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닮은 나는 한번 결정하면 뭐든 속전속결.
집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아직 세입자가 있어 난감해 한다. 하지만,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할 수는 없는일. 졸라서 점심시간에 잠깐 사진도 안찍고 조용히 살짝 둘러보겠다 약속을 했다. 다른 해에 비해 날씨가 많이 선선한 탓인지, 바닷가 가까운 동네 답게 단지 입구에서부터 황소 바람이 현관문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입고간 린넨 윗도리가 바람에 펄럭대고 머리카락이 입에 달라붙을만큼 센 바람이 나를 맞이했다. 현관문을 열자 누군가 요리를 하는지 기름 냄새가 훅~하고 먼저 다가왔다.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세입자가 있기에 꼼꼼히 볼수는 없는 형편이 아쉽다. 집구조는 나쁘지 않고 창문도 시원하게 뚫려 있다. 2층집이라 층고도 높고 안방이 좀 작기는 하지만, 큰 문제 될것은 없어보였다. 냄새가 좀 나고 어수선한 상태는 현 세입자의 특징이라 넘겼다. 흘낏 보았던 침실에 어수선한 이부자리며 현관문 안쪽에 겹겹이 쌓인 신발들이 눈에 띄였지만, 깔끔함에 진심인 나는 굳이 마음에 걸려하지 않았다. 치우고 냄새는 빼면 되지..
그리고, 다음날 아침부터 일찍 서둘러 aplication 을 작성해 이메일로 전송했다. 맘같아선 전화해서 당장 입주 가능한 날자를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집주인이 언급한 날자가 7월 중순이었던 터라, 총 60일중에 시간이 조금은 남은 상황에 너무 서두르다 행여 집주인 마음에 거슬릴까하는 찌질한 마음에 꾹 참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3일째가 되니 마음이 다시 조급해 지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냈다.
‘ 혹시 아직도 서류 검토 중이신가요 ?”’’ ……………………’
오전에 문자를 보냈는데 오후까지도 답변이 없다.
안되겠다 싶은 마음에 다시 인터넷을 뒤져, 렌트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브로커를 한사람 찾았다. 이상황엔 한국 사람인것 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이 더해진다. ㅎㅎ.
' 앗!! '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5분거리 콘도미니엄 단지에 7월말을 타깃으로 세입자를 찾는 주인이 있단다. 짐을 싸는 기간이 넉넉한게 무엇보다 필요한 나로서는 7월말이라면 딱 좋은 조건이다. 금액도 어제 얘기된 집주인하고 별 차이가 없는게 확인되니 마음이 급해진다.
그날 오후 당장 리스트에 나온집을 보러갔다.
웬일…!!! 완전 내 스타일이다.
일단 깔끔하고, 흰색 벽면에 넓다란 안방과 탁트인 거실 그리고 크지는 않지만 요소요소마다 옷을 보관하거나 이불을 보관할만한 공간이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바깥이 내다뵈는 커다란 창이 있는 작지만 갸름하고 깔끔한 부엌까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가까운것도 좋고, 십수년간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질게 뻔할 것이기에 이미 얘기된 동네보단 이 근처가 낫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전체 단지내의 안전한 경비 체제도 좋고 방문자가 주차할 공간도 넉넉하니 입주만 된다면 좋은 조건으로 보였다.
딱 하나, 아쉬운 조건. 아웃도어 장비가 어마한 내 짐들을 넣을 공간이 만만치 않다는것. 차고에 딸린 스토리지 공간이 조금 있지만 접이식 비치체어나 유모차 정도외엔 넣을 공간이 부족한 것. 정 안되면 테라스를 스토리지로 활용하면 되려니라는 맘도 먹었다. 마켓에서 봐온 식품을 집안으로 옮기려면 비가 내릴땐 비를 맞을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마징가 아줌마에겐 큰 장애물이랄것도없었다.
엊그제 서류를 접수한 집에서 연락이 안오니 나로선, 맘에 드는 다른 집이 나왔으니 더 조급해 질 수 밖에 없었다. Application 을 또 보내놓고 이제나 저제나 지리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그렇게 또 이틀을 보냈다. 이젠 밤에 잠이 잘 오질 않았다. 집을 비워야 하는 날이 7월말인데, 지금은 6월 20일 넘었고,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에 급한 마음에 노트에 요약된 아이템 이름도 쓸 시간이 없어졌다. 되는대로 짐을 싸는 형국이었다. 아들은 여전히 쉼없이 무엇인가를 하는것 같지만, 테이프로 위를 마무리한 박스는 단 한개도 나오지 않았다.
3일째, 회사 근처 집주인에게 서류를 보낸지 5일만에 연락이 왔다.
“ 서류는 문제가 없는데요, 크레딧 리포트하고 나이가 서른이 넘었으니 아드님 서류도 작성해 보내주세요” “ 그럼 서류는 다 된거로 생각하고 입주를 염두에 두면 될까요?” “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너무 금액을 싸게 해드린것 같은데, 00.00 $ 만 더 내시면 안될까요? 그리고 계약금은 두달치 주셔야 하고요.” “.............”
예상치 못했던 집주인의 말이었는데, 난 급한 마음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 ‘네, 그렇게 하죠’라고 단숨에 대답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아마도 진저리나는 지금의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라는 마음의 간절함이 날 그렇게 하게 했는가 싶었다.
그리고 다음날 6월말일을 1주일 앞둔 날, 세입자를 나와 아들로 정했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입주일을 7월 1일로 해야 한다라는 조건이 새로 붙었다.
그래, 어찌되겠지. 나도 모르겠다. 이왕 이렇게된거 미친듯이 이사하고 짐은 천천히 풀어나가면 되겠지.’
자포자기 또는 무모함. 그렇게 이사 날자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