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또다시 공부하는가
2016년 2월, 내 생일을 전후해서 나에게 무슨 선물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기준이가 기준이에게’ 정도 되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나에게 선물을 하려고 무척 고심하고 있었다. 마흔이 넘어버리니 딱히 갖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생일 파티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생일 파티를 하며 그나마 남은 최후의 미혼 친구들도 부르고, 넋두리가 필요한 기혼 친구들도 부르고, 생일 선물도 받고, ‘해피 벌쓰데이 투유’를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들으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한 해가 지나고, 그 다음해를 맞이하면서 생일 파티에 대한 애착이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귀차니즘만 쓰나미처럼 몰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왠지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어휴, 낼 모레 마흔인데 생일은 무슨 생일.’ 그러한 마음가짐이 더욱 나이 들게 한다고는 하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기에 2016년 2월의 생일은 그냥 그렇게 혼자서 보낼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내가 나에게 선물은 주고 싶었다.
영화 <동주>를 관람했다. 낮 시간에 홀로 극장을 찾았다. 영화관에서 티케팅을 하고서,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딱히 팝콘과 콜라 세트는 사지 않았다. 그냥 마음 편하게 차분하게 영화에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우 강하늘과 박정민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만 이준익 감독이 근대사를 다루었다는 그 자체로 기대감이 컸다. <왕의 남자>가 있었으니까.
객석에 앉아 있을 때 나란 존재는 감정에 최대한 솔직해진다. 힐끗 쳐다보는 사람조차 없을 테니 눈물을 쏟고 싶으면 무한대로 쏟아내고, 웃고 싶으면 옆 사람이 민망해할 정도로 박장대소를 뿜어내곤 한다. 오죽 했으면 너무 웃느라 두 번 다시 같이 영화 보고 싶지 않다며 영화관람 절교를 선언한 친구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그날도 감정은 최대한 솔직하게 드러났다. 숨을 죽였으나, 눈물을 쏟아내진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눈물을 삼키기만 했다. 그리고는 극장 문을 나섰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음가짐이 컸다. 이 영화를 110분, 즉 6,600초 동안 관람하고서 그냥 머릿속에 추억으로만 남겨둘 수는 없었다. 독립투사도 아니요, 국뽕에 취해 대한독립만세를 부를 만한 위인도 절대 아니지만 그 순간의 뜨거운 감정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나에게 무슨 생일 선물을 해야 할지 결정해버렸다.
내 등에 윤동주의 <서시>를 타투로 새기기로 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타투는 너무 아프다. 아파도 너무 아프다. 재봉틀의 바늘이 몇 시간 동안 나의 살갗을 쉴 새 없이 파고드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도 그 아픔이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진다. 그래서 타투를 했다. 그 고통을 간직해야 웬만한 삶의 고통은 아프지 않을 것만 같았다. 좋았다. 그 기분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무일푼으로 서울에 혈혈단신으로 상경해 지금까지 잘 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 사이에 겪었던 숨기고 싶은 아픔과 배신, 상처, 그림자, 고통, 미움, 서러움 등은 말로 쉽게 표현하기 힘들다. 나만이 간직하고 절대 열고 싶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 같은 감정들이다.
그래서 지인들은 처음에 타투를 하게 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지금은 하나둘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해해달라고 우기거나 설득하지도 않았지만.
이 시(詩)를 꼭 등에 새기고 싶었다. 잘 보이지 않는 등에 새겨야만 했다. 언제든 눈에 바로 띠는 감정으로 품고 싶지 않았다. 소중했던 감정이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고이고이 숨겨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 감정을 들춰내려면 거울이 있어야 겨우 가능하고, 그것도 보려고 애를 써야 겨우 볼 수 있는 그런 미증유의 감정이었다.
이후 유명 저자가 집필한 10권짜리 근대사 책을 세트로 구입했다. 차근차근 읽어내려 갔다. 단편적으로나마 알고 있던 아픔의 역사가 퍼즐처럼 착착 맞아 들어갔다. 전체를 다 읽었더니 도무지 알지 못하는 스핑크스의 기묘한 수수께끼를 풀어낸 기분이었다. ‘아, 이랬구나. 우리나라가 이래서 지금에 이르렀구나.’
유럽에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아픔의 역사와 그 증거들도 소중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곤 했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역사적 지식을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영어로 조곤조곤 풀어냈다. 나의 의중을 100퍼센트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식민지의 역사를 품고 있던 친구들과 함께 우리끼리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나라의 친구들은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그랬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 싶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굳이 ‘내 나라’로 나눌 필요가 뭐에 있으며, 국가가 나한테 그동안 뭘 해줬는데 하는 말도 주위에서 종종 듣곤 한다. 하지만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패닉 상태에 빠져버린 요즘 국가의 중요성에 대해, 내 나라의 품격에 대해, 이 땅의 고마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역사책을 자주 읽으려고 노력한다. 한 권 한 권에서 소개하는 이야기를 볼 때마다 가슴이 찌릿하기도 하고, 속이 다 후련하기도 하다. 국뽕영화라며 숱하게 비난하는 목소리가 많을지라도, 영화 <명량>이 여전히 관객동원 1위를 굳건하게 지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 영화는 아버지와 유일하게 관람한 영화이기도 하다.
다른 공부도 중요하지만 역사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혹시라도 너무 바쁘다면, 요즘 TV에서 역사 예능도 방영되고 있으니 그것이라고 놓치지 말라고 당부하고자 한다. 역사를 잊은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나는 역사학자나 미래학자가 아니기에 그 맥락과 흐름을 100퍼센트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과거는 현재를 지나 미래에까지 닿아 있지 않은가.
어찌 보면 나라는 공기와 다름없다. 늘 숨 쉬고 있는 공기이지만, 그 공기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늘 여기에 살고 있어서 우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겠지만, 그 나라가 어느 순간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우린 공기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사라질 것이라 단 한 번도 생각하지는 못하지만,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100억 분의 1의 가능성으로 정말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우리도 없어질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역사 공부, 아니 그냥 역사책 한 권이라도 읽어보라고 권한다. 아니면 팟캐스트나 오디오클립, 오디오북 등에 찾아오면 그에 필적할 만한 역사 채널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러한 고마움의 짜릿한 감정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내 등 어딘가에 한 땀 한 땀 새겨져 있다. 나는 2016년 2월 ‘기준이가 기준이에게’ 전달한 선물이 너무 고맙다. 영원히 나에게서 떠나지 않을 선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