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코이어서 미안합니다..

by 이향

나는 조금 유난스러운 오감을 가진 편이다. 좋게 표현하지만, 감각이 뛰어나다는 표현을 갖다 붙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느끼는 바로는 그저 유난스러운 것 그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친정 엄니를 닮은 것 같은데, 구순을 바라보는 엄니가 이제야 귀가 조금 어두워지고 냄새에 둔해지신 것을 보면 나도 그 정도 수준인가 한다.


눈은 어릴 적부터 근시로 안경을 쓰기는 했지만, 순간적으로 지나치는 사물이나 사람의 특징을 잡아내는 것은 유별나다. 밤에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이유는 모기가 날아다니는 소리를 포함해 옆집에서 현관문을 열어도 잠이 깨곤 하니 불편할 뿐이다. 강아지가 깨갱할 정도로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편이라, 거슬리는 것이 오히려 더 많다. 몇 걸음 밖에서 지나치는 사람에게서 나는 입냄새도, 저 멀리 벗어놓은 신발의 발냄새도, 거실로부터 저만치 떨어져 있는 냉장고를 열었을 때 나는 김치냄새까지도 맡지 않으면 오히려 편할 것들 뿐이다.


이사 오면서 민감한 내 오감이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집주인이 깨끗하게 집청소를 제대로 해준 것도 아니니, 이사하고 거반 일주일은 허리가 휠정도로 청소를 했다. 닦아도 닦아도 지저분한 먼지가 끝도 없이 나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정확히 어디서 나는지 모르겠는 꾀죄죄한 냄새.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어디서 오는지를 모르겠으니 어디 곳을 더 청소해야 하는지도 파악이 안 되는 게 문제였다.

KakaoTalk_20251003_172856961_07.jpg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어두워 램프를 밝히니 그럴듯 하다..ㅎㅎ

전에 살던 사람들이 담배도 태우고 마리화나도 피우고 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 냄새는 담배나 마리화나 냄새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약한 냄새였다. 여기저기 구석마다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아보지만 특별히 쌓인 먼지나 냄새가 올라올만한 곳도 없는터라 내 신경은 점점 더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위층 침실구역에 있는 화장실이나 세면기는 쓰고 난 후 반드시 막아놓았고, 좋은 향으로 커버하기 위해 돈을 들여 방향제를 구입했다. 어떤 날은 바람이 불면서 외부에서 냄새가 들어오는 것 같아, 창문을 닫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래도 냄새는 없어지지 않으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사를 잘못 온 건가? 계속해서 이렇게 냄새가 난다면 나는 못 견딜 것 같은데…’

비슷한 수준으로 민감한 아들에게 물어보니 본인도 조금은 나는 것 같다고 한다.

방문하는 친한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아니니 참으로 상한 일이었다.


KakaoTalk_20251003_172856961_06.jpg 냄새가 나긴 하지만, 이제는 사랑하게 된 석양이 직통으로 보이는 안방 창문


그렇게 나름 몇주 동안 냄새를 없앤다고 청소를 하면서 법석을 떨고, 방향제를 구입하느라 돈을 쓰고 부산을 떨면서 지냈다. 그리고 몇사람 지인이 새로 이사왔슴을 환영하느라 우리집을 방문했다. 나는 나름 음식을 준비하고 또다시 청소를 하고 바쁜 하루를 보냈다. 방문한 지인들은 집을 너무 아기자기 꾸몄다는등, 음식도 맛있다는등 칭찬을 안겨주었다. 하루 종일 애를 쓰긴 했지만, 좁고 낡은 집임에도 나의 손길이 닿고 쓸고 닦는중에 내집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한주 동안 전 주말의 피로가 남은 탓인지 다가온 주말에는 청소도 안 하고 대충 헐겁게 주말을 보냈다.


다시 한주가 지나고 주말이 되어 청소를 해야겠다는 맘을 먹고 집안을 둘러보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냄새가 더 이상 나지 않는 것이다. 두 주 정도 바쁜 와중에 시간이 지나버렸는데, 청소는 안 했는데 오히려 역한 냄새는 없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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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을 초대한 저녁 밥상


출근한 월요일, 몇몇 동료들과 휴식시간에 잡담을 나누면서 냄새얘기를 꺼냈다. 한참을 듣고 난 후, 나이가 많은 연배 직원이 한마디 툭 던진다.


“ 자고로, 집은 사람이 들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사람의 냄새가 배고 나면 얼마 지나고 나서부터는 그 사람의 냄새가 집안을 꽈악 채우는 것이거든…. 아마도 그대의 냄새가 이제서야 새 집에 꽈악 찼나 보네..ㅎㅎㅎ”



그런가 싶다.

유별난 오감도 오감이지만, 새로 이사한 집에서 마음을 붙이고, 이제부턴 이 집이 내 집이다라는 마음을 굳히고 정을 붙이고 쓸고 닦는 시간이 쌓이면… 그때부터 그 집의 냄새는 나의 냄새로 꽈악 차게 되는 것.


또 다른 깨달음이다.


새로운 집에, 마음을 붙이는 과정은 나의 냄새를 채워가는 과정이다.


KakaoTalk_20251003_173500749.jpg 퇴근하는길, 지는 석양은 최고의 베네핏..^^


KakaoTalk_20251003_173500749_01 (1).jpg 마음을 붙이는 과정, 석양이 응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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