 말한다. 


 물론 수치화가 되면 나의 독서 업적을 알 수 있어서 독서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되고, 누군가에게도 나의 독서 내공을 쉽게 알릴 수 있다. 상대방은 대부분 “와, 대단하네요. 그렇게 바쁜데, 어떻게 책 읽을 시간이 있으세요?”라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 순간 바쁜 와중에 자투리 시간을 내거나 하루에 다섯 시간, 여섯 시간 동안 책을 읽은 나의 노고도 느껴진다. 보람도 느끼고, 자긍심도 느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이상으로 독서의 양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독서의 양은 그동안 내가 책을 읽은 것에 대한 수확을 보여주고, 나에게 좋은 목표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 목표에 집중하다 보면 책의 메시지를 잊게 되고, 그냥 활자를 해독하는 데 시간을 보낸 결과밖에 안 된다. 


 서평을 쓰거나 블로그나 각종 SNS에 책에 대한 감상을 써야 하는 이유다. 물론 책에 대한 ‘바른’ 해석은 없다. 사람마다 살아온 경험과 배경이 다르므로 글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일 것이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책에 대한 메시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지금 책 한 권을 다 읽었다고 해보자. 우선 책을 덮고 저자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책을 읽기 전에 저자의 말을 읽으면서 책의 주제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30초라도 생각하자.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내가 공감한 내용은 무엇인가? 반면 이해가 안 된 부분이나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인가? 


 최근에 미국의 저명한 외과 의사가 쓴 《어떻게 일할 것인가》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는 학부에서 정치, 경제, 철학을 공부하고, 생물학도 전공했다. 이러한 다양한 배경 덕분에 저자의 글은 풍성하고 다양한 역사와 사례를 다룬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의 의료체계의 문제점, 보험회사에 대한 이슈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서 지식의 깊이를 더했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와 사례를 다루고 있지만, 내가 느낀 저자의 메시지는 단 한 가지였다. 바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성실함이었다. 그것은 저자의 삶과 맥락을 같이했다. 저자는 자신이 믿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하고 그 해답을 찾으려고 많은 사람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외과 의사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집에 돌아오면 자신이 배운 내용과 느낀 점을 기록하고 저술 활동을 이어갔다. 하루도 허투루 보내는 것 없이 의사로서의 직분과 또한 생명에 대한 진지하게 성찰을 하는 철학가로서의 면모를 잊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성실한 자세와 진지함이 나에게 큰 울림을 줬고, 이 책의 서평을 쓰면서도 그 감동이 이어졌다. 영어 제목으로는《Better》인데, 이 또한 하루하루를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살려는 저자의 주장이 느껴졌다. 역시 그 해답도 성실함이었다. 


 요새 멀티미디어의 발달로 성실함보다는 화려한 언변과 모습이 더 주목을 받는 시대다. 시각과 청각이 무엇보다 발달한 시대에서 이러한 마케팅 트렌드에 다들 동참하고 있다. 음지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던 사람들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분명히 긍정적인 면은 많다. 사람들은 SNS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의 삶을 엿보고, 이 세상은 하나로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단지 소비성이 된 미디어에 너무 중독되다 보면 조용히 자신의 길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왠지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초등학생들이 더 빛나 보이는 유튜버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러한 화려함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된다. 


 이렇게 책의 메시지를 음미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깨달음을 얻는다. 어떤 마케팅 전문가는 경제학 서적보다 소설을 더 많이 읽는다고 한다. 이는 명확한 현상보다는 불명확한 미래가 더 많은 경제 전망을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들 수 있다. 독서량보다 소화량이 중요하다면 책의 요점만 정리된 것을 읽으면 되는데, 굳이 300페이지, 400페이지의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가? 괜히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모든 책에는 다른 스토리가 있다. 주제가 비슷하지만, 그 안의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그릿》이라는 책의 주제도 ‘재능’보다는 ‘끈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메시지다. 누군가 단순히 “지치지 않는 끈기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해”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이 책의 내용에 나오는 윌 스미스, 우디 앨런 등의 사례와 과학적인 분석은 나의 마음속 깊이 스며들게 된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몸속에서는 필요한 에너지를 흡수하고 나머지는 바깥으로 표출한다. 그 에너지는 우리에게 움직이고 뇌가 생각할 힘을 준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소화하는 내용은 내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꾼다. 앞서 언급한 두 권의 책이 나에게 큰 깨달음과 충격을 주었다면, 나에게는 ‘성실’과 ‘끈기’의 에너지가 주입된다. 나의 행동은 바뀌고 운명도 바뀐다. 


 예전 같으면 쉽게 포기했을 다이어트나 운동도 윌 스미스의 한마디, 그릿에서 나오는 통계적 지표 등을 통해서 좀 더 힘을 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내 인생에서 ‘돈’과 ‘명예’, ‘직업윤리’ 등 무엇이 중요한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한 외과 의사가 펼쳐내는 직업관도 나의 결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내 생각과 다르다면 그냥 배출해내면 된다. 내 생각과 가치관과 다른 누군가를 알게 된 것만 해도 충분하다. 


 정말 신기한 것은 내가 제대로 소화한 책은 어떤 식으로든 나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어릴 적《삼국지》를 읽고 수많은 영웅의 성공과 실패를 바라보면서 이들의 리더십과 전략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성찰은 나중에 내가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고 소화를 한다는 것은 나의 세포 하나하나, 무의식 어딘가에 그 내용을 새긴다는 의미도 된다. 그래서 독서량도 중요하지만, 소화량은 더 중요하다. 읽은 것을 그냥 배출하는 것보다는 나의 몸 어딘가에 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 에너지의 힘을 무시하면 안 된다. 


 최근에 읽은 책이나 내가 좋아하는 책을 한 권을 앞에 놓고 생각해보자. 이 책의 저자는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나와 다른 생각은 무엇인가? 30초, 또는 1분만 눈을 감고 생각해봐도 책의 내용이 내 몸에 소화됨을 느낄 것이다. 이제 나의 몸 어딘가 깊숙한 곳에 책의 메시지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무려 35조 개의 세포 중의 하나에 말이다. 그리고 세포는 나의 행동과 생각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그것이 바로 독서의 힘이다. 소화량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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