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연말 연시에 집에 있어본 적이 없네요.

오늘도 여전히 시에라 네바다 입니다.

by 이향

크리스마스 날 아침은 알 수 없는 묘한 설렘과 함께 잠을 깨곤한다. 어린 시절 산타할아버지를 철썩같이 믿었고 부모님보다 먼저 일찍 잠을 깨서는 머리맡에 놓여진 선물을 뜯으며 기쁨을 가졌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이가 들면서 크리스마스날 아침 잠을 깨서 선물을 찾는 일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설레임은 어느샌가 어려운 살림에 세남매를 키우시면서 특별한 날엔 잊지않고 선물을 주셨던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으로 대체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모님은 어려운 살림에도 꽤나 낭만이 있으셨던것 같다.한가한날 오후에는 안방과 건넌방 사이 비좁은 마루에 아버지가 즐겨듣는 클래식 음악이나 재즈가 흘러나오곤 했다. 연말이면 뜨개질이나 재봉틀로 만든 작은 주머니나 장갑등을 우체부에게 잊지 않고 건네셨던 어머니는 내게 닮고 싶은 롤모델이었던 것 같다.

쌀독 밑바닥이 자주 보이곤 했었던 얄팍한 살림이지만 반드시 다섯 식구가 먹고 남을만한 밥을 짓던 어머니를 닮은 나는 초라한 살림에도 남들 보기에 엄청난 배포와 인심을 지닌 사람으로 취급받는 늙은 아낙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연말이 다가오면, 나는 누구보다 분주해진다. 부모님보다 풍족한 살림이랄 수도 없는 주제임에도 마음은 대통령 영부인급. 선물을 전달할 사람들을 미리 리스트하고, 장을 보다 맘에 드는것이 있으면 주저함 없이 선뜻 구입하기도 한다. 그래도 여지껏 궁핍하지 않았으니 나는 나름 부자이고 채워지는 열두 광주리라 믿는 구석이 있다. 비록 은퇴를 위한 준비는 커녕 집한채도 없는 주제에 말이지.ㅎㅎ



크리스마스 이른 새벽부터 스키출정을 위해 물한모금 마시지 않고 리프트가 있는 롯지로 향했다. 어마한 폭설과 강풍이 몰아치는 지난밤, 잠자리를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는데, 다행히 RV Park에서 포근하고 안전하게크리스마스 이브를 지내고나니 더욱더 감사한 성탄절 아침이다. 온 세상이 화이트 크리스마스이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눈이 시려올 지경이다. 하지만, 계속 되는 폭설에 리프트가 언제 오픈할런지 알수 없는 스탠바이 상황이라 오도 가도 못하고 차안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뻑뻑한 베이글과 사과로 아침을 먹다보니 또 한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밤늦은 시간 옹기종기 함께 모여 새벽송을 돌고 돌아오면 새벽기도 시간. 목사님의 설교는 안중에도 없이 다들 되는대로 여기저기 엎어져서 쿨쿨 잠을 자고 떡국으로 아침을 먹은후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피곤을 모르던 그 시절엔, 오후에 시내로 교회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몰려가곤 했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흘러, 새벽송을 돌거나 성탄예배를 드리는것과는 먼 나름 자유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내 나이 환갑을 넘어 손자 손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정작, 결혼은 먼나라 얘기일 뿐인 장성한 두아들은 자신들의 삶에 진정으로 충실한 것인지 아님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아들들 덕에 손자 손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비할 필요도 없고, 인대 늘어나도록 양육을 떠맡을일도 없이 훌쩍 떠날 수 있는 부담없는 삶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일이다.



아들들이 철들고 각자의 삶을 유지하기 시작한 이후, 성탄절이나 연말 연시에 집에 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스키에 진심인 파트너를 따라 매주말 스키트립을 떠나곤 하니 명절이라고 다를것은 없다. 크리스마스가 목요일인 올해는 금요일(26일) 하루만 휴가를 쓰면 수요일 저녁부터 무려 4박 5일을 쉴 수가 있게 되었다. 신년 인사를 뺴먹을 수 없는 처지인 회사에서의 위치를 고려해, 크리스마스 다음날만 휴가를 쓰기로 파트너와 약속을 하고 떠난 트립이었다.


같이 사는 둘째 아들은 이번에 제대로 뾰루퉁한 티를 냈다. 엄니와 함께 마트를 가고 맛난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것에 진심인 둘째 아들이다. 장성한 아들이지만 말이 적은 큰아들과 달리 수시로 조잘대로 내 옷차림 품평을 비롯해 나의 라이프버디이다. 크리스마스를 함께 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어짜피 인생은 독고다이. 환갑 넘은 엄니 인생에 아들을 끼워넣기엔 Life is too short.!! 나도 또한,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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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떠나왔는데,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리니, 스키리프트도 전면 스톱이고 차안에서 볶작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그러니 차안에서 먹고 마실일만 남은셈이다.

점심시간 조금지나 숙소 RV Park으로 철수해, 삼겹상에 김치를 볶아 소를 곁들여 거나하게 이른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너무 일찍 잠든탓인지 둘다 한밤중에 잠을 깨서 새벽같이 뒤척였다. 밤새 소복 소복 눈은 계속 쌓이는 중이었다.


그렇게, 야속하게 아들을 두고 떠나온 크리스마스날 밤이 아쉽게 지나가고 있다.

이젠 누가 내게 선물을 주는 일도 거의 없고, 선물을 줘야 하는 사람만 늘어난 신세이다. 하지만, 이맘때가 되면 고향에 계신 홀로 되신 어머니 생각이 사무치게 나고, 식구들과 도란 도란 따뜻한 아랫목에 모여앉아 수다떨던 어린 시절이 말할 수 없이 그리워 지곤 한다.

고요한밤, 거룩한밤, 어둠에 묻힌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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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때보다 아름다운 화이트 크리스마스이고 곁에는 다정한 파트너가 함께 있지만,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 무엇인지 모르는 아련한 슬픔이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중이다.

맬랑꼴리 크리스마스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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