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사치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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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10만 명. 5년 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난 숫자. 무엇인가 싶어 신문기사를 계속 읽어보니 20대 우울증 환자의 숫자였다. 이렇게나 많았던가. 원래 50대 우울증이 가장 많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숫자가 역전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면서 20대에게 단순히 “우울증 그거 별거 아냐”라거나 “마음만 밝게 먹으면 이겨낼 수 있어”라며 의미 없는 말을 휙휙 던질 어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혹시나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너무 쉽게 해버린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금 살펴보게 된다.


주위에 꼭 20대가 아니더라도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많았다. 그분들이 마음의 병으로 아파하고 괴로워할 때 하시던 말이 있었다. “힘내라는 말이 참으로 공허하게 들렸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울증을 정신이상으로 치부하고는 슬슬 피하곤 하지요. 그게 사실 더 힘들고 괴로워요. 그렇게 하면서 힘내라니요.” 충분히 일리가 있고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인터넷에서 여러 게시판들을 둘러보다보면 20대 우울증 이야기가 참으로 많다. ‘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들어갔는데 도무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친구들도 주도적으로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아직까지 서로가 낯설기만 해요. 삶이 어떻게 될지 전혀 감을 못 잡겠어요.’ ‘취업 때문에 미치겠어요. 너무 우울해질 뿐이네요.’ ‘우리 집은 왜 이렇게 불행하기만 할까요.’


이러한 글을 보다가 댓글을 보면 더욱 마음이 아파진다. ‘여기는 운동을 이야기하는 곳인데 이렇게나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너무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와 비슷하네요.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맨날 극단적인 생각만 하는데 저 스스로가 이제는 무섭네요.’


그런데 이제는 우울증만이 문제가 아니다. 공황장애, 강박증, 조현병에 이르기까지 마음의 병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가장 건강하고도 밝게 삶을 이끌어가야 하는 20대에서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입시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과 강박증의 고통을 그대로 느껴본 경험이 있다. 그중 강박증의 경우는 여전히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아픔을 여태껏 껴안고 살아오는 것이 그리 힘들 줄은 몰랐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자꾸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데 제자리에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뒤로 자꾸 밀려나는 기분. 누군가 자꾸 끌어당기는 느낌. 그래서 더욱 괴로웠다. 삶에서 뒤처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주저앉고 나면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가족도 나의 괴로움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해주었다. 하지만 병원에 간다는 것 자체는 두려움이었다. 당시에는 마음의 병으로 병원을 찾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미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한 두려움과 편견을 함께 품고 찾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찾은 병원은 나의 마음의 병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너무나도 성의 없는 상담에 실망하고 말았다. 다음 환자를 빨리 받기 위해 나와의 상담은 1분 정도 했던가. 그러다 보니 결국 병원에서는 치료받을 수 없구나, 라며 속단하고서 계속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나 역시 내 삶이 사치라고 느끼고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할 뻔한 적이 있었다. 학교 화장실이었던가, 회사 화장실이었던가 정확한 장소는 기억나지 않지만 화장실 문을 잠그고서 바닥에 주저앉아 펑펑 울다가 왼팔 손목을 뚫어져라 쳐다봤던 그 차날. 내 안의 거대한 악마는 계속 디테일하게 종용하고 있었는데 그걸 시도할 용기가 나지 않았음에 지금은 더없이 감사한다. ‘그래, 이걸 시도할 정도로 용기가 있다면 이걸 하지 않을 용기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마음이 깊은 한 켠에서 피어올랐고 결국 나는 그으려고 했던 왼팔로 눈물을 훔치며 세면대에 다가갔다. 그리고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분명히 있을 ‘내’가 거울 앞에 서서 눈물로 범벅이 되어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가를 훔치며 서 있는 것이었다. 그날의 실패가 지금의 나를 만든 시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해본다. 실패가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는 것이다.



굿바이, 병들고 아픈 황사 빛깔 봄이여


사치라 느껴진 순간이 시나브로 변하고 있었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무작정 그러한 마음이 든 것은 아니었다. 손을 뻗어줄 누군가를 찾으면서, 도움을 요청하면서 나를 다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두 손을 꼬옥 잡아줄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라고 외칠 수 있었다.


나는 의사에게서 그러한 행복을 찾진 못했지만, 의외로 내 주위에 그렇게 행복을 건네줄 사람이 있다는 것에 크게 감동했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별 것 아닌 것 같은, 어둡고도 우울한 이야기일 테지만 그러한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것만으로도 아픔의 끝부분부터 바스락거리며 떨어져나가는 확신이 들었다. 콜록콜록 감기를 한 번에 낫게 하는 백신은 아닐지라도 나는 치유 받는 느낌을 충분히 안고서 하루하루를 잘 이겨내고 버텨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 왜 그런 무서운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런 후회가 몰아쳤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고통과 아픔과 두려움은 전체는 아니어도 한 뭉텅이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누구나 마음의 병으로 아플 수 있다. 실제로 더없이 많은 사람들이 표를 내지 않거나 자신도 모르는 가면우울증을 겪으며 아파하고 있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아프다고 하여 마음의 문을 열쇠로 꽉 걸어 잠그고 거기서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 행동이다. 절대 그러지 않아야 한다. 마지막 힘을 다 쥐어짜내더라도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가족에게 알리고, 친구에게 알려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작지만 소중한 한마디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충분히 이유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밀알 같은 한마디가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꼭 자신의 아픔을 알려야 할 것이다. 버텨 일어설 수 있는 마지막 용기가 우리에게는 존재한다.


청춘(靑春)은 말 그대로 ‘푸른 봄’을 의미한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는 푸른 봄을 만나기 힘들다. 미세먼지로 뒤덮여버린 봄이며 봄의 길이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딱 지금 청춘들의 입장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병들고 아픈 황사 빛깔 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내 마음도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