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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단 Nathan 조형권 Jun 13. 2020

컬쳐를 이해하지 않는 외국어 공부는 껍데기 일 뿐이다.

“또 어학 강좌 등록하셨어요?” 


 오늘도 이런 질문을 들었다. 바쁜 회사생활에서도 사내 어학강좌는 계속 등록했다. 퇴근 후나 주말 과정을 등록했거나 시간이 없으면 온라인 강좌나 전화 외국어 강좌를 등록했다. 지금도 일본어, 중국어를 번갈아 가면서 공부하고 있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외국어 공부에 대한 열정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학교 다닐 때도 전공과목은 소홀했지만 학교 내 어학강좌는 열심히 들은 기억이 난다. 영어를 좋아하시는 철학자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것인가? 해외여행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영향인가? 왜 이렇게 나는 외국어 공부를 멈출 수 없는 것일까? 나에게 무슨 잠재의식이 있는 것일까?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일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은 외국어를 하나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it)의 질문 응답 이벤트에서 ‘가장 후회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외국어를 배워두지 않은 것, 영어밖에 못해서 멍청한 것이 일생 중 가장 큰 후회’라고 말했다. 그는 페이스 북의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중국 대학생들과 중국어로 질의응답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부자 중의 한 명임에도 불구하고 빌 게이츠는 외국어 공부의 중요성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아마도 빌 게이츠는 외국어보다는 컴퓨터 언어에 더 관심이 있었고, 외국어를 쓸 필요가 있는 환경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가 전 세계 공용어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지 모른다. 사실 마크 저커버그도 중국계 미국인 부인을 만나지 않았다면 중국어를 배울 필요성을 느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아마 그는 중국어 공부를 통해서 비즈니스 측면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부인의 모국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직까지도 외국어를 공부하는 열정이 있는 것은 앞 장에서 언급한 ‘호기심’때문이다. 호기심은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사, 생활양식, 사고방식 등에 대한 관심이다. 이를 통틀어서 넓은 의미로 ‘컬처’(Culture)라고 하자. 이러한 배경에는 원인이 있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다른 공부보다 한자를 많이 가르쳐 주셨다. 매일 3~5장씩 한자 학습지를 외우고 시험 봤는데 그때 배운 한자를 통해서 한자의 매력에 빠졌다. 특히 상형문자를 보면서 나무가 어떻게 나무 목(木)이 되고, 물 이 어떻게 물 수(水)가 되는지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한자에 대한 관심은 우리나라, 더 나아가서 중국, 일본의 역사와 문화까지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만약 어머니가 그렇게 한자를 열심히 가르쳐주지 않았다면(물론 그때는 안 외웠으면 혼이 났다.) 나의 잠재의식에는 한자에 대한 어려움, 거부감으로 인해서 다른 동양권 문화 및 언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이런 어릴 시절 경험이 자연스럽게 중국과 일본 문학을 접하게 만들었다. 학창시절 읽었던 《삼국지》, 《수호지》, 사마천의 《사기》, 심지어 김용 작가의 무협 소설은 중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읽은 일본 소설 《설국》도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화 및 역사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게 만들었다. 이렇게 그 나라의 문화, 사고방식에 대한 관심이 저절로 외국어 공부를 하도록 이끌었다. 나의 꿈 중에 하나는 일본인 친구가 선물해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노르웨이 숲》 원본을 읽는 것이다. 지금도 내 책장에 꽂혀있는 이 책을 볼 때마다 일본어 공부의 열정이 살아난다. 
 
 이제는 승진이나 입시 준비를 위해서 언어의 기술만 습득하는 시절은 지났다. 이렇게 배운 언어의 수명은 짧다. 또한 아무리 본인이 외국어를 잘한다 해도 현지인을 따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나라의 문화, 관습, 역사 등은 관심을 갖고 공부하다 보면 오히려 현지인을 앞설 수 있다. 상상해 보자. 외국인이 단군 신화를 얘기하고, 호랑이와 곰이 동굴에서 마늘을 먹고 견디었던 신화를 얘기한다면 얼마나 놀랍겠는가? 선배 중에 일본어를 현지인 수준으로 구사하시는 분이 있다. 그분이 일본인들 사이에서 유명하게 된 것은 그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뿐만 아니라, 일본인도 잘 모르는 일본 문화, 역사에 대한 이해도 때문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받고, 제2의 인생도 일본에서 시작했다. 그것도 평소 그의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최근 미국에서는 컴퓨터 코딩 교육 열풍이 불면서 외국어 교육이 홀대를 받고 있다고 한다. 프로그래머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컴퓨터 전공이 취업에 유리해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코딩 위주의 수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코딩과 외국어는 완전히 다른 분야다. 코딩은 나만의 컴퓨터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고 외국어는 낯선 이와 상호 소통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아이들에게 코딩을 가르치려고 하지만 다른 나라를 이해시키는 것도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남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남을 존중’하는 사고방식을 키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는 세계 지도가 펼쳐져 있다. 한비야 작가도 어렸을 때 집에 세계 지도가 있어서 넓은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외국어 공부를 할 때 주의할 점은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습관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아무리 영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스페인어 등을 구사한다고 해도 그 나라의 컬처에 대한 이해 없이 한국식으로만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현지 언어를 훌륭하게 하더라도 큰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 태국에서는 머리에 신성한 영원히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머리를 만지면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인도에서는 왼손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식사나 악수 시에는 오른손을 이용해야 된다. 중국에서는 시계를 선물해서는 안 되는데, 시계라는 단어가 죽음을 뜻하는 단어와 비슷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젓가락으로 반찬을 옮기지 말라고 한다. 화장터에서 뼈를 옮기는 것을 연상시켜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그렇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언어를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고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 즉 컬처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심과 이해는 우리가 외국어를 공부하는 중요한 목적이자 즐거움이 된다. 외국어가 다소 서툴더라도 컬처를 이해하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깊은 이해가 없이 단순히 기술을 배우는 언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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