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엉망진창이지만, 내일은 나답게
빌리 엘리어트, 남성 버전 <백조의 호수>, 미하일 바르시니코프와 영화 <백야>, 바슬라프 니진스키…. 손끝으로 전해지는 우아함과 고귀함이 발끝으로까지 이어지는 무용인 발레. 2001년 발레리나 강수진의 상처투성이 발이 공개된 이후 발레는 대중에게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제아무리 발레리나가 아닌 발레리노의 발이 공개되더라도 여전히 남성과는 거리가 먼 무용이라는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TV 프로그램에서는 여전히 여성 공연의상인 튀튀를 입은 남자의 모습이 희화화되고 있으니까.
그래서 발레를 배운다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었다. 현대무용이나 재즈댄스가 아니라 발레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바로 발레이다. 물론 현대무용과 재즈댄스는 꽤나 오랜 시간 레슨을 받아왔다. 파워풀한 안무와 동작을 통해 스트레스는 끝도 없이 해소되었고, 어느 날 뮤지컬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던 이유 중 하나도 재즈댄스와 현대무용이었다.
그런데 몸의 기초부터 쓸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즈댄스 수업에는 그나마 나 외에 남자 수강생은 한 명 더 있었다. 그에게 물었다. “나 발레도 좀 배워야 할 거 같아요. 내 몸에 조금이라도 더 귀를 기울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좋네요. 저도 같이 배워보고 싶어요. 어차피 춤의 기본은 발레라고 하잖아요. 조금은 쑥스럽겠지만 그래도 이왕 배우는 거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요.”
현대무용과 재즈댄스는 6~7년 가까이 배웠던 거 같은데 그 기간 중 발레는 약 3년간 레슨을 받았던 것 같다. 아라베스크(arabesque), 발롱(ballon), 포인(point), 플렉스(flex), 쁠리에(plie) 등 용어만으로도 우아하게 느껴지는 발레를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세상 기품 있는 왕자 못지않게 움직임은 나풀나풀 가벼워졌고, 몸 관절의 움직임이 세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여전히 무용과 관계없는 친구들은 편견과 질타의 시선으로 나를 평가하고 있었다.
“여자도 아니고, 무슨 그런 운동을 하냐. 남자는 자고로 농구나 축구 이런 거 해야지.” “그러게 말이다. 발레라니. 사실 재즈댄스 이런 것도 좀 그래. 배꼽티 이런 거 입고 춤 추냐?” “춤바람 나고 뭐 그런 거 아냐? 춤은 막춤이 최고지.” 굳이 듣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들어야 하니 생각 이상으로 피곤했다. 내가 발레 배우는 데 레슨비 보태주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하라고 밥 한 번 사주는 것도 아니면서 말들이 많았다. 서서히 거리를 두게 되었다. 적당한 거리를 넘어서 조금 더 멀어져버린 거리. 그게 편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괜한 이야기를 들어가면서까지 스트레스 받고 싶지는 않았다.
발끝을 움직이고 손끝을 엮어내는데 너무 좋았다. 바에 다리를 올리고 자세를 교정하는 것 마냥 움직임을 이어갈 때는 내가 <백조의 호수> 속 주인공이 된 듯했다. 가슴이 더욱 펴졌고, 다리는 오다리를 비켜갔다. 다행이다. 손끝은 투박하지 않고 여유가 있어졌고, 친구들은 약간 웃기다고 했지만 걸음걸이는 나름 도도해졌다. 호흡으로 걸으니 무릎 관절이 손상될 일도 없었을 터. 그렇게 내 몸은 무용수에 맞춰져 가고 있었다.
“춤을 출 때면 몸에 전기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어느 날 제안이 들어왔다. 크지 않은 공연이기는 했지만 발레 공연에 무용수로 함께해보지 않겠냐고. “제가요? 아직 발레 한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요.” “남자무용수들은 조금 더 장점이 있기는 해요. 여자무용수들을 조금 더 빛나게 해주는 조연이기는 하지만 파워 있는 무용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거든요. 조심스럽게 부탁드려봅니다.” “그런가요. 그래도 제가 할 만하다고 생각하셨던 거겠죠? 한 번 해볼게요.”
