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지의 한국인 혹은 진상 세입자?

by 이향

사람은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은 어려서부터 많이 듣고 자랐다. 그리고 나이 들어가면서 자주 그런 류의 사람을 만나곤 한다. 어느 정도 친해지기 전까지는 무척이나 상냥하고 조심스럽기까지 할 정도의 교약을 보이는 반면, 친해지고 가까워지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하는 사람들. 내가 무언가 책잡힌 게 있는 것도 아닌데, 내게 요구하는 것도 많아지고, 불필요한 말을 이리저리 퍼 날라 나를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내가 다른 친구를 새로 또 사귀기라도 하면 바람피운 연인인 양 본인만 바라보지 않는다고 노골적인 불쾌감을 표현해 마지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갑자기 내가 그런 사람인가 싶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사오기 전에 집주인에게 분명히 약속했다. 집안의 내부를 고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쓸고 닦으면 되니 다 괜찮다고. 이사를 오게만 해줄 수 있다면 까짓 거 웬만한 불편함을 내 몫일 거라고 나 스스로에게도 그리 되뇌었었다.


그런데 막상 이사를 오고 보니, 눈에 거슬리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회사에서 오랫동안 관리직을 맡고 있다 보니 내 집 또한 꼼꼼히 시작해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미국에서는 건물에 새로 입주하게 될 경우, 리스트를 작성해서 문제가 있는 곳을 보고하고 건물주가 몇 달 이내에 교체하거나 세 들어간 본인이 고치고 돈을 돌려받던가 하는 게 일반적이다. 개인 집도 마찬가지여서, 새로 집을 계약해서 구입하던 세를 얻던 마찬가지의 진행을 거치는 것이 상식이다.

집주인이 한국 사람이니 웬만하면 그저 집 없는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 생각하기로 맘먹고 이사를 들어오긴 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정체 모를 오묘한 냄새를 비롯해 구석구석 혀를 내두를 정도의 지저분함을 넘어서는 말도 안 되는 문제들이 발견되었다.


냉장고 옆 벽의 페인트와 바닥을 구분하기 위해 몰딩처리를 한 곳을 청소하다 보니, 몰딩이 아예 떨어져 나간 것을 그대로 세워두기만 한 것을 발견했다. 몰딩을 들쳐보니 오 마이 갓!... 언제 버려졌는지 모를 쓰레기 가루 그리고 이름 모를 벌레들의 시체까지. 다른 곳도 아닌 부엌에서 발견한 것이라 그날 오후 내내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닦고 또 닦아 냈다.

부엌에서 전화기를 충전하기 위해 코드를 꽂았는데 충전이 완료되어 케이블을 뽑는데 아웃렛 판데기가 그대로 뽑힐 지경이다.

웬만한 쇳덩어리를 걸어도 가능할만치 두툼한 못이 거실 한편에 2개가 떡하니 박혀있다. 무슨 엄청난 액자를 걸었었는지는 모르나, 이 비좁은 집에 거실을 그림으로 채워 그 못을 가릴 엄두는 내지 못하겠다.

이층을 바삐 오가면서 튀어나온 못대가리에 양말을 몇 개나 찢어먹었다. 양말이 문제가 아니라 맨발로 다니다가는 발바닥이 피를 보기 딱인 형국이다.

언제 청소했는지도 모를 현관문에 쌓인 먼지, 손님용 화장실은 반나절동안 온갖 약품을 써서 닦아도 흰색 페인트가 드러나질 않는다. 손님이 와서 써야 할 화장실의 변기는 페인트가 벗겨져 강제 빈티지 아이템이 되어 버렸다.

손님들의 겉옷을 보관하는 아래층 캐비닛은 전 세입자가 신발장으로 쓰다 보니 냄새가 코를 찌른다. 거짓말 안 하고 하루 종일을 쓸고 닦고 방향제를 뿌리고 했지만, 여전히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일주일은 넘게 문을 열어두어 환기해야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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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이라 적고 진상이라 읽는다. ㅎㅎ

그리고 정말 기절할만한 사실 두 가지.


첫째, 이층 안방 창문을 제대로 달려있지를 않아 혹여라도 창문에 기대었다간, 창문과 함께 지옥행 열차에 탑승하고도 남을 만큼 위험천만하다는 것.


둘째, 부엌의 가스스토브가 4개 구멍이 있는데 그중 한 개만 불이 올라오고, 나머지를 쓰려면 토치로 직접 가스를 켠 다음에 불을 붙여야 한다는 것. 상상도 못 했던 급의 집상태이다.

일주일을 넘게 청소만 했는데도, 꼼꼼히 들여다보니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는 일임이 판단된 상황.


전체 목록을 만들고 구구절절 내용을 나열해서 집주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기절할만한 사실의 두 가지는 당장 시정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반공갈협박성 문구와 함께.ㅎㅎ.


그리고 두 주가 채 지나기 전에 새 스토브가 배달되었고 안방 창문은 그런대로 안전망을 만들어 떨어지지 않게 고정시키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럭저럭 위험한 항목들을 처리했다고 나름 생각한 어느 날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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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동료들에게 이사 와서 진행하였던 일들을 얘기하면서 집주인의 허술한 청소 및 관리상태에 대해 넋두리하면서 스토브를 새로 들였다 애기를 전했다. 나름 꽤나 논리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생각하며 했던 얘기였다.

그리고는 내게 돌아온 동료들의 말. 그대로 옮겨 적는다.


“ 이거, 완전… 진상 세입자이구먼 “

“......................................”

이제부터는 진상으로 남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