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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remy Aug 22. 2019

누가 감히 그를 악마라고 말하는가

메이플소프


옷을 다 벗어 던진 메이플소프는 “나는 악마다!”라고 여전히 고함을 쳐대면서 알몸으로 23번가를 뛰어가기 시작했다. 로프트에 있던 크롤랜드가 그를 붙들고 위층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크롤랜드가 그를 진정시키려 애쓰는 동안, 메이플소프는 크롤랜드도 악마라고 주장했다. “내가 어떻게 악마일 수 있어?” 크롤랜드는 물었다. 그러자 메이플소프는 대답했다. “너는 아름답잖아. 아름다움하고 악마는 같은 거야.” _182쪽     




메이플소프는 훗날 미술 평론가 피터 슈젤달에 의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꽃 정물 사진”을 창작해 냈다는 격찬을 들은 사람치고는 기이할 정도로 꽃에 적대적이었다. 웨그스태프는 1984년에 쓴 에세이에 이렇게 썼다. “우정을 표현하는 구식 제스처로서, 언젠가의 부활절에 메이플소프에게 꽃을 몇 송이 보냈다. 그런데 분하게도, 메이플소프는 딱딱거리는 소리로 꽃을 맞았다. ‘나는 꽃 싫어해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꽃에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 _342쪽     




극단의 아름다움을 탐미하면서도 동시에 증오하고 멀리하려 했던, 기괴하고 충격적이면서도 동시에 극도의 아픔을 뿜어내는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 꽁꽁 숨어 있던 욕망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던 1970년대 뉴욕에서 활동한 그는 결핍과 성취라는 양쪽의 추 끝에 매달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 심하게 방황한다.     

 

사도마조히즘과 동성애 문화를 충격적인 앵글을 통해 드러낸 그의 사진은 결국 다시금 욕망과 충격이라는 두 단어로 귀결될 만하다.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진솔함이 터져 나와 버렸다고나 할까. 상업성과 예술성 위에서 줄타기를 해온 그를 과연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더불어 그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그녀, 뮤지션 패티 스미스. 메이플소프를 사랑했고 후원했고 본인마저 예술가가 되고자 했던 존 매켄드리. 뉴욕 최고 미남이자 예술사가 새뮤얼 웨그스태프 등등. 향락과 퇴폐, 그리고 창조성과 에너지를 그려낸 70년대 뉴욕 드라마나 영화를 관람하듯 이들의 삶은 아름답다.      


욕망이 폭발하던 시절에 그 욕망을 적절하게 폭발할 줄 알았던 그의 이야기가 그의 기획 아래 집필되어 나간 전기 《메이플소프》. 을유문화사의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 중 한 켠을 자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거장 시리즈의 다른 편들도 더없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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