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가와바타 야스나리'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안 읽어본 사람은 있어도, 그 유명한 이 첫 문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 첫 문장을 너무도 좋아했지만, 실제로 느낌을 똑같이 느껴본 적은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파트너가 생긴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말 그대로 사막기후의 지역에 사는 내게 겨울은 매번 이 '설국'의 첫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경험을 안겨준다. 6시간여 거리의 맘모스를 가기 위해 깔딱 고개, Tom's Place가 있는 Sherwin Summit을 지날 때마다 아랫동네인 Bishop으로부터 출발해 이 고개를 넘기 위해 정상에 서면 어김없이 눈발이 휘날리고 풍경은 삽시간에 설국으로 전환된다.
그 겨울의 왕국, 맘모스를 매년 다니면서 얻는 삶의 치유나 교훈은 말로 다 표현키 어렵다. 그래서, 한번 다시 맘모스를 주제로 연재를 하기로 했다. 이하, 나의 설국 여정기.
마른땅이 드러나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스키장을 몇 번이나 다녀오면서, 이대로라면 지독한 가뭄 끝에 결국 파산했었던 이 도시의 십수 년 전의 고통을 또 겪게 되는 것 아닌가 했었다. 그런데 기적같이 크리스마스 주간, 모두가 연휴를 즐기러 떠나온 그 시점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에게 애타게 기다리던 구원의 손길과 같은 눈이지만,
낮은 고도의 Los Angeles 구역은,
12월 23일부터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로, 화재가 발생했던 지역엔 산사태가 발생했고, 사막기후라 배수가 수월하지 않은 도로는 침수가 되기 시작했다. 곳곳에 정전사태가 발생했고, 심지어는 도시가스가 누출되어 고속도로가 폐쇄되고 지역주민이 대피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억수로 비가 내리는 Los Angeles 뒤로하고 320마일 거리의 북쪽 도시로 길을 떠난다. 어차피 인생은 독고다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혼자 남은 작은 아들의 외로움을 못내 모르는 척한다. 한참을 달리고 있자니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했고, 비숍을 지나 Sherwin Summit에 올라서자 이내 빗방울은 눈송이로 바뀌었다.
우리의 캠퍼밴은 노숙에도 안전빵이라 새벽같이 다음날 운행을 시작해야 하는 출정의 첫밤은 트럭커들이 쉬어가는 Rest Area에서 늘 지내곤 한다. 내리는 눈이 심상치 않아 목적지에서 한 시간 반 떨어진 Rest Area에서 밤을 지낼까 하다가, 영하로 떨어지는 새벽운행이 더 위험할까 계속 북진했던 것. 아차 싶긴 했지만 차를 돌리기엔 이미 늦은 시각.
그렇게 도착한 맘모스 타운. 내리는 눈이 심상치 않은 것뿐 아니라, 눈을 치워야 할 제설차량이 감당을 못하는 모양. 우리 팀이 만만하게 노숙해야 하는 구역으로 가는 길은 아직 치워지지 않았고, 고속도로 바로 옆 쉼터로 다시 돌아가기엔 4x4 차량도 위태롭기만 하다.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심한 낭패인 것 같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일부터 묵기로 한 RV Park에 연락했는데 다행히 저녁 대기 직원이 연락을 받아 화장실키와 함께 스폿을 배정받았다. 할렐루야~
오는길 내내아슬 아슬 위험천만 했지만 오랜만에 오붓한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브를 쫄깃하게 보내는 연휴 출정의 첫밤을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