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remy Apr 05. 2020

왜 그렇게도 나는 혼자여야 하는가?

Part 1

어느 고즈넉한 주말 밤 열두 시. 개구리도 겨울잠에서 깨어나게 한다는 경칩을 훌쩍 넘긴 주말이지만 갑작스러운 꽃샘추위로 방구석 아랫목은 아직까지 따숩기만 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혼자’라고 하는 단어를 곱씹을 때마다 ‘당연히 이 시간대이지’ 하는 자연스러운 끌림에 노트북을 펼쳐들게 된다. 


창밖에는 키가 높은 나무들의 끝자락이 서걱서걱 바람에 흔들린다. 혹시 글을 쓰노라 마음먹은 것을 그들은 아는 것일까. 각자의 대열을 갖추고 한참 응원을 해주는 것만 같다. 새롭게 오픈한 가게 앞 요란스러운 풍선인형 못지않게 오두방정이다. 그만큼 바람이 많이 분다는 말이겠지. 응원도 많이 받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10분, 20분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간다. 혼자 아랫목에 따땃하니 솜이불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앉아 있다 보니 눈꺼풀만 천근만근이다. 괜히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잠을 청하고 있던 막내 고양이 ‘꼬물이’를 슬쩍슬쩍 괴롭혀본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잠에서 깨어 멍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집사가 귀찮게시리 왜 날 깨우고 난리래’ 하는 표정이다. 결국에는 애기를 안아주듯 엉덩이를 받쳐 들고 가슴 폭에 꼬옥 안아버렸다. 그렇게 품에서 꾸벅꾸벅 조는 꼬물이의 모습까지 보았던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레드썬을 날렸을까. 깜빡 눈을 떴는데 꼬물이는 이미 거실 어느 구석에 숨었나보다. 내 품에 없었다. 분명 나는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있었는데 어느 순간 바닥에 누워 있었다. 노트북 위에는 애교만점 고양이 라온이가 쌜쭉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다. ‘왜 나는 안아주지 않는 거야, 이 집사야’ 하는 표정이다. 그런 가운데 노트북 화면에는 이미 수십 페이지째 ‘ㅎㅎㅎㅎㅎㅎ’가 끝도 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라온이가 지휘를 하고 그에 맞춰 쉼 없이 규칙적으로 달려가는 수십 페이지의 ‘ㅎㅎㅎㅎㅎㅎㅎ’ 군단이라니. 


비몽사몽 잠결에 그냥 노트북을 꺼버렸다. 노트북을 끌 때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찰나의 궁금증이 일었다.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면 누군가 나를 위해 이 노트북을 꺼주었을 텐데…. 바닥에 누워 있는 나를 위해 솜이불을 목 끝까지 포옥 덮어주었을 텐데…. 혹여나 잠에서 깰까봐 형광등을 꺼주었을 텐데…. 그런 궁금증이 불현듯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사실 그런 귀차니즘이 발동할 때 잠깐씩 떠오르는 아쉬움이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인 나로 지내고 있는 지금의 시간이 좋다. 아니 천만다행이다. 


최근 전 세계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적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 와중에 엄마와 전화 통화로 이러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볼혹을 훌쩍 넘긴 내가 왜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고 부르는지는 그동안 내 책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시리라) 




“엄마, 부산은 좀 어떤교. 여긴 좀 난리라예. 그래도 나아지고 있는 것도 같고예.”

“여기도 불안하고 무섭긴 한데 그래도 괘않다. 그래도 다행히 니는 돌봐야 할 사람 없으니 그 얼매나 천만다행이고.”

“그러게예. 나 때문에 누가 피해 입는 것도 무서운데 그게 옆에 있는 내 가족이라 생각하면 얼마나 무서울지 아찔합니더. 혹시라도 갓난 아기일까봐 더 무섭다 아닙니꺼.”


나는 더없이 솔직했다. 나는 미련 없이 현실적이었다. 나는 그냥 나답게 나로서 말했을 뿐이다. 생존의 위협을 견뎌내느라 하루하루 매 순간이 아찔한 요즘 같은 때, 내가 내 목숨을 담보하고서 누군가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괜한 걱정을 하게 된다. 숱한 히어로 영화 속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온갖 고통과 아픔을 이겨낸다. ‘하지만 나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에게 질문한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습니까?” 나는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사회적으로 학습되어 온 윤리적인 결론 및 가치관 때문에? 아니면 정말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아니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같은 때에는 ‘혼자인 나’임에 더없이 안도하게 된다. 나는 그냥저냥 범인(凡人)이 아니던가. 영화 <매트릭스> 속 네오 같은 인물도 아니요, <어벤져스> 속 캡틴 아메리카나 아이언맨도 아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에 바쁜 그런 평범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비난하지 못할 것이며, 비난할 만한 이유도 갖추지 못할 것이다. 


(To Be Continued...)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의 답장을 기다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