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이젠 멀리 갈필요 없네요.

by 이향

그럭저럭 어렵사리 이삿짐을 집안에 모두 들인 주말. 7월 2일에 이사를 들어왔으니 사실 이틀밖에 안 된 시점인데 함께 사는 작은 아들과 독립한 큰아들 둘이 제 아빠를 보러 가야 한다. 제앞가림 하기 위한 것인지 갈라선 내게로부터 최대한 멀리 가겠다는 심보인지 모를 일이지만 운전해서 가기엔 무리인 도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금요일일 새벽, 캘리포니아 최북단 도시까지 가는 아들들을 공항에 떨구어 주었다.



하루에 기껏해야 박스 몇 개를 간신히 정리하는 게 다인 아들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눈에 안 보이는 게 백번 낫다 싶은 마음이었지만, 막상 정리도 안된 새집에 혼자 남겨지니 쓸쓸함이 배가 된다.

일단 조용한 집안에서 에너지를 끌어올려 일을 하자면 카페인으로 무장해야 한다. 커피를 내리고 냉장고 안에서 숨죽이던 베이글을 꺼내 살짝 구운 후 나의 최애 Chive &Onion cream cheese를 발라 한입 베어무니 오랜만에 감성충만 낭만 모드로 전환.

맘약해셔저, 이래서 건장한 남자 손이 필요한 거란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갈라서기 전부터 20년 가까이 내손으로 페인트 빼곤 다하며 버틴 내가 누구냐라는 생각에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베이글 한입 먹고 나서부터는 저녁 7시 넘어 해가 넘어가는 시각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박스를 해체했다. 뜯어도 뜯어도 끝이 없는 박스 박스 그리고 박스.

내 방안의 박스는 어찌어찌 모두 뜯어 내용물을 쏟아냈다. 들어가야 하는 캐비닛이 정해지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먼지 풀풀 나서 잠자기도 어려웠던 어제에 비하면 놀랍도록 큰 변화이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주인 없는 아들 방을 뒤집기. 워낙 까다로우신 분이라(ㅎㅎ) 내 맘대로 박스를 마구 뜯을 수도 없는 일이라, 이불들을 걷어 깨끗이 빨아 말리고 베개커버도 바꾸고 창문틀의 먼지와 바닥청고까지 끝냈다. 방 3개 중에서 2개를 웬만큼 청소했다 생각하니 마음이 반쯤은 놓이는가 싶었다.


그리고 마침 그날은 미국 독립기념일.


미국에서 가장 큰 명절이고 한창 휴가철이기도 하고, 아이들의 방학이고 집 떠나 유학하는 대학생들도 집으로 돌아와 명절을 함께 보내는 것이 일상인 명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흥을 돕는 것은 롱비치에 정박해 있는 유명한 Queen Mary’s 호, LA Downtown 이 한눈에 내려다 뵈는 Griffith’s Park 그리고 미해군 기지등에서 열리는 불꽃놀이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할리웃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미국 젊은이들은 이 명절에 많은 사랑을 시작하기도 하고, 열매 맺기도 한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오 필승 코리아' 붐이 일었을 때 결혼증가율, 임신율이 증가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하지만, 이런 유명한 불꽃놀이 말고도 웬만한 동네의 공원에서는 시민들을 위한 불꽃놀이를 성대히 개최하곤 한다. 대신 이런 로컬행사를 제공하는 동네에선 집 앞의 길거리 불꽃놀이를 엄중히 불허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 비싼 집들이 위치한 치안이 잘되는 동네일수록 불꽃놀이 불법정책이 오히려 강력하게 유지되는 편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살고 있는 이런 후진(ㅎㅎ) 동네에선 폭죽으로 자기 집을 태워먹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명절이 되면 이른 저녁부터 귀에 Noise Cancelling EarBuds를 꽂고 생활한다. 그래도 여전히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참을 수 있는 정도의 소음이다.


이번에 깨닫게 된 사실. 새로 이사 온 이 집이 있는 동네는, 그야말로 불꽃놀이 하는 저녁은 어디 멀리 가는 게 상책인 듯싶을 정도이다. 전날부터 시작해 해가 중천에 떠있는 대낮부터 시작해 해가 지고 난 뒤 1-2시간은 집 앞 길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폭죽의 연기에 휩싸이는 것이었다.


각오했던 일이지만 이 정도로 심하게 하는지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길이 유명한 동네 불꽃놀이 가로수 길이란다.

아래층 불을 끄고 집 앞 길에서 그나마 가장 먼 거리인 아들 방으로 피신했다.


참고로 우리 집은 큰길을 바라보고 위치한 총 5채의 유닛이 있는 아파트 건물인데, 맨 앞 채는 방 3개로 2층 건물이고 2번째 유닛부터는 방 2개 유닛으로 단층 구조이다. 그렇다 보니 맨 앞 방 3개 유닛인 우리 집은 큰 길가에 접해 있고 뒤편으로는 단층 구조의 유닛들이 쭈욱 늘어선 옥상 부분이 창문아래로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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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핵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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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층 유닛들위 옥상이 내려다 뵈는 아들 방에서 온 동네의 불꽃놀이가 죄다 내려다 뵌다.

대부분 단층으로 된 유닛들의 아파트가 쪼물쪼물 몰려있는 동네이다 보니, 2층집인 우리 집이 마치 비행기 관제탑같이 죄다 내려다 뵈는 것이었다.

멋지다!! 찰칵, 찰칵…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고 있다. ㅎㅎㅎㅎ.

동네 쪼무라기들이 쏴대는 거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미국 사람들은 불꽅놀이 폭죽에 목숨을 거나 보다.

몇 시간을 쏘아 대려면 돈도 꽤 들 텐데… ㅎㅎ.

뭐, 사는 게 이런 거 아닌감?

이사오느라 개고생 하는 내게 일말의 즐거움을 선사해 준 독립기념일의 불꽃놀이와 폭죽 소음들.

밤 1시가 넘어서까지 집 앞 동네길은 아우성이었지만, 난 귀를 틀어막은 채 빅뱅의 노래를 들으며 잠을 청했다.


근데, 나쁘지 않다.

이젠 독립기념일에 비치체어 챙겨서 굳이 차 타고 좋은 자리 잡으로 돌아다닐 필요는 없어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