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다.
당시 동네 친구 녀석이 나에게 《三國志》라는 두꺼운 책을 빌려주었다.
그때 한자가 섞여 있던 삼국지는 읽기에 어려웠지만 세로로 읽는 멋이 있고, 책 냄새도 좋았다.
나도 삼국지 팬이라면 책을 3번 던진다는 (관우, 유비, 제갈량 죽을 때) 경험을 했고
삼국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했다.
삼국지의 가장 큰 매력은 수많은 등장인물과 다양한 개성, 전투에 대한 치밀하고 상세한 묘사다.
남자라면 삼국지를 3번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삼국지를 읽다 보면 다양한 인간관계가 나오고 차마 상상할 수 없는 온갖 종류의 권모술수도 나온다.
하지만, 삼국지로부터 권모술수를 배우라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지양(지향이 아닌) 해야 될 인간관계나 처세술을 배워야 한다.
이 역사 소설의 문제는 권모술수, 남성 중심적 사고, 주군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범죄조직인 중국의 삼합회는 자신들의 형상으로
삼각형 안에 칼 또는 관우의 형상을 사용한다고 한다.
삼합회는 조직원들 간에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고, 이를 배신할 시에는 죽음으로 갚는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도 처음 의도는 순수했지만 후세에 이와 같이 변질되었다.
이 책은 ‘후흑학’에 대한 책이다.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초기를 살다간 이종오(李宗吾)라는 사람이 《후흑학》을 저술하고 제창했다.
후흑은 말 그대로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을 합성한 것이다.
즉, 얼굴의 뻔뻔함과 마음의 음흉함이다.
그는 다양한 중국의 역사서와 서적 등을 탐독한 후,
중국인은 “가능한 한 더 많이 철면피가 되고 더 철저하게 흑심을 지녀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후흑학의 대표 인물은 조조와 유비다.
조조는 다들 얼굴이 두껍다고 동의하겠지만 유비는 성인군자이고,
한나라 황실의 먼 종친이라서 정의의 편이 아닌가?
하지만《쌍전》이라는 책에서 류짜이푸 작가는 “‘공자 같은 성인’이라는 간판은
유비가 구사하는 기만술의 키워드”라고 언급했다.
유비는 천하의 조조, 원소, 여포, 유장을 속였다.
조조와 같이 술을 마실 때 본인이 겁쟁이인 것처럼 연기했다.
천둥 번개가 치자 젓가락을 떨어뜨리는 연기를 감행했다.
조조조차도 그 연기력에 속아서 자신과 천하를 다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아카데미 철면피 주연상감이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자신의 종친인 유장을 속여서 그의 땅을 빼앗고 ‘촉’나라를 세운 것이다.
이외에 유비가 조조로부터 도망가기 위해서 조강지처인 미부인, 감부인을 전쟁터에 내버려 둔 것은
애교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충신인 조자룡이 그의 부인과 하나 밖에 없는 혈육인 아두(나중에 촉의 2대 황제가 되는 유선)를 구하기 위해서 전쟁터로 다시 뛰어 들었겠는가?
물론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는 내 사견임을 밝힌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의 뻔뻔함은 필요하다.
너무 정직하거나 순수하게 살다 보면 남들에게 이용당하는 피해를 당할 수 있다.
이곳은 정글과 같은 곳이다. 내가 약한 척을 한다면, 언제든지 맹수들에게 잡아먹힐 수 있다.
하지만 상습적으로 뻔뻔함을 보이는 사람은 가장 중요한 신뢰를 잃게 된다.
세상에는 이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마스크〉라는 영화는 자신감 없는 은행원인 주인공(짐 캐리)이 우연히 얻게 된 마스크를 쓰면서
슈퍼 파워와 자신감을 얻는다는 얘기지만 점차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마스크의 능력에 빠진다.
우리도 우리만의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마스크가 더 오래될수록 벗기 힘들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점차 잊게 된다.
여러분은 어떤 마스크를 쓴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삼국지》라는 책은 우리에게 지양해야 될 인간관계를 알려준다.
그래서 꼭 읽어야 될 필독서인 것이다.
물론 어떤 가면을 쓸지에 대한 선택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