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육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한없이 작아진다. 쌍둥이를 키우기 위해서 장인어른, 장모님 그리고 와이프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서 나는 비교적 편안하게 육아의 시기를 넘겼다. 그런 면에서 정말 할 말이 없다. 회사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핑계로 새벽에 깬 아이를 와이프에게 맡기고는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더 돌아보게 되었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저자 김소희 작가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너무 넘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엄마였다. 물론 평범하지는 않았다. 공무원이었고, 아이도 세 명이었기 때문에 워킹 맘의 역할을 하면서 세 아이의 엄마를 병행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이야기한다.
마치 글이 나의 따귀를 때리는 느낌이었다. “정신 차려 이 양반아~!” 그러면서도 묘한 속 시원함을 느꼈다. 저자의 목소리는 수많은 워킹 맘을 대변하면서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외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이를 너무나 예쁘게 키우고 싶어서 온갖 정성을 다 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고, 아이에게 시간과 정성을 바쳐야 했다. 한 마디로 ‘나 자신’이 없는 것이다. 저자를 이를 “테이프로 꽁꽁 싸맨 1+1 과자 봉지의 신세가 딱 우리네 모습이다”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더군다나 두 아이가 아프게 되면 엄마도 아프게 되면서 2+1이 된다.
시간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세 아이를 데리고 키즈 카페를 가면 5만 원은 우습고, 고깃집은 10만 원, 교육은 100만 원이 우습다고 한다. 정말로 그렇다. 아이들에게 조금 더 좋은 경험을 시키고, 더 많이 음식을 먹이고,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하려면 그만큼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외벌이보다는 힘들더라도 맞벌이가 계속 늘어나는 이유다. 아이들은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 더 정에 고프게 되면서 서로 힘들게 되지만 말이다.
마침내 저자는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나섰다. 그것이 결국 자식에게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억울한 마음을 갖게 되면 마음에 울분이 쌓이고 아이에게 그 화를 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한다면 조금 거리를 둬야 한다. 나의 뜨거운 마음으로 인해 아이들의 마음에 화상 자국이 생기지 않도록, 내 방식대로 준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증오의 화살로 바뀌지 않도록, 결국 식어버린 사랑에 마음이 얼어붙어 차가움이 서리지 않도록 말이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간절할 정도로 아이들에게 매달린다.
“첫아이에 대한 엄마들의 애정을 한 데 끌어 모아 측정할 수 있다면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도, 자비로우신 부처님도 감동할 만큼 눈물겨우리라.”
아이들이 그것을 사랑으로 받아주면 다행이지만 때로는 그 사랑을 부담스러워한다. 더 좋은 교육, 옷, 환경은 필요하지만 그것을 강요하다 보면 아이들은 피곤함을 느낀다. 때로는 아이들이 뛰어다니면서 자연 속에서 더럽혀지도록 놀게 내버려 둬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혹시라도 옷이 더러워질까 봐 병균에 옮을까 봐 노심초사한다. 아이들에게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한다.
그렇게 ‘내리사랑’을 주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그 사랑을 돌려받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너도 공부 잘해야 하고, 말도 잘 듣고, 나중에 나한테 베풀어야 한다고 은근히 강조한다. 사실 나도 농담 삼아서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을 계약서로 써서 돌려받겠다고 하지만, 그만큼 부모는 은연중에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것은 그만큼 내가 희생했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좀 더 절제된 사랑을 하려고 노력한다.
“아이에게 최고로 좋은 것을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꼭 아이에게 최고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셋째 아이를 낳고 복귀한 직장일은 더 힘들었다.
그녀가 표현한 대로 집은 ‘아침에는 전쟁터, 밤에는 야전병원’이었다. 아이들을 아침마다 깨워서 밥을 먹이고 유치원에 보내는 것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나도 이 전쟁터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저자처럼 ‘헐크’로 변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녀가 녹초가 되어서 집에 오면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을 텐데도 그럴 만한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저자가 말한 것처럼 두더지 게임과 마찬가지였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진다.
저자는 마침내 자신에게 좀 더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책을 읽을 시간이라고 양해를 구하니, 아이들도 책을 들고 와서 같이 읽기 시작했다. 학교 공부보다는 아이들에게 더 시간을 주기로 했다. 같이 책을 읽고, 아이의 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같이 대화를 나눴다.
“행복은 전염된다더니 책을 보며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도 이내 행복해한다.”
저자는 지금도 육아로 바쁜 삶을 살고 있지만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가족과 함께 같이 이야기하고,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맥주와 독서,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서 선물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한 행위임을 깨달았다.
이 책의 목차만 읽어봐도 저자의 처절한 투쟁과 이를 극복한 과정이 보인다.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이 책을 읽고 같이 공감하고,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