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엉망진창이지만, 내일은 나답게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차라리 뮤지컬 <캣츠>를 보지 말걸 그랬다고. 한창 춤을 배우고 무대에서 미친 듯이 추고 있던 그 무렵, 세계 4대 뮤지컬은 모른 척 했어야 하는데, 하는 핑계 아닌 핑계, 변명 아닌 변명을 대곤 한다. ‘구시렁구시렁, 투덜투덜.’ 그랬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1993년 TV 방영되어 한창 인기 있던 <인생극장> 속 주인공처럼 “그래, 결심했어”를 외치며 두 가지 인생 중 다른 하나를 더 경험해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싶다.
옷은 입어보고 살 수 있고, 책도 심지어 읽어보고 구입할 수 있는데 왜 인생은 제대로 경험해보고 선택할 수 없단 말인가 싶은 자조 섞인 넋두리도 늘어놓아본다. ‘또 구시렁구시렁, 또 투덜투덜.’ 그 당시 뮤지컬 <캣츠>를 관람하던 중 어느 고양이를 보면서 나는 이렇게 외쳤던 것이다. “그래, 결심했어. 내 인생은 이제 뮤지컬 배우다.”
후회는 없다. 아니, 뭐 후회해봐야 뭐 하겠는가. 다시 돌이킬 수도, 반품할 수도 없는 한 번뿐인 내 인생인데. 사실 용기 있게 외친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한 번은, 단 한 번이라도 내 의지대로 살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학창시절까지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시키는 대로만 살았으니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아무에게도 투덜거릴 수 없는 진짜 내 인생을 딱 한 번은 살고 싶었을 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야유를 퍼부을 것이다. ‘팔자 좋은 소리하고 앉아 있네. 고생 꽤나 해봐야 저런 소리 두 번 다시 안 하지.’ 다른 누군가는 부러움의 박수를 짝짝짝 쳐줄 지도 몰랐다. ‘우와, 대단해.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건지 난 아직 잘 모르지만, 여하튼 응원할게.’
그렇게 나는 전적으로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는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고생? 어휴 말도 못 한다. 배고픔? 말도 못 하게 배고팠던 적이 있었다. 장발장의 심정을 10분의 1까지 이해할 만한…. 그래도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살아온 삶은 아니었다.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당당했다. 가난했지만 당당했고,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기세등등했다.
결국 천적 없는 온실 속 새장을 탈출해 서울로 도망 왔다. 솔직히 뮤지컬 배우 못하면 죽을 거 같은 독기가 스멀스멀 새어나왔다. 하지만 가끔씩 후회가 몰아칠 때면 ‘배고픈 소크라테스’ 흉내 다 때려치우고 ‘배부른 돼지’가 되고 싶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이 그리웠다. ‘역시 인간이라는 동물은 고생을 해봐야 부모 심정 알고, 효자 된다고 누가 그랬더라?’
통장에 10만 원, 그것도 누군가 서울에서 파이팅 하라며 주머니에 슬쩍 찔러주신 그 돈으로 버텨온 나였다. 온갖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하고, 하루 종일 김밥 한 줄로 연명하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던 시기가 있었다. 어찌 보면 ‘배부른 돼지’가 되어버린 지금의 나보다 훨씬 샤프하고 완전 날씬했던 그때.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목표만으로도 충분히 에너지가 충전되던 그때.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었다. 아픈데 무슨 청춘인가. 아프면 그냥 아픈 거지. 하고 싶은 게 있는 청춘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가 이해가 안 간다. 왜 그렇게 살려고 아등바등했던 건지.’
조금 실수해도,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많이 실수해도 용서가 되는 나였다. 부딪혀서 생채기가 났지만 터덜터덜 걸어 나갔다. 그렇게 나는, 그리고 나의 청춘은 꽃 피어올랐던 것이다. 진흙 속의 다이아몬드 같던 연꽃으로 피어올랐다. 뿌리 쪽은 더러운 진흙 속에 파묻혀 있지만 꽃망울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분명 아름다웠다. 세수조차 제대로 못할 만큼 바쁘고 힘겹게 살아왔을지라도. 그러한 나를 떠올려보면 지금도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그냥 사람답게, 아니 진짜 나답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연기 좀 하시나봐요. 사회생활 좀 하시겠는데요!
뮤지컬은 노래, 춤을 요구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이다. 하지만 3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했다. 바로 연기까지.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닌 내가 연기를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시작은 직장인들을 위한 취미 연기였다. 고향 부산의 어느 연극 단체에서 전봇대 벽에 붙여뒀던 벽보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신다. 저 노무 딴따라 본성은 지 할아버지 닮아서 그런 거 아닌가 몰라.’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거 같다. 난 내가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어릴 적부터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아니었나보다. 고양이인줄 알고 길렀는데 알고 보니 호랑이였다고 하는 비유가 어울리려나. 나도 모르게 춤을 배우고, 부모님 모르게 연기를 배우고, 어쩌다 보니 노래까지 배우고,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고, 그러다가 아마추어 무대에까지 서 보고 결국에는 3박자를 고루 갖춰 프로 무대에도 서 보고….
사실 연기는 어려웠다.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다. 가장 일상적인, 연기를 하지 않고 그냥 평범하게 표현 안 하는 듯 표현해야 하는데 의식을 하니 쉽지 않았다. 노래나 춤도 마찬가지라고는 하지만 잘 모르겠다. 그게 무슨 말인지. 춤이나 노래는 좀 알겠던데 연기는 도무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다시금 깨닫는다. ‘난 내성적인 사람이 맞구나. 이렇게나 부끄럼이 많을 줄이야.’
