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수산시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리지만, 그때의 그 펄떡임과 활기는 좀처럼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힘들거나 지치거나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그 당시를 떠올릴 때가 종종 있다. 정말 새벽이었던 것 같다. 늦가을이라 너무나도 이른 새벽은 한밤중이나 다름없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하니까.
하늘에는 여전히 별이 몽글몽글 떠 있었다. 밤 12시 즈음보다 이른 새벽하늘에 별들을 조금 더 새겨져 있는 듯했다. 새벽에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덜 부끄러운가 보다. 어둠 뒤편에 숨어 있다가 몰래 구경 나온 부끄럼 많은 다섯 살 아이 같다. 밤을 새고서 그곳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어느 책에서 새벽 수산시장을 방문하면 삶에 커다란 활력을 느낄 수 있다는 문장을 읽은 기억이 났기 때문에 며칠간 벼르다가 찾아가보기로 했다.
출근시간에 사람들이 이렇게나 에너지가 넘칠까. 점심시간에 생기가 터져 나올까. 이도저도 아니면 퇴근시간에 모두들 기뻐하며 회사 건물을 나설까. 다들 늘 지쳐 있고, 피곤에 절어 있고, 누군가와 한마디 말 나누기도 거부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기대고 서 있기 때문에 사람 ‘人(인)’이라는 한자가 만들어졌다는데 요즘에는 서로 기대는커녕 실수로 기댔다가는 난리가 나기 일쑤이다.
그런데 늦가을의 새벽 수산시장에는 비명이 여기저기서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고, 불빛은 태양빛을 이길 정도로 밝게 빛난다. 활기, 생기, 에너지 이런 단어는 이곳에서만 가능한 것만 같다. 더불어 물고기들을 퍼덕거리고, 펄떡인다. 무심하게 지나가다가 물길질 하는 고기들 때문에 옷이 젖기라도 하면 대략 난감해질 정도이다. 그만큼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수산시장에 도착하기 전에는 졸린 눈을 겨우 비비며 왜 괜히 여기까지 꾸역꾸역 찾아왔나 싶었는데, 막상 5분, 10분 둘러보니 내가 너무 의욕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서 텐션으로 중무장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 수 없었다. 수백 명 앞에서 외치는 강사들의 파이팅보다 이곳에서 직접 보고 느끼는 감동과 현장감이 수백 배는 더욱 뜨거웠다. 동시에 충분히 차갑기도 했다.
수산물을 거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각, 소리를 지르고 대화를 나누는 청각, 기회가 된다면 현장에서 바로 스윽 초고추장에 찍어 먹을 수 있는 미각, 비릿한 냄새가 입구에서부터 솟구쳐 오는 후각, 더불어 조금이라도 좋은 수산물을 얻고자 바삐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과 부딪힐 때 몰아쳐오는 촉각까지 오감이 쉼 없이 움직이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하루 중 새벽에 생명이 깨어난다고 하더니 정말 그 중에서도 새벽 수산시장에서 모든 생명이 기지개를 켜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땡땡땡. 적막한 산 속에 사찰의 처마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풍경소리만 들려온다. 이에 하모니를 이루어 목탁소리가 이중주를 이룬다. 그런데 소리가 겹치기보다는 교묘하고도 절묘하게 빈 공간을 밀고 들어온다. 그러다 보니 눈을 절로 감고 호흡을 크게 들이쉬게 된다. ‘아, 내가 템플스테이를 하러 이곳에 당도하였구나.’
종종 찾는다. 번잡하고도 소음으로 넘쳐나는 도시를 벗어나 한적하나 못해 밤이 되면 약간 무섭기도 한 이곳 사찰로 나는 숨어든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멋을 냈던 옷들도 벗어서 차곡차곡 고이 접어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곳에 밀어 넣는다. 갈아입는 옷은 최대한 펑퍼짐하고도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 그런 옷이다. 휴대폰도 잠시 꺼두거나, 역시나 보이지 않는 곳에 밀어 넣는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하는 느껴본다. ‘아, 내가 템플스테이를 하러 이곳에 당도하였구나.’
