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하루키와 어깨를 나란히? 나란히!

오늘은 엉망진창이지만, 내일은 나답게

by Jeremy

출판 편집자로 오랫동안 일해 왔다. 책을 한 권 한 권 정성스레 만들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누구보다 먼저 따끈따끈한 원고를 손에 쥘 수 있다는 설렘과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두렵기도 하고 나 스스로 주눅이 들기도 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만큼의 희노애락은 아니겠지만,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기운으로 인해 첫 줄 읽기마저 고심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편집도 결국은 밥벌이였다. 원고를 향한 감정은 서서히 일상화가 되어버렸다. 마치 어김없이 오늘도 숨 쉬고 있는 나처럼, 1만 보 이상은 습관처럼 걷고 있는 나처럼, 삼시두끼는 꼭 챙겨 먹는 시곗바늘 같은 나처럼…. 약속한 날에 원고가 메일함에 도착하지 않아 분노하기도 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초고 상태가 좋지 않아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전화해도 받지 않는 작가에게 본능적으로 실망해야 했다. 메일을 보냈는데 읽고서 가벼이 씹어주는 작가가 미웠다.


본인의 인생 스토리에서 주인공은 자신이기에 뭔가 사정이 있겠지. 내가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도무지 이해할 수조차 없는 이야기가 있을지라도. 자기계발서를 많이 만들다보니 거기에는 보통 ‘약속은 칼같이 지켜라’, ‘마감일을 맞출 수 없다면 미리 알려라’,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이런 주옥같은 메시지가 많이 담겨 있는데 그러한 메시지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 놀랍기도 하고, 역시나 온갖 감정이 내 마음을 들쑤신다. 콕콕콕, 쿡쿡쿡.


현실과 이상은 어김없이 다르다는 진실을 하루하루 감내해내고 있다. 나라고 뭐 다르겠나 싶은 미안함과 함께…. 그래도 결국 주는 게 어디야 하는 안도감과 토닥거림으로 하루는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여하튼 어느 순간 편집은 밥벌이였다. 째깍째깍 시곗바늘은 멈추지 않고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 역시 그에 맞춰지고 있었다. 원고를 받고 검토하고 편집하고 책 출간하고 끝. 다시 도돌이표가 끝없이 이어지는 돌림노래 같다. 어느 순간 시계의 배터리가 다 소진되어 멈추어버리기 전에 나의 의지대로 배터리를 강제로 빼버리고 싶었다. 어제도 똑같고 그저께도 똑같고 오늘도 똑같고 내일도 똑같을 하루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분노 조절이 되지 않을 만큼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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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야, 제발 꺼져. 나도 좀 다르게 살아보자.’ 다른 시계로 갈아탔다. 내 인생의 편집 시계를 어디 구석자리에 꼭꼭 숨겨버리고 다른 시계를 데려왔다. 100퍼센트 충전이 되어 파이팅 넘치도록 건강한 배터리를 넣었다. 째깍째깍, 째깍째깍. 역시 뭐든지 새로운 게 맛이다. 쇼핑할 때 새로운 것을 손에 쥐면 이런 기분일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도 무라카미 하루키나 J. K. 롤링으로 빙의하고자 더없이 애썼다. 물론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에 몇 시간은 꼭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엉덩이로 차근차근 써내려가고자 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웬걸. 토할 것만 같았다. 어느 순간에는 글을 써야지 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조차 토를 불러왔다. 머리는 지끈지끈,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마음은 이미 달나라에 가 있었다. 내가 글쓰기는 너무 우습게 봤던 것일까? 늘 완벽하지는 않아도 완성된 글을 직접 받아보니 나도 할 수 있다고 너무 자만했던 것일까. 글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사람을 지치게 하는 작업일 줄이야. 역시나 그 일을 직접 해봐야 이해 가능한 것이 진리였다. 아니 진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왜 OOO처럼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라고 고민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제2의 OOO’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제1의 조기준’이 되고 싶을 뿐이다. 문장과 글쓰기 과정을 배우고 습득은 하지만 똑같이 흉내 내는 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당장 명문장으로 가득한 글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냥 꾸준히 쓰고 싶다. 남들이 뭐라 해도 나만의 스타일로 채워나가는 A4 용지를 사랑한다. 좀 부족하면 어때, 그게 바로 나만의 문장인데. 난 천재글쟁이도 아니니까, 나름 노력파라고 우기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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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참 좋은 곳, 글쓰기에 완벽한 시간


