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은 따로 있었나 봅니다.

by 이향


뒤죽박죽 어지러운 머리 만큼이나 집안도 무질서의 끝판왕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었다. 나름 모든일에는 조직력이 필요하다는 논리에 진심이라, 식탁이 위치한 그릇장부터 시작해 각 박스마다 일련 번호를 붙이고 그것도 모자라 박스를 닫기 전에 사진을 찍어 저장했다. 그리고, 박스 넘버를 적고 그 옆에 설명이 곁들여진 아이템 리스트를 적는 방식이다.

쩍벌려 누운 박스를 테이프를 붙여 세운후 선별해 놓은 물건을 집어넣는다. 목록 노트에 집어넣은 물건들에 대한 요약 단어를 메모한다. 테이프로 윗면을 봉한후 넘버를 크게 적는다. 좁은 집안이지만, 나름 지정해 놓은 한쪽 모서리에 용을 써서 박스를 얹어 쌓아올린다. 웃프지만, 힘은 남자 못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렇게 포장한 박스를 치운 다음날, 갑자기 급한 무엇인가를 찾는데 나오지를 않는다, 대단히 중요한건 아니지만, 회사에 가지고 가야할 것으로오늘 아침 결정되었기에 실상 박스에 넣으면 안되는 거였는데…아~ 어쩄거나 찾아야 한다. 열심히 적은 노트를 뒤적이지만 워낙 갈겨쓰기도 했거니와 중요한 것만 적었기에 마음이 급하니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20여개 박스를 용을 쓰면서 뒤집고 열고 닫고를 하면서, 한바가지 땀을 쏟고서야 간신히 찾아냈다. 바로 어젯밤 구석에 쌓아올린 박스인데, 그 박스를 찾는데 30분은 족히 걸렸다.

KakaoTalk_20250825_161323679_02.jpg 커다란 양푼이 저 큰솥 밑에 있으니 보이겠느냐고...ㅠㅠ

내가 나를 믿지 못할 상황은 자꾸 일어났다.

갑작스럽게 누가 찾아와, 생전 먹지 않던 국수를 말아 먹을 일이 생겨 커다란 양푼을 찾아야 한다던가. 몇년 동안 쓸일이 없던 수표를 써야 할일이 생긴다거나…어딘가에 쌓아 놓은 박스안의 물건를 찾아야 하는 스트레스는 가슴팍위에 올려진 커다란 바위 덩어리처럼 기억력 줄어든 나를 더 짓누르곤 했다. 이사를 가야하는 날은 다가오고 갈 집은 나오질 않으니, 강한 멘탈로는 남못지않은 나도 그리 흔들리는 날이 시작되는 즈음이었다.


'이런데도 있는데 연락해 보세요' 라면서 회사 동료가 건네준 전화번호가 있었다. 회사에서 가까운 지역이라 맘은 동했지만, 이미 몇군데 집을 돌아보면서 높은 가격에 놀랐던 터라, 쉽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막상 통화도 연결 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자를 남겼고, 하루 정도후에 문자가 도착했다. 예상대로 가격은 내 예상보다 너무 높았고, 나는 그 집은 미뤄둔채 다른 집들을 눈여겨 보고 있는 중이었다.


회사에서 녹초가 된채로 퇴근해서 막 저녁준비를 하려고 하는 시각 전화벨이 울렸다. 알지 못하는 번호이지만 혹시 내가 연락했던 집들의 주인일수도 있으니 하면서 받았다.


‘무슨 일에든 기어코 임자는 따로 있다~’ 라는 엄니 말씀이 생각나는 저녁이었다.


내가 원하는 방 3개와 화장실 2개 그리고, 나와 아들이 안전하게 주차할 수 있는 차고까지 딸린 단독 주택 형태의 집을 구하게 된 것이었다. 집주인이 원하는 가격보다 조금 싸게 계약하는 대신, 집안 내부의 공사는 일체 없는 것으로 얘기가 잘 되었다.


번쩍거리고 세련된 집을 찾을 주제도 아니고, 내 집도 아닌데 수리가 좀 덜되었다 해서 크게 문제될것은 없다고 판단했다. 쓸고 닦고 깨끗이 관리해서 맘붙이고 살면 내 집이 되는것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굳혔다. Application 을 제출하면 곧바로 서류를 검토하겠다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짐을 싸는 속도도 빨라졌다. 마음이 안정되니 거북이걸음인 아들의 짐싸는것에 대한 마음도 너그러워지는가 싶었다.


아무런 보호대도 없이 아스팔트위에 내동댕이쳐진듯 했던 내 마음에 아주 조그만 희망의 빛이 비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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