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록을 줘야만 잡지인 것은 아니다

취미는 취미 수집

by Jeremy

담장을 넘어 지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연신 인사하느라 바쁠 것만 같던 아름드리 석류나무 한 그루. 오지랖 넘치는 생기 덕분에 우리 집은 자연스레 석류나무집으로 불렸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 때면 살랑거리는 소리에 동네 사람들은 미소를 머금었고,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날이면 오고 가다 그 아래 잠시 더위를 식히곤 했다. 동네 사랑방 못지않은 임시거처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남편 출근시키고, 애들 등교시킨 동네 엄마들은 삼삼오오 진짜 사랑방으로 모여들었다. “깔깔깔, 영숙 엄마, 어쩜 그렇게 남편이 자상하대. 비결이 뭐래?” “기철 엄마, 뭐 비결이 따로 있나. 건강 좀 챙기는 거지.” “근데 언니, 나 오늘은 뽀글뽀글 머리 볶아도 되려나. 이 잡지 보니까 이런 머리 요새 유행인가봐.” “그렇지 그렇지. 요새 이 머리, 드라마 인기 때문에 못해서 난리잖아. 깔깔깔.”


분명 그랬다. 아빠들에게 포장마차나 대폿집이 사랑방이었다면, 동네 미장원은 엄마들의 사랑방이었다. 그리고 한 켠에는 언제나 잡지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벽돌 못지않은 두께를 자랑하는 잡지에는 연예인 가십거리부터 정재계 인사들의 뒷이야기가 빼곡하게 담겨 있으면서 동시에 3분의 2 가까이 광고로 꽉꽉 채워져 있었다. 좋게 말하면 그 달의 이슈와 트렌드를 문화, 예술, 사회, 정치, 경제까지 세분화시켜 전방위적으로 알차게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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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광고는 어떻게 설명하겠냐고 우문(愚問)하신다면 이렇게 현답(賢答)하겠다. ‘광고만큼 현시대를 냉철하고도 명쾌하게 반영하는 매체가 있을까요?’ 이는 더 이상 대꾸할 수 없는 완벽한 팩트체크가 아닐까.


그만큼 잡지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잡지는 부록도 챙겨줬다. 화장품은 기본이었다. 가끔은 건강식품도 딸려오고, 리빙 소품도 있었다. 엄마들은 동네 사랑방에서 만난 잡지를 서점에서 살 때 부록을 꼼꼼히 살피고 또 살폈다. 요새 말로 ‘부록을 샀더니 잡지를 주더라’ 또는 ‘잡지는 필요 없어요, 부록만 주세요’라고 할 만했다.


동네 사랑방 한 켠의 잡지는 시간의 흐름을 타고 넘다가 어느 순간부터 종이 낭비라는 최악의 악담마저 들어야 했다. 잡지사 에디터로 근무했던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려 봐도 이렇게까지 평가받기에는 많이 억울하다. 에디터들은 자주 기획회의로 밤을 지새우고 트렌드세터들의 바이블로 자리 잡게 하고자 애를 쓴다. 물론 명품을 찬양하는 듯한 광고성 기사들에 많은 독자들이 반감을 갖고, 한 편으로는 부록에 찬양하는 물질문명 속 야누스의 두 얼굴이 떠오르기는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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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명백히 잡지가 변하고 있다. 개인적인 삶에 침잠하는 1코노미 세대가 메인으로 등장하면서 종이 매체냐, 디지털 매체냐의 문제가 아니라 부록 끼워주는 일반적인 잡지냐, 광고 하나 없는 전문 잡지냐의 양분화로 분리되고 있다.


국문학과나 문창과 학생들, 교수님들 외에는 아무도 읽지 않는다며 외면받아온 문예지에 어느 날 아이돌 가수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배우들도 칼럼의 한 코너를 맡기 시작했다. 어느 개그맨은 특집 에디터로도 활동했다. 이는 <뉴욕타임스>에 글을 기고했던 세계적인 록 밴드 U2의 보노 못지않은 도전이자 놀라움이었다.


어느 잡지는 페미니즘만 다룬다. 매달 브랜드 하나, 영화 하나만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집념의 잡지도 있다. 환경 잡지, 아빠들을 위한 잡지, 반려동물 잡지 등등. 이름만 나열해도 몇 페이지는 할애해야 할 것만 같은 다양한 잡지들이 출렁거리듯 쏟아져 나온다. 물론 부록은 따로 없다. 상관없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선주문 방식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읽어보고 구입하는 것도 아니다. 주제가 좋으니, 참신하니, 세련되니, 힙하니, 특별하니 믿고 투자하는 것이다. 단 몇 만 원이라도. 그래도 도대체 뭘 믿고.


그만큼 우리는 이 사회의 획일화에 지쳤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매체 생산자들이 만드는 대로 비평하지도 않고, 아니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수용만 하는 방식에 지쳐버린 것은 아닌가 싶다. ‘그동안 잡지라도 하면 명품 광고 도배 잡지들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느 날 환경만 꼼꼼하게 다룬 잡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정말 신기했어요.’ ‘영화든, 문학이든, 음악이든 좀 쉽고 친숙하게 다가오는 비평으로 가득한 잡지를 읽어보고 싶었는데 정말 있더라고요.’ ‘후원받아 떠나는 글만 있는 여행 잡지가 아니라 진짜 격한 감동이 몰려오는 잡지를 만나고 싶었어요. 글이 남겨주는 진한 에스프레소 같은 여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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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이 아니라고 독서 안 하는 건 아니에요


요즘에는 단행본을 읽는 비중을 조금 줄였다. 그리고 잡지를 많이 읽고 있다. 그런데 다 읽은 잡지를 분리수거를 통해 버리냐고 묻지는 말아주시기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나만의 매거진 컬렉션이라고나 할까. 흐름이 있는 듯 책장에 꽂혀 있는 잡지들의 책등을 보면 뭔가 미술품 같기도 하다. 결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예전에는 양장의 두꺼운 책을 책장에 꽂았을 때 참으로 폼이 난다고 생각했다. 뭔가 엘리트가 된 듯한 착각, 지성인이 된 듯한 뿌듯함이 격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제는 취향이 바뀌었다. 잡지다. 매달 읽고 난 잡지를 순서대로 꽂아두면 그렇게 마음에 깊은 안정이 찾아온다. 뭐랄까, 《태백산맥》 《토지》 《아리랑》 같은 대하소설을 한 권씩 모으던 감동의 뉴 버전이라고나 할까.


잡지는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친절한 독서 길라잡이가 되어줄 수도 있다. 좋아하는 주제부터 시작하면 되니 흥미를 끌 수 있고, 두껍지 않으니 휴대성이 좋고, 사진이 많으니 시각적인 즐거움마저 선사한다.


혹시라도 오늘 지금 당장, 독립 서점에 다녀오는 것은 어떨까.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검색해도 좋다. 온라인 서점 카테고리를 뒤져봐도 좋다.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잡지들이 입맛에 맞게 일렬종대 또는 좌우로 정렬로 헤쳐 모여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 ‘나’만의 색깔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남들 눈치 보며 억지 대중성에 허우적댈 것이 아니라 ‘나’ 다운 모습을 존중하는 가치 있는 마이너리티에 눈길과 손길과 발길을 돌릴 필요가 있다. 재미있는 점은 오롯이 나다운 모습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방법들만을 소개하는 잡지도 있다는 사실. 없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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