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취미 수집
“작가님, 안녕하세요. 두 번째 책 출간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 역시 이렇게 꾸준하게 책을 낼 수 있고, 작가로 불릴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하기만 합니다.”
“보통 작가라 하면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잖아요. 요즘은 어떠한 책들을 읽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편집자로 근무하며 책을 일로서 많이 읽었던 거 같아요. 요즘은 그때보다는 덜 일하는 마음으로 읽기는 해요. 그런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책은 덜 읽고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잡지를 많이 읽고 있어요. 아니다. 잡지는 많이 즐기고 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사진도 많아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마음껏 충족해주더라고요. 더불어 상당히 트렌디한 그 달의 이슈를 많이 이야기해주잖아요. 에디터 분들의 글쓰기 방식도 좋아요. 뭔가 강렬하면서도 날렵한 문체라 참 좋아해요. 제가 글을 쓰는 방식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요즘은 책보다 잡지를 더 많이 즐기는 것 같아요.”
“아,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었네요. 잡지를 많이 읽으라고 추천해주시는 작가님은 처음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얼마 전 상당히 기분 좋게 진행했던 인터뷰의 한 장면이다. 그러면서 추천한 잡지가 약 10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카테고리도 다양했다. 남성 패션, 혼자 사는 사람들, 과학, 문학, 리빙, 브랜드, 여행, 아빠 등 ‘나의 잡지 읽기 스펙트럼’이 이렇게도 넓단 말인가.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분야도 보인다.
잡지라 하면 보통 미용실에서 펌을 하며 읽는 엄마나 이모의 모습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XX> <XX주부> 등과 같은 주부지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잡지의 세계는 최근 유니버설하게 많이 확장되었다. 마블 영화의 세계관이 지구를 넘어 전 우주를 아우르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 불리는데 잡지도 그에 못지않다. ‘매거진 버라이어티 유니버스’ 정도로 부르면 되려나. 그런데 분명 남성 패션, 혼자 사는 이야기, 과학, 문학 등등에 대한 잡지는 쉽게 이해 가능할 것이다. 어떠한 잡지인지 대충 감이라도 잡을 수 있을 듯.
그런데 웬 ‘아빠’ 카테고리? 그렇다. 빅데이터로 분석하는 획일화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삶의 형태로 바뀌고 있는 요즘이라 꽤 독특한 분야의 잡지들이 많이 발간되고 있다. 분명 지금까지는 엄마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육아, 리빙, 교육 등의 콘텐츠로 꽉꽉 채우면서 동시에 광고도 꽉꽉 채워진 잡지들에 익숙했다. 하지만 아빠 스토리를 담는 잡지는 조금은 다르다. 아니, 많이 다르다.
우선 아빠의 취미를 이야기한다. 아빠가 아이와 어떤 식으로 놀아야 할지를 디테일하게 가이드해준다. 아내와 시간을 보내는 법도 꼼꼼하게 안내한다. 반려동물과 생활하는 현명한 방법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들려준다. 중심에 ‘아빠’라는 단어를 두고 그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다룬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잡지를 즐겨 읽는 것일까? 일종의 대리 만족이다. 결혼하기에도 겁이 나는 소심한 마흔인데, 아직은 아빠까지 되는 것에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아빠로 먼저 인정받고 언젠가 남편이 될 거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부수어버릴 만큼 나는 용감하지 못하다. 평소 너무나 현실적이게도 불의를 잘 참는 보통의 사람이니까.
그런데 아빠가 되면 어떨까에 대한 궁금증은 늘 달고 산다. ‘혹시 내게 아이가 있다면’이라는 의문 아래 ‘나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라는 예측을 하면서 읽는다.
유튜브 스타 중에 반려동물이나 아이들이 많다. 반려동물의 경우, 본인이 기르기에는 자신이 없지만 반려동물을 너무 사랑해서 동네 길냥이들 밥까지 아침, 저녁으로 챙겨주는 분들이 많다. 본인은 다이어트 중이거나 바쁘다는 이유로 식사를 거르는데도 동네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는 분들. 이런 분들은 랜선집사로 불린다. 랜선 너머로 사랑을 격하게 표현하는 집사님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대리 만족이다.
그렇다고 유튜브 영상을 시청만 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직접 사료도 보내고, 간식도 보내고, 영양제까지 꼬박꼬박 챙겨주는 분들이 많다. 연장선상에서 생각해보면 랜선이모, 랜선삼촌도 그렇게 해서 생겨난다.
당신과 잡지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다
잡지를 통해 다양한 대리 만족을 하게 된다. 상상만으로 부자가 되었다가, 우주로 여행도 했다가, 스타 작가도 되었다가 한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불구덩이 같은 욕망은 끓어오르지만 나는 부자가 될 수 없으니까 잡지로 만족한다. ‘아, 이렇게 포기가 빠르다니.’ 과학 잡지를 읽을 때는 우주여행을 숱하게 해본다. 역시나 머릿속으로. ‘이러니 머릿속이 꽉 차서 늘 가벼운 두통이 오는가보다.’
스타 작가. 로또 2등 당첨보다 더욱 절실하다. 왜 1등이 아니냐고? 솔직히 툭 까놓고 얘기했을 때 1등이면 그냥 그 돈으로 해외 나가서 마음 편히 살고 싶다. 사실 몇몇 나라를 검색해두었다. 제발 1등이 되기만을 꿈꾸며. 크로아티아, 그리스, 모나코, 베트남 등등.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아드레날린도 마구 쏟아지고, 세로토닌과 도파민도 터진 송유관 속 석유마냥 사방천지로 흩어진다. 거짓된 상상에 극렬하게 반응하는 나의 호르몬들이여, 깨어나라.
잡지를 읽고 있으면 최신 트렌드를 깊이 있게 바로바로 습득이 가능해서 좋다. 지인들과 대화하거나, 청중 앞에서 강의할 때도 바로 쏙쏙 뽑아서 써먹을 수 있는 지식과 지혜가 실시간으로 쌓인다. 연말에 쏟아져 나오는 트렌드서 한두 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한두 명의 저자가 결정 내리고 에센스로 정리해주는 책보다는 그러한 상황을 경험하고 고민하고 삶의 일부로 체득한 사람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
소위 말하는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나 잡지이다. 정말 다양한 잡지가 쏟아져 나온다. 메이저 잡지뿐 아니라 마이너 잡지를 포함해 20여 페이지도 되지 않는 독립잡지도 서점마다 넘실거린다.
내가 서울에 살고 있다고 해서 언제나 힙스터들로 넘쳐나는 가로수길, 익선동, 연트럴파크 이야기만 듣거나 보고 싶지는 않다. 우리 동네 소소한 뒷이야기를 접하며 ‘저런 곳도 있었네’ 하는 기분으로 잡지를 읽고 싶다. 뭔가 나만 아는 곳을 알게 된 짜릿함과 나만 아는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있는 설렘을 갖고 싶은 것이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삼청동에 살았던 적이 있다. 고즈넉하고도 조용한 분위기에 끌렸던 것이다. 하지만 주말만 되면 동네 앞 커피숍에 커피 한잔 사러 갈 때도 샤워를 하고 옷을 제대로 갖춰 입은 다음에야 대문을 나설 수 있었다. 나는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핫 플레이스’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얼른 그곳을 떠나야 했다.
잡지를 즐길 때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다가간다. 그렇게 그렇게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들과 사진들을 매달 10여 종 보고 읽고 즐긴다. 사람이 사람냄새 맡고 싶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