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녀를 잊기로 해요

오늘은 엉망진창이지만, 내일은 나답게

by Jeremy

매시 매분 매초, 눈을 질끈 감으면 아스라이 사라진다고 믿었다. 조각나다 못해 파편으로 곱게 버무려진 그녀와의 추억 이미지들이. 하지만 쉽사리 떨어지질 않는다. ‘찰거머리도 이런 찰거머리가 없지’ 싶을 만큼 떡 하니 달라붙어서.


함께했던 일상을 제발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싶어 ‘아픈 이별’을 통보받은 다음날, 퇴거 명령을 받은 건물마냥 고요했던 동네 목욕탕에 오후 몇 시 즈음 들어섰던 것 같다. 분명 머리 희끗한 영감님 한 분이라도 온탕에서 열탕으로 그리고 냉탕으로 옮겨 다니실 법한데, 허전하도록 빈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는 오후의 동네 목욕탕. 굳이 헤집고 다닐 필요도 없는데 저기 구석자리에 하염없이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샤워기 물줄기마저 “똑, 똑, 똑” 힘없이 떨어지면 리듬에 맞춰 눈물이라도 실컷 훔쳐낼 텐데…. 최대한 슬픈 척하며. 나를 달래기 위해서. 이별, 그딴 건 애초에 없었다는 듯이.


지나가는 세상 모든 인류가 쳐다볼 만한 사람은 아니었어도 내 눈에는 더없이 아름다웠던 그녀와의 52만 5,600분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깟 이별,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토록 차분할 수 있다니? ‘아픈 이별’을 맞은 20대 중반 남자 사람 대학생의 첫째 날이 ‘60억 명 중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부제를 달고서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둘째 날, 셋째 날이 지나고 1,440분에 또 그만큼의 숫자가 더해지며 그러다가 8만 6,400초가 보태지는데도 지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순간 짜증은 와락 솟구치는데 밥맛은 곤두박질치고…. 사랑은 애증이 되었다가 증오로 변했는데 저절로 눈물과 비빔질을 하더니 쉼 없이 쌓이는 그리움으로 트랜스포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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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이 있던 즈음, 난 20대 중반 남자 사람 대학생이었다. 심지어 공과대생.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스타벅스나 커피빈에서 좀처럼 찾지 않는 진한 카푸치노 감성이 넘치는. 여하튼 하여튼, 그날 역시 오후 두 시쯤이었던가! 지하철 역사를 걸었다. 또 그녀를 생각하며. 전화 한 통 하지도 못할 용기를 품고서. 광고지를 품은 전단판 앞에 멈춰 섰다. 나를 끌어당겼다거나 운명처럼 나에게 손짓했다와 같은 드라마 속 운명 같은 만남은 아니었다. 그냥 그 앞에 정지했다. PAUSE! ‘OO 재즈댄스 학원’ 광고지가 보였다. 검정색 타이즈를 입은 외국 여자 사람들이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를 잊을 방법을 찾았다.


역사에서 학원까지는 멀지 않았다. 복잡하지 않은 출구를 빠져 나가니 ‘웰컴 투 재즈댄스 학원’이라 말하는 듯한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1층은 ‘XX 피자’였는데 신기하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의지를 갖고서 3층 학원 문을 열었고, 낮 수업 중이었다. 댄스 선생님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던가. 원장님 포스였다. 타이즈 한쪽을 술렁술렁 말아 올려 허벅지 안쪽 선까지 똑딱 맞춘 듯 하의를 갖추었고 상의는 대가위로 듬성듬성 오려낸 듯 목둘레와 팔 둘레를 시원스레 드러내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뒷줄에 서 있는 7~8명의 수강생들 역시 그런 유사 의상을 입고 있었다. 의상은 굳이 남녀를 구분 짓지 않았다.


전설적인 미국 댄서 밥 포시가 이끄는 무용단 같기도 했고, 각자가 영화 <올 댓 재즈>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상당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전문반 수업이었던 것이다. 정말 다행히 남자 수강생도 두어 명 있었다. 강사를 지망하는, 무용단을 꿈꾸는, 무용대학을 목표로 하는 이들이 하나둘 모여 열 명 이상의 에너지를 한 명 한 명씩 쏟아내고 있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몸을 크게 쓰는 법이라고 했다. 훗날 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남자 수강생들은 역시나 강사 분들이었다. 움직임 역시 애써 남녀를 구분 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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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a Feeling…


첫 만남에서 느꼈던 전율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전문반 시간표에 눈이 갔다. 하지만 취미반부터 시작해야 했다. 삶에서 기초는 무척 중요하니까. 역시 기초를 닦는다는 건, 도를 닦는 것과 다름없다. 참고, 참고 또 참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최소 3개월은 그래야 한다.