다들 잘만 표현하는데, 나만 왜 이렇게 엉망이란 말인가. 솔직히 다른 사람도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추어 배우들이 그것도 1~2주 만에 뭘 얼마나 잘하려고. 그냥 자신감이 떨어지고, 소심해지다보니 그들이 잘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 유명한 대배우들도 은퇴할 때까지 연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고백하는데 말이다.
지금의 나라면 ‘모르니까 모르는 거지 뭘 그리 모른다고 상처받을까’ 싶을 만큼 뻔뻔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아직 어린 마음에 모르는데 아는 척, 싫은데 좋은 척, 피곤한데 괜찮은 척 하고 있었다. ‘에라이, 바보 멍청이.’
우선 무대공포부터 물리쳐야 했다. 확실히 춤을 추기 위해 무대에 오르는 것과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무대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는 것이라면 괜찮으려나. 억지로 무엇인가를 표현하려고 하면 안 되는 건가. 연기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했던 것인가. 최대한 단순화해서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표현해야 하나. ‘아놔,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야. 어려워서 못 해먹겠네, 진짜.’
역시나 시간은 모든 것을 조금씩이라도 해결해주려 애쓰는 것만 같았다. 뭐라도 해보니 뭐라도 되어버린 것이다. 맞든 틀리든. 아마추어 느낌은 좀 빠졌으려나. 완전 초짜였으니 인큐베이터 속 아기 같은 연기자 느낌은 덜 나려나. 고민에 고민만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왜 연기를 하려 했던 것일까? 그냥 춤을 추다보니 그냥 연기도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뭘 그리 대단한 이유가 있으려고.’ 팥빵을 먹다보니 슈크림빵도 먹고 싶었다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그러다 보니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알게 되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다가 ‘역시나’ 안 되겠지 싶었는데, ‘진짜로’가 되어버린 것이라고나 할까.
어느 공대생의 취미가 뮤지컬 배우라는 직업이 되어버린 놀라운 현실. ‘형이 거기서 왜 나와’ 싶은 뜨악함까지 나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울의 현장에서 배우로 살아갔던 시간이 4~5년. 일장춘몽 같았던 시간이 지나가고, 돌이켜보면 정말 나빌레라스러운 시간이었던 것만 같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때가. 딱 한 번만 더 해보고 싶기는 하네.’
아마추어였지만 연기를 배우다보니, 아니 그것을 넘어 배우로 살다가 아무도 모르지만 나만 아는 은퇴를 하고보니 좋은 점들이 있었다. 첫째, 나에게서 자유로워진다. ‘이거 진짜 괜찮은 소득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세상, 무섭지 않다. ‘앗싸라삐야.’ 무지막지하게 뻔뻔해지고, 세상 속 내가 아니라 나를 위한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드니 이렇게나 속 편할 줄이야. 그냥 내가 주인공인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가 조연이거나, 단역이나 엑스트라.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렇게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하는 갈팡질팡하는 마음에 “고민 고민하지 마”를 마음껏 외칠 수 있다.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하이킥도 뻥뻥 날릴 수 있다.
둘째, 임기응변에 강해진다. 직장생활 좀 잘하려면 소위 말해 눈치껏 해야 하는 일들이 많지 않은가. 그렇다면 연기를 배우시오. 눈치 레벨업이 만렙까지 치솟을 수 있다. 걱정 편안하게 내려놓으시기를. 내 보장하리다.
셋째, 말이나 행동하는 데 있어 당당해진다. 그동안 잔뜩 움츠리고 살았다고? 쭈뼛거리던 당신, 무대 위에서 한번 시원하게 놀고 나면 당당당당당당당당당당당(*10,000,000,000)해진다. 삶에는 그러한 당돌함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러려고 연기 배우러 오신 거 아닌가요. 당신을 환영합니다. 웰컴 투 연기월드.’
한창 연기를 배울 때 그리고 연출님이 자리를 비우셨을 때 어느 정단원이 이러한 말을 은근슬쩍 던진 적이 있다. “연기하는 사람들은 돈이 없어요. 아시죠?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만큼 대차거든요. 누가 못 말려요. 악으로 깡으로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살기 위해서, 연기하기 위해서.” 연기를 배우러 온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라는 말에 그리 심쿵하게 반응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돈이 있으니 돈 내고 수업 들으러 온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훗날 시간이 흘러 내가 배우가 되어보니 심쿵쿵쿵쿵쿵~쿵쿠루쿵쿵쿵쿵 했다. ‘그렇다, 돈이 웬수다. 가끔씩 생각한다. 배우가 아니었다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누구였을까. 배우란 무엇인가. 아침에는 배우를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인가.’
무슨 소리인지는 당최 모르겠지만 배우로 살 때는 철학적 사유를 많이도 했다. 쪼그라든 뱃속을 음식이 아니라 이러한 사유로 채워 넣곤 했다. 배가 고프니 뭐라도 채워 넣어야 했던 것일까. 그런데 왜 돌이켜보면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다.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고 충분히 부르니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서일까. 내 삶에 찍혀 있는 하나의 점, 그 점이 바로 배우였다는 사실만큼은 뿌듯하다. 취미는 이렇게 직업이 될 수도 있다. ‘아헿헿헿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