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심장이 터질 듯한 그 순간을 3000만큼 사랑해

오늘은 엉망진창이지만, 내일은 나답게

by Jeremy

마라톤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일본의 국민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그는 자신의 책에 이런 글을 썼다. ‘매일 달린다는 것은 나에게 생명선과 같은 것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해 건너뛰거나 그만둘 수는 없다.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그의 이름을 꺼낼 때마다 작가이자 마라토너라고 부르는 데는 이처럼 다 이유가 있다.


인생을 논할 때 유독 마라톤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달리는 동안 어떠한 돌발변수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며, 달리는 동안 수많은 사람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일 듯. 잘해내고 싶은데 여의치 않아서 포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은근 뒷사람이 앞으로 치고 들어오면 비켜주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다. 뛰다가 우는 사람, 포기하기 싫어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보았다.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마라톤이야말로 인생의 축소판이 아닐 수 없다. 딱 그 말이 맞다.


한국 작가 중에서는 김연수 작가가 떠오른다. 처음 출전한 마라톤 대회에서 그가 만난 벽. 그리고 온 우주가 본인 하나 완주하는 걸 막기 위해 밀어대는 느낌이었다는 고백. 하지만 그냥 뚫고 지나가라고 응원해주는 현실적인 조언. 멈추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그는 멈추어야 했다.


첫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지 못해 내내 아쉬웠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 인터뷰를 보면서 불끈 터져 오르는 오기가 발동했다. ‘난 나중에 마라톤 관련 인터뷰를 할 기회가 생기면 ‘풀코스 완주를 못 하셔서 못내 아쉬워하시던 김연수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면서 저는 꼭 해내야겠다는 믿음과 용기가 생겼어요. 작가님, 감사합니다’라고 답해야지.’ 딱 그러한 마음이었다.


father-3437283_640.jpg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려면 단계가 필요하다. 빠르게 걷기, 5킬로미터, 10킬로미터, 하프마라톤에 이어 풀코스로 이어진다. ‘헉헉, 순서만 들어도 숨이 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팩트폭격.’ 사실 조금(?) 욕심내면 하프마라톤까지는 페이스 조절이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나 평지로 이어지는 코스라면.


그런데 풀코스는 아니었다. 시작은 춘천마라톤이었다. ‘두둥.’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는 마음이 새벽 일찍부터 피어올랐다. 아름다운 춘천의 절경을 마주하며 달리는 갬성 폭발 대회라고 했지만 달리는 동안에는 그따위 감동은 눈에 들어오지도, 마음에 남지도 않았다. 그냥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그 자리에 무너지고 싶었으니까. 세상만사 다 싫고, 속으로는 욕지거리만 끓어오르고 있었다. ‘내가 왜 이 짓을 한다고 한 거지.’


솔직히 약 15킬로미터 정도까지는 동네 마실 나오듯 ‘룰루랄라’ 하는 심정이었다. 그만큼 연습도 하고 마음의 준비도 했으니까. 그런데 15킬로미터가 지나면서부터 약간의 언덕이 나오고 지쳐가는 사람들이 곁에서 헐떡거리고 있으니 마음과 함께 신체마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게 아닌데. 이렇게 나도 전염되는 것인가.’ 함께 달리는 러닝메이트가 없었다면 나 역시 그 무리에 휩쓸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여러 번 풀코스를 완주한 러닝메이트가 응원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힘내세요. 영차영차. 할 수 있어요. 얼마 남지 않았어요’ 같은 오글오글 드라마 속 장면을 떠올린다면 큰 오해이다. 무심히, 지극히도 무심하게 ‘파이팅’ 한마디뿐.


정말 삶의 한 단면과 같았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곁에서 응원하는 단 한 명이 있었기에 억지로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뚫고 나갈 수 있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가르침은 마라톤에 그대로 적용되었던 것이 아닐까. 고통이 쉴 새 없이 몰아치니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지만 더없이 든든한 기분. 그 맛에 마라톤을 하는 것일까.


25킬로미터를 지나면 눈앞 풍경이 정지 영상처럼 느껴진다.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 없고 어디를 지나치고 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그냥 계속 몽롱해진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본격적으로 공기 속을 붕붕 떠다니는 기분이 든다. 러너스 하이가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리는 열심히 움직이는 것 같지만 내 몸의 일부가 아닌 것 같은 느낌. 감당은커녕 역시나 또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세상 귀찮아. 그냥 돌아갈까. 주저앉을까.’


이때도 러닝메이트의 도움이 필요하다. 인생에서 선배가 필요한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마디 한마디 응원이 큰 힘이 된다. 물론 그는 꽤나 무심히 달렸지만. 정말 걷는지 뛰는지 날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기분이 유지된다. 두 번째로 현자타임이 들어찬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가.’


