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취미 수집
오른손잡이라면 오른손으로, 왼손잡이라면 왼손으로 가볍게 거머쥔 연필 또는 볼펜, 아니 만년필을,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붓을 이용해 너무나도 맑고 순수해서 도저히 더럽히고 싶지 않은 새하얀 종이 위에 직접 ‘써내려가는 행위’를 ‘쓰다’라고 생각해 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비록 사전에서는 ‘쓰다’를 정의하는 몇 가지 의미가 더 존재할지라도….
촌스럽고도 시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더없이 주관적인 생각이라며 ‘다르다’가 아니라 ‘틀렸다’고 해도 상관없다. PC, 노트북에 이어 스마트폰과 태블릿까지 넘쳐나는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냐고 되물어도 나의 믿음은 확고하다. ‘펜을 쥐고 있는 손끝은 섬섬옥수(纖纖玉手)’라는 나만의 묘한 판타지마저 한 몫 하기 때문이다.
많은 책의 표지에서, 또는 인터넷 세상에서 글쓰기 관련 이야기를 끄집어낼 때 수없이 등장하는 사진 한 장, 바로 글을 쓰고 있는 헤밍웨이의 모습. 써내려가고 있는 새하얀 종이 색깔 못지않게 덥수룩한 하얀 구렛나루, 지적인 이미지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안경, 정자세가 아니라 삐딱하다 못해 구부정한 모습에 살짝 주름이 깃든 이마까지 섹시해 보이는 헤밍웨이. 그렇게 글을 씀에 있어 표준과 같은 모습을 오래도록 동경해 왔다.
분명 헤밍웨이는 글을 쓰고 있었다. 《무기여 잘 있거라》를 39번 고쳤다는 그의 고백을 가슴에 품으며 경의를 표하지만, 이 사진에서 그는 39번째 퇴고 작업을 진행 중이라기보다 뭔가 끄적이고 있는 듯해 보인다. 언제나 펜을 들고 글을 쓸 때 조금 더 예쁘게 쓰고 싶은 괜한 욕심에 손에 힘이 많이 가는 나와 달리, 그의 손은 여유가 있고 여백이 있다. 떠오르는 생각의 찰나를 순간 거머쥐고서 써내려가는 것만 같다. 한 글자, 두 글자, 세 글자… 한 줄, 두 줄, 세 줄…. 문장들 사이에 유기성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는 쓰고 있으면서 동시에 끄적이고 있는 것이리라. 타자기가 곁에 있었을 테니 원고 작업 중은 아니었을 터. 그렇다면 무엇을 쓰고 있었을까?
이상하게도, 당연하게도 손으로 써야 진짜인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스치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꼭 다이어리에 적어두는 것을 좋아한다. 버릇처럼, 습관처럼, 분신처럼 메고 다니는 백팩에는 언제나 다이어리가 존재한다. 딱히 즐기지 않는 슈트를 입은 날도 예외는 아니다. 혹시라도 ‘다이어리(diary)’라는 단어라 해서 ‘일기’라고 오해하시지 말기를 바란다. 날짜별로 간략한 메모를 할 수 있는 수첩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내게는 아이디어 노트의 의미도 겸한다. (세상 모든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고서 창조적인 결과물로 재해석해낸 레오나르도 다빈치, 독서노트, 실험노트, 연구노트 등을 쓰며 다양한 이론과 지식을 접목한 뉴턴, 직접 이해한 이론을 재해석해 옮겨 쓰고서 몰입의 노트를 이용한 아인슈타인처럼 인류 역사를 뒤흔들 만한 인물들만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를 담아내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검정색 볼펜, 가끔은 빨강, 파란, 노란, 보라, 초록, 금색, 은색 펜이나 연필로 쓰다 보니 페이지마다 꽤나 ‘난리 부루스’를 이루지만 이렇게 다양한 색깔을 이용해 적어두면 의식의 흐름을 잘 구분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의도해서 그렇게 나누는 것은 아니다. 뭔가 머릿속에서 떠오르면 주문을 외듯 다이어리를 찾을 때까지 중얼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눈에 띄는 펜을 찾아 삼매경일 뿐이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펜을 두서없이 집어 들고는 얼른 써내려가는 것이다.
뭔가 손끝을 타고 느껴지는 손맛이 참 좋다. 그래서 다이어리를 쓰는 내게 이러한 행위는 취미가 되었고, 지금은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책의 표지 디자인 콘셉트, 제목, 카피 등을 쉼 없이 고민하던 편집자로서 살아갈 때 확실히 습관으로 굳어진 듯하다.
다양한 책 구매가 잦아서인지 연말에는 다이어리 굿즈를 유심히 살펴본다. 데일리, 먼슬리, 이얼리 스타일인지, 메인 캐릭터는 누구인지 등을 꼼꼼하게 구분한 후 여러 가지 버전을 구입하곤 한다. 가끔은 ‘책을 사니 예쁜 굿즈를 주더라’가 아니라 ‘예쁜 굿즈를 사니 책을 주더라’와 같은 주객이 전도된 나의 책 구매 방식에 죄스러움을 느끼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오늘날 현실인 것을….
반강제적으로라도 열일곱 잔을 마셔야 하는 스타벅스의 지능적인 다이어리 이벤트 이후 등불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한 다이어리 프로모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는 이들도 많지만 난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감성과 감각을 표현해주는 시그니처 아이템인 것만 같아서 들고 다닐 때에도, 백팩에서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둘 때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 넘쳐나는 엔돌핀의 힘으로 글도 더 잘 써질 것만 같은 플라시보 효과마저 터진다.
다이어리를 살 때 사은품처럼 함께 주는 마스킹테이프나 우표스티커도 좋아라 한다. ‘좋아한다’가 아니라 수줍은 듯 ‘좋아라 한다.’ 요즘은 ‘다이어리를 쓴다’라고 하지 않고 ‘다이어리를 꾸민다’고 할 정도로 다이어리를 이용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것이 유행이 아니던가. ‘다이어리를 꾸민다’를 줄여서 ‘다꾸’라는 용어마저 생겨났으니 말이다.
나는 마스킹테이프를 가위로 정성스레 잘라서 붙이는 것이 아니라, 청테이프를 입으로 북북 뜯어내듯 뜯어서 다이어리의 빈 공간에 붙인다. 나름 디자인적이면서도 아티스틱한 나의 감성을 표현했다며 뿌듯해 하면서. 어설프지만 예쁘게 꾸몄다는 자부심도 생긴다. 가끔은 글을 끄적이려고 다이어리를 꺼내는 건지, 예쁘게 꾸며보고자 하는 다짐이 생겨서 집어 드는 건지 헷갈리기는 하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숨길 수 없는 팩트이다.
첫 번째, 두 번째 책도 다 다이어리에 뭔가를 끄적이다 주제를 정했고, 소재를 정리했으며, 아이디어를 마무리했다. 뭔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폭발시켜보고자 가부좌를 틀고서 자리에 앉아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가면서 다이어리를 들여다본 것은 아니다. 일상의 단상들이 하나씩 둘씩 켜켜이 쌓이다가 하나의 결과물로 태어난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글쓰기는 엉덩이를 의자에 붙여놓은 시간의 양이라고 말하지만, 본격적으로 쓰기 전 아이디어는 분명 일상의 생각을 일상에서 이렇게 저렇게 끄적이다가 발견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아이디어는 이제 다이어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메모 공간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지금 내 옆에는 노란색 다이어리가 예쁘게 놓여 있다. 바라보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문득 든다. ‘아, 내 아이디어 노트 같은 다이어리, 지금 보니 정말 예쁜 게 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