휴식을 위한 템플스테이는 처음에 주의사항만 인지하고 나면 사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그만 참여하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대청마루에 앉아 둥둥 떠가는 뭉게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시선을 약간만 내리면 건너편에 보이는 복숭아나무가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둘이 눈싸움을 하듯 그러고 앉아 있는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아, 내가 템플스테이를 하러 이곳에 당도하였구나.’
식사를 한다. 풀밖에 없다. 아니다. 정확히는 곡물뿐이다. 산나물들이 우글우글거린다. 익숙하지 않다. 채식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식사시간이다. 발우공양은 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자락에 앉아 있는 해가 금세 지평선을 넘어간다. 아니 이곳은 산속이 산 뒤편을 넘어간다고 해야겠지. 밤이 빨리도 찾아온다. 할 게 없어서 자야 한다. 밤 10시도 되지 않아 잠자리에 든다. 도시에서 안 보이던 별들은 다 여기 붙여놓았나 보다. 별들도 도심의 미세먼지나 공해보다는 이곳의 신선한 공기가 더 좋겠지. 별들도 건강을 챙기는 것만 같다.
베개에 머리를 대면 언제 잠들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잠을 잘 자기 때문에 새벽녘 목탁소리가 생각 이상으로 또렷하게 들린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에게는 너무나도 죄송한 말이겠지만, 난 불면증이 뭔지 전혀 모른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뭐라 대꾸할 수도 없다. 이런 거 보면 정말 간접경험보다 직접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여하튼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셔도, 투샷 에스프레소를 마셔도 바로 곯아떨어진다.
새벽 3시 30분에 기상이었던가. 108배는 빠지지 않는다. 자리에서 앉았다가 엎드렸다가 일어났다가 하는 반복적인 움직임이 뭐 그리 힘들겠냐고 누군가 지적하겠지만 한겨울에 하더라도 온몸이 땀에 흠뻑 젖는다. 그리고는 역시나 새벽식사라 하는 편이 나을 것만 같은 아침식사를 먹는다. 운동했으니 그나마 어제보다는 입맛이 살아 있다. 오늘도 산나물들이다. 나물, 나물, 나물, 나물, 나물, 뒷산에서 나물 귀신이 내려올 것만 같지만 그래도 오늘은 한 술 뜬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는데 내 가슴속과 영혼은 뭔가로 꽉 채워져 가는 느낌이다. 그래, 버려야지 비울 수 있는 것이니까. 곪아서 터지기 직전인 것들을 탈탈 털어내어야 새로운 것들을 하나둘씩 채울 수 있다. 그 과정을 이곳에서 경험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경험들을 20대에 해보았다. 소개하고픈, 재미있으면서도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 좀 더 있지만 다음번에 기회가 될 때 나머지는 풀어보려고 한다. 너무나 생기가 넘쳐 하루 종일 그 에너지를 받아 텐션을 높일 수 있는 곳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을 해버린 것만 같은 곳까지 조금이라도 일찍 경험할 수 있어서 나는 행복했다. 이러한 추억을 이유 있게 곱씹는 것이야말로 내가 누릴 수 있는 영광이자 기쁨이 아니겠는가. 그 기억들을 헤집어 가며 나는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당신에게도 그러한 에너지원이 되는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나쁜 경험이었다면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것이고, 좋은 경험이었다면 다시 한 번 그렇게 함으로써 또 다른 기쁨을 느끼면 그만이다.
그래서 누군가 묻는다. 바로 이렇게. “스무 살로 돌아가시면 뭘 해보고 싶은가요?” 나는 이렇게 답한다. “굳이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는 지금의 내가 좋거든요. 한 번도 지난날의 나에 대해 실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아요.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요.” 당당함, 자존감, 자신감까지 그때의 내가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다. ‘고맙다, 나의 첫 번째 스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