어느 날은 아침 일찍부터 글을 쓴다. 그리고 다른 날은 오밤중에 형광등이 아닌 백열등을 켜놓고 한 자 한 자씩 꼬물꼬물 끄적인다. 가끔은 점심시간쯤 배가 고파질 때 주린 배를 달래가며 쓰기도 한다. 그런데 어느 시간대에 어느 상황에서 글을 쓰느냐에 따라 글의 맛과 방향성이 달라진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집에서 쓸 때, 카페에서 귀마개 제대로 꽂고서 쓸 때, 아주 가끔 공연하러 가서 정신없는 상황에서 겨우 몇 줄 쓸 때 다 느낌이 다르다. 한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화수분 같은 문장들은 이렇게나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사람은 정말로 우주보다 더욱 심오한 존재인가 싶다. ‘글을 쓰다 말고 철학적인 사색에까지 빠져들다니…. 구시렁구시렁.’


글쓰기는 사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취미라기보다 ‘생활 패턴의 과감한 변화 시도’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취미가 되는 글쓰기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반드시 책으로 출간해야 하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한 글쓰기가 아니라, 나를 위한 힐링으로 다가가는 글쓰기도 있었던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나를 쓰다듬어주는 듯한 묘한 느낌이 몰아쳐올 때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한 글자 한 글자 때로는 정성스레, 가끔은 무심하게 써내려 간다. 편집자라고 하는 과도한 편집증을 조금만 옆으로 치워놓고서 쓰면, 오탈자 좀 보이면 어때, 비문 좀 나오면 어때, 하는 털털한 문장들이 소복이 쌓이기 시작한다. 이 문장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지 않아도 상관없다. 몇 글자, 몇 줄, 몇 문단 쌓아나가다 보니 글자들이 함께 춤을 추자고 수줍은 나를 끌어내려 하는 것만 같다. 노래를 부르자고 하는 문장들도 있다. 같이 공연이나 신나게 해버리자고 속삭이는 문단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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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편한 의자에 앉아서, 아니면 꼿꼿하게 내 허리를 곧추 세워줄 의자에 앉아서 써내려 가는 기분은 짜릿하고도 포근하다.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공간에서, 아니면 적당한 화이트노이즈를 즐길 수 있을 정도여도 상관없다. 써내려 가자. 하루 중 말하기가 90퍼센트 이상이고 글쓰기는 10퍼센트 이하라고 한다. 언어 사용 습관을 따져보자면. 그런데 그 10퍼센트 이하에서도 느껴지는 바가 크다. 말하기로는 스트레스가 해소되지만 글쓰기로는 힐링이 되는 놀라운 경험, 한번 해보라고 넌지시 부추기고 싶다.


좀 못 쓰면 어때. 당연히 처음인데. 어떻게 첫 줄을 쓸지 모르면 어때. 내 글이니까 아무도 보지 않을 테니 쓰고 싶은 걸 쓰면 되지 뭐. 글을 쓰다보면 인내심도 길러지고 집중력도 향상된다고 많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80퍼센트는 맞고 20퍼센트는 틀린 것만 같다. 안정된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쓰다가 그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지 않는 뭔가 커다란 장벽 앞에 서 있는 심정이 되면 짜증이 솟구치고 분노게이지가 폭발한다. 이것마저 잘 참고 넘어가야 진정으로 인내심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나 집중력도 길러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라서 짜증도 내고 집중도 흐트러져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이스크림 사먹으러 나가버린다. 당분이 가득한 초코바도 땡기고, 탄산음료를 들이키기도 한다. 작가라고 뭐 별다를 게 있을라고. 나도 사람인데 뭘. 똑같이 이 바람에 흔들리고, 저 바람에 들썩거리는 사람인 것을.


PS. 그간 제가 편집해왔던 국내외 작가님들과 번역가님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한 말씀드립니다. 제가 해보니 못해 먹겠다는 말이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오더라고요. 다들 성인군자들이세요. 제가 더없이 많이 배워갑니다. 명문장을 배우기에 앞서 인품을 먼저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의 큰절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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