그러는 와중에 도착하는 마의 37킬로미터. 말 그대로 꾸역꾸역 포기하지 않고 내가 아닌 나로 달리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다. 앞 사람 한 명 젖히고 그러다가 두 명이 나를 젖히기를 쉼 없이 반복하다보니 뫼비우스 띠 위를 한껏 달리고 있는 것만 같다. 뭐가 뭔지 도무지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37킬로미터 정도가 되면 회송차들이 끝도 없이 줄을 서서 낙오자들과 포기자들을 기다린다. ‘어서 오세요. 많이 힘드셨죠? 저희는 여러분을 위해 준비해 있는 천사 같은 회송차들이에요. 타요 버스보다 더 귀엽답니다.’ 환청마저 들리기 시작한다.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 정말 그 차에는 벌꿀이 발라져 있나보다. 향기에 취한 듯 그곳으로 날아드는 러너들이 꽤 많다. ‘이보세요.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왜 거기로 가나요. 나도 죽을 것만 같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데.’


그 앞에서 철퍼덕 넘어지는 사람들도 많다. 뭔가 안도감을 내뱉을 수 있는 매개체를 보고서 마음이 풀린 것이다. 마음을 놓아버리다가 결국 몸까지 놓아버리기에 길바닥에 굴러버리는 경우가 많다. 상처가 날 것이다, 분명히.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다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테니까. 페이스를 놓쳐버렸으니 당최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으리라.


그런데 미안하게도 나는 그들에게 신경을 쓸 여유도 여력도 없었다. 오직 나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분위기에 휩쓸리다보면 나 역시 똑같은 상황 속에서 나뒹굴어버렸을 테니까. ‘철퍼덕.’


seattle-2429788_640.jpg


오직 나의 목표는 단지 하나뿐


나는 첫 풀코스의 기록에는 관심 없었다. 오직 완주가 목표였다. 포기했다며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안타까움을 평생 품고 싶지 않아서 무조건 달려서 해내고 싶었다. 뛰지 못하면 걸어서라도, 걷지 못하면 정말 기어서라도. 악으로 깡으로 해내고 싶었다. ‘결국 나는 해냈다.’ 피니시 라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다섯 시간이 넘었다. 결승선을 넘으며 나는 “야이, 썅. 아이, 썅”을 외치며 통과했다. 두 팔도 들어올렸다. TV에서 본 것은 있어가지고.


그랬다. 결국 해냈다. 발이 너무 아팠다. 다리도 아팠다. 옆구리도 아팠다. 머리도 아팠다. 온몸이 아팠다. 심장도 터져나가는 줄 알았다. 겨우 바닥에 앉아 러닝화를 벗어보니 발톱은 새까매져서 빠지기 직전이었다. 곁에서 함께해주던 러닝메이트는 아직까지 내 옆에 있었다. ‘젠장, 로봇인가. 뭐 저리 아무 일 없다는 표정인 거야.’ 그는 그것이야말로 영광의 상처라며 오히려 격려해주었다. 그런가보다. 영광의 상처인가보다. ‘함께 달릴 때는 오그라드는 멘트는 전혀 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오그라들게 할 줄이야. <달려라, 하니>인 줄….’ 으쓱한 기분이었다.


바닥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뭉게구름이 두둥실 흘러가고 있었다. ‘쟤네도 저렇게 일정하게 끊임없이 움직이다가 언젠가 지금의 나처럼 나뒹굴어버릴까. 그것이 바로 주어진 운명일까.’ 그런 생각을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왠지 철학자가 된 마냥 그러한 깨달음이 마구마구 피어올랐다. 지금 이 순간부터 세상 어려움은 다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도 터져 나왔다. ‘마라톤이 나를 바꾸었어요. 세상에나.’


완주 메달을 받고 들어오는 순간 다시금 한 번 되뇌었다. ‘그래, 내가 해냈어. 아무리 힘들어도 해냈어. 결국은 할 수 있었던 건데 왜 그리도 겁부터 났을까. 해보면 되는데. 그냥 부딪혀 보면 되는데.’


running-942110_640.jpg


미국의 작가이자 마라토너였던 할 히그돈은 이렇게 말했다. ‘비록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게 달렸다고 해도, 만약 끝까지 달렸다면 어떤 마라톤에서도 성공한 것이다.’ 역시나 마라토너였던 제프리 호로위츠는 ‘마라톤에는 지름길이 없다. 따라서 누구나 마라토너가 되면 열심히 달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1936년 베를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은 반환점 없는 마라톤이라고 할 수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을 후회 없이 마무리하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말을 남겨야 하나. 한국의 작가이자 아마추어 마라토너였던 조기준은 이런 말을 남겼다. ‘그냥 달리다보면 결승선에 도착해요. 그리고 힘들다며 철퍼덕 쓰러져도 괜찮아요. 그런데 인생은 마라톤과 같진 않은 거 같아요. 마라톤은 몇 시간 안에 끝나지만 우리 인생은 마라톤이 끝나도 계속 이어지잖아요. 그냥 열심히 하면 돼요. 가끔씩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요. 회송차 탔다고 구박하는 사람도 없어요. 다, 이해하거든요. 그게 인생이니까요. 바로, 내 인생이니까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7] 그녀를 잊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