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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Jun 04. 2020

나는 더 이상 명함을 모으지 않기로 했다

위나라 조조가 촉나라 유비와 한중이라는 지역을 놓고 세력을 다툴 때의 일이다. 조조는 유비의 한중을 차지하기 위해서 계속 공격 했으나 험준한 한중 지방은 쉽사리 점령되지 않았다. 조조 군의 사기는 점차 떨어지고 있었고, 조조는 어떻게 해야 될지 고심했다. 그는 저녁 식사로 닭국을 먹었는데 닭갈비 뼈가 먹을 수도 없고 버리기도 아까웠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날 암호를 닭의 갈비뼈라는 뜻인 ‘계륵’이라고 명했다. 다른 사람들은 영문을 몰랐으나 주부로 있던 총명한 양수는 다른 사람들에게 퇴각 준비를 명했다. 닭갈비 뼈는 버리기 아까운 부위지만 먹을 만한 데가 없기 때문에 무리해서 먹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명함은 나에게 있어서 ‘계륵’ 같은 존재다. 한창 바쁘고 젊을 때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명함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 명함들이 어느 순간 집안 곳곳에 쌓이게 되었다. 버리자니 아깝고 안 버리자니 짐이 된다. 하지만 삼국지에 나온 계륵의 일화처럼 이런 경우는 과감히 버리는 것이 낫다. 그래서 틈이 날 때마다 명함을 한 장 한 장 꺼내면서 정말 내게 필요한 명함만 스마트폰의 어플을 이용해서 스캔하고 정리한다. 


이 계륵 같은 명함을 많이 모아서 인간 네트워크를 늘린다면 업무상 많은 장점이 있을 것이다. 명함의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네트워크와 인간관계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즉, 명함을 통해서 생긴 수많은 네트워크를 참된 인간관계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고대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불행은 진정한 친구가 아닌 자를 가르쳐준다.”라고 말했다. 주변에 많은 지인들이 있더라도 내가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나를 위해서 나서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이자 인간관계다. 


우리도 살면서 이러한 일을 점차 경험하게 된다. 인간관계를 통해서 감동을 느낄 수 있고,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예전 직장 선배가 이런 얘기를 해줬다. ‘경사 (예를 들어 결혼식 등)’는 꼭 참석할 필요는 없지만 ‘조사(장례식)’는 꼭 참석해야 된다고 말이다. 아무래도 힘들 때 나에게 힘이 돼 주는 사람이 훨씬 더 고맙고 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갖고 한 얘기는 아니지만 결혼식장보다는 아무래도 장례식 장에서 우리는 서로의 진솔한 모습을 보게 된다.
 
 ‘지음지교’(知音之交)는 《열자》, 여씨춘추에 기록된 이야기로 ‘나의 음을 알아주는 친구’라는 뜻으로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인 백아와 그의 친구 종자기의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춘추시대 진나라의 관리 중에 백아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거문고에 아주 능했고, 거문고를 타면 여섯 필의 말이 풀을 뜯다 고개를 쳐다본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있다. 재미있게도 평범한 나무꾼인 종자기가 그의 높은 경지를 알아주었다. 백아는 종자기의 평가를 들을 때마다 감동을 받고 자신의 기량이 더 원숙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종자기가 병들어 세상을 떠나자 백아는 비통해하면서 거문고 줄을 끊고 죽는 날까지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지금 내 주변에 친구들이나 동료 등을 둘러보자. ‘지음지교’와 같이 나를 알아주고 속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나 가족이 몇 명이나 될까? 내가 어려울 때 나서서 도와주거나 또는 그들이 어려울 때 내가 도와주고 싶은 친구들이 몇 명 있는가? 
 


전 세계 최고 부호 중의 한 명인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의 25년 차를 극복한 우정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이 같이 브리지 게임을 하는 것이 종종 신문에 보도될 정도다. 한 명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자이고, 한 명은 IT 계의 거물인데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배우고 있다. 워런은 불확실한 IT 주식에 투자를 안 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빌로부터 마아크로소프트 사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무려 100주를 샀다. 빌로부터 자선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고, 거액의 돈을 빌의 재단에 기부한다. 빌도 워런이 주주들에게 발송하는 연례 편지를 보고 본인도 게이츠 재단의 연례 편지 발간을 시작했고, 시간을 소중하게 쓰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우정이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아주 많고 특히 정신건강과 장수의 비결로 꼽힌다.
 대표적인 심리학자이자 TED 강연으로 유명해진 수잔 핑커 박사가 이탈리아의 유명한 마을의 장수 비결을 조사해본 결과 그 비결이 꼭 맑은 공기나 고혈압 여부, 운동이 아니라고 한다. 바로 ‘인간관계’에 있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는 “우리 모두는 인생의 격차를 줄여주기 위해서 서 있는 그 누군가가 있기에 힘든 시간을 이겨내곤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우리는 주변에 누군가가 필요하다. 성별, 나이, 국적, 사람, 동물, 식물 상관없이 자신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하다. 단순히 사람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자신과 감정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든지 애완동물이든지 심지어는 식물이라도 있으면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나도 고민거리나 어려운 점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과 상의한다. 그 친구들은 동갑내기도 있지만 선배나 후배들도 있다. 즉, 나이 차이는 상관없다. 정말 깊은 고민은 형이나 가족, 와이프, 심지어 아이들에게도 물어본다. 사람뿐만 아니라 책이나 글쓰기, 음악 등에서도 답을 찾는다. 책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조언과 말씀이 농축되어 있고, 글쓰기를 하다 보면 나 자신의 마음을 비춰보게 되고 고민도 저절로 풀린다. 하다못해 음악 가사도 나를 위로한다. 나에게는 김필, 곽지원의 〈지친하루〉, 이적의 〈말하는 대로〉, SES의〈달리기〉등의 음악이 나만의 ‘위로송(song)’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명함이란 무엇이고, 진정한 인간관계는 무엇인가?
 
명함은 옛날 중국에서 대나무를 깎아 이름을 적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내 이름을 상대방에게 알리기 위해서 사용한다. 말 그대로 나를 알리기 위한 ‘네트워크’용이다. 반면 인간관계는 사람 간의 보다 진솔한 관계다. 사회생활을 위해서 네트워크를 어느 정도 구축할 필요는 있지만 이를 인간관계와 헷갈려서는 안 된다. 단순히 아는 선배, 후배, 동료 등의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진정으로 가치 있고 중요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니 이제는 보다 가치(Value)있는 관계를 위해서 힘쓰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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