정말 쉼 없이 특훈이 이어졌다. 몸을 푸는 데 한 시간, 연습은 기본 2~3시간씩 이어지고, 다시금 몸을 정리하는 데 한 시간. 하루에 최소 4~5시간씩 이어졌다. 공연을 몇 주 남겨두고는 거의 8시간씩 온몸을 혹사해가며 연습을 해야 했다. 점프를 하고 무대를 날아야 하니 먹는 것도 많이 먹지 못했다. 늘 허기져 있는데 먹지는 못하니 그 이후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운동이든 무용이든 몸을 많이 쓰는 일은 역시나 잘 먹으면서 하는 걸로 해야 해. 잘 먹고 골병드는 게 낫지 그나마, 못 먹고 골병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
공연은 무사히 끝났다. 뒤풀이는 역대급 폭식으로 이어졌다. 그날 하루만큼이야 뭘 해도 용서가 되는 날이었으리라. 가끔씩 당시 사진들을 꺼내어본다. 그때만 해도 참 날씬하고 갸름했는데 하며 피식 웃기도 하고, 아무리 뮤지컬 배우로 살았다지만 발레 공연을 해보다니 하는 여러 가지 감정이 좌우교차로 이어진다.
공연 이후로도 발레는 계속 이어졌다. 발레는 복잡한 내 삶의 고민까지 올곧게 잡아주는 것만 같다. 하나, 둘, 셋, 넷… 카운트에 맞추어 무릎을 구부리고, 손끝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고개를 빳빳하게 들어올린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다시 앞서 했던 동작들이 역순으로 이어진다. 나의 하루 중 가장 우아했던 시간이다. 내가 귀족이나 왕족이 된 마냥.
어느 날 연습용 발레슈즈가 닳아버렸다. 연습을 많이 했던 탓이겠지. 새하얗던 슈즈가 너덜너덜하면서 군데군데 꽤나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그런데 선뜻 버릴 수가 없었다. 땀에 젖다 못해 절어 있었을 텐데도 휴지통에 냅다 버리지 못했다. 오랫동안 엮어온 인연을 단칼에 베어버릴 수 없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지저분해서 가까이 하기 싫은 발레슈즈이겠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담겨 있는 고마웠던 발레슈즈였다. 아쉬운 마음에 하루만 더 함께하고 싶었다. 낡아버린 지저분한 발레슈즈를 신고서 바를 잡았다. 기본자세들이 이어지고, 점프를 하고, 응용동작들을 계속했다. 발바닥이 아파왔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과 고마움을 담아 버텼다.
오늘의 레슨이 끝났다. 긴 시간 함께했던 발레슈즈를 아쉬운 마음과 함께 버렸다. 새로운 발레슈즈를 신을 내일부터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몸을 써야겠다. 발레는 그냥 무용이 아니다. 내 몸을 사랑하게 하고, 내 몸의 움직임에 귀 기울이게 하며, 내 몸을 가치 있게 만드는 무용이다.
이제는 발레를 직접 몸으로 느끼지 못한다. 아니 그러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대신 공연들을 통해 그러한 희열과 기쁨을 떠올려본다. 매년 관람하는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지젤>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은 나에게 새롭고도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 것만 같다. 관람만으로도 더없이 행복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발레는 여전히 나의 주위를 맴돌고, 나의 영혼과 함께하며, 나와 함께 살아간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의 대사가 문득 떠오른다. 로열발레스쿨의 인터뷰가 있던 날 극도로 긴장해서 실기 시험을 망쳤다고 생각한 빌리. 심사위원 중 한 명의 질문에 “춤을 출 때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아요”라며 그 자리를 떠난다. 내가 그런 마음이었다. 빌리가 느꼈던 바로 그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