뭔가를 취미로 배울 때 최소 3개월은 진득하니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원칙이 있다. 그래서 학원도 3개월을 끊으면 할인을 팍팍 해준다. 보통은 1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이들이 절반 이상이지만. 거기서 살아남은 이들은 춤 좀 춘다고 어깨 좀 으쓱댈 수 있다. 이들이 어깨를 으쓱거릴 때 1개월도 함께하지 못한 3개월 회원은 학원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다. 이러한 진실은 뫼비우스의 띠를 쉼 없이 내달리는 기차 마냥 반복된다.


방송 댄스반이 있었고, 힙합반이 있었고, 리리컬반이 있었고, 심화반이 있었고…. 수업 종류가 한껏 색감이 오른 좌판 위의 과일 못지않게 많이 있었다. 첫 수업, 20여 명이 댄스 플로어 위에 모였다. 젊은 여자 분도 있었고, 나이가 좀 있는 분도 있었고, 그 틈에 남자 사람인 나도 있었다. 남자는 나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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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말해 쪽 팔렸다. 안 팔릴 수 없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예쁘고 착한 상담언니가 해준 말도 있고 해서 맨 앞줄에 섰다. 수강생들이 힐끗 힐끗을 뛰어넘어 대놓고 쳐다본다. 한쪽 다리까지 시원하게 걷어 올렸으니 볼 만했을 터. 그래도 타이즈를 입진 않았다. 나도 수위를 조절할 줄 아는 남자니까.


댄스의 극단적 대척점에 서 있는 뻣뻣함을 감추려고 그렇게 애썼는데 숨길수록 더 당당하게 드러났다. 옆에서 호방하게 웃는 선배님과 마주보고 다리 찢기에 몰입했다. 인정사정없이 거칠게 나를 내다버렸던 그녀를 잊고자 들이닥친 여기가 천국이자 만병통치약이었다.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의지가 있어도 그녀의 얼굴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딱 그 시간만큼은….


온몸이 찌릿한 고통에 몸을 맡기는 기분, 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선생님은 간만에 남자 수강생이 왔다고 군대 내 관심사병을 특별 관리하듯 “더 세게, 더 세게”만 외친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손에 손잡고 상대의 다리를 찢어주던 모두가 이쪽으로 시선을 던진다. 흥이 난 선생님은 수건을 입에 물려준다. 55도 정도로 유지되던 두 다리는 어느 순간 56.173847236도까지는 다다랐다. 인체의 신비에 감탄했다. 단 20여 분 만에 변화가 가능하다니.


하지만 결국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속으로 수없이 외칠 뿐이었다. 다만 남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아 참고 참다 혼절 일보 직전에 이르렀다. 옆에서 키득거리던 선배 수강생들이 잉태의 고통에는 비할 바가 아니라며 어르고 달랜다. 본인의 유연성을 한껏 자랑하며.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듯 다리가 일자로 찢어진 그녀. 물론 내 고통 건사하기에 바빠서인지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아크로바틱한 퍼포먼스가 20분간 이어졌다. 그리곤 에라 모르겠다. 춤을 췄다는 사실 말고는.


몸 푸는 데 20분, 기본 동작 연습하는 데 15분, 안무 수업이 15분, 도합 50분이 정말 쉴 새 없이 흘렀다. 언제 끝났는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마지막 0.0001%마저 방전된 배터리 마냥 기진맥진했다. 입에서 달콤한 내음이 나기는 고등학교 학창 시절 꼴찌를 도맡아 했던 오래 달리기 이후 처음이었다.


하루가 지나니 내 다리가 아니었지만 다음 하루가 지나니 다리 사이 각도는 조금 더 벌어지기 시작했고, 가슴은 꼿꼿해져가는 등 근육의 힘에 탄력을 받아 바닥에 다다르고 있었다. 유연함이 유연함을 더했고 자세는 점점 댄서의 그것이 되어갔다. 내 몸도 유연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드디어 깨달았다. 그녀를 잊을 수 있음도 깨달았다. 그리고 시나브로 잊혀졌다, 그녀가. 다리 사이 각도가 벌어질수록 잊어가는 시간은 좁혀졌다. 더불어 춤 실력은 나날이 향상했다. 학교 수업은 빠져도 댄스 수업은 빼먹을 수 없었다. 습관으로 자리 잡았고 일상으로 기억되었다. 몸이 자연스레 플로어 위를 달렸다.


전문반 수업을 거쳐, 지역 무용단에 소속되어 대극장 공연에 참가했으며, 뮤지컬배우라는 새로운 도전에 성큼 다다랐다. 꼭 해내고 싶었는데 정말 해내고야 말았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도전과 함께 인생은 바뀌고 있었다. 이제 댄스를 배워야 했던 이유의 주객이 전도됐다. ‘그래, 결정했어’라며 다짐했던 그 순간, 그녀에게 더없이 감사했다.


인생이라는 배는 새로운 돛을 내건 채 미지의 세계를 향해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예상 불가능한 결정이었다는 각오도 충분히 했다. 그때부터 키를 잘 붙들어야 했다. 그래야 난파되지는 않을 테니. 오랜 시간이 지나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할 때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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