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넘어 칠순, 이 눔의 열정 누가 좀 말려주오.

by 이향

그럴 줄은 알았다 애당초. 웬만한 상황에선 물러서는 법을 모르는 분들이라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거친 암벽 앞에서는 휘파람을 불어 제끼고, 매서운 바람만이 살아남을듯한 높은 산봉우리 깊은 계곡에서도 수다 떠는 꿀잼을 즐기시는 분들. 정상밑 희박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텐트도 없는 채로 침낭 안에 뎁힌 물통을 끼고 비박하는 것을 남만으로 읊을 줄 아는 분들.


그래서 이분들을 동경하고 사모하기까지는 나.. 새내기 혹은 숭배자(어느 누구는 신도라 부르기도 한다.)

화요일 저녁 5시경 출발하여 라스베이거스에 자정 가까운 시각에 도착하였다. 늘 머무는 트럭스탑에 차를 세우고, 저녁을 해 먹고 잠자리에 든후 새벽녘에 눈을 떴다.

스토어에서 커피를 채우고(트럭스탑에서는 개인 컵을 가지고 가면 공짜로 새로 내린 프뤠시한 커피를 가득 채울 수 있다.) 유타를 향해 출발했다.

KakaoTalk_20260420_165605462.jpg 익숙한 라스베거스 밤의 현란한 불빛. 내 취향은 아니다..^^

3시간여 달리면 애리조나주를 잠깐 거쳐 유타주에 닿게 된다. 유타주에 들어서게 되면 곧바로 고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일명 깔딱 고개를 몇 개나 넘어야 한다. 유타주에 들어선 시각이 오전 10시경. Salt Lake, UT로의 도착예정시간은 오후 3시.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도 그 정도이니, 도착해서 한국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숙소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편히 쉬다 보면 시애틀팀이 도착할 것이라 여유 있다는 게 계획이었다.


하나 여행의 찐 잼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풀어내는 것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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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높아지는 오전 11시경부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애타게 기다렸던 눈이라 반갑기 그지없었고, 아침까지 챙겨 먹은 나는 옆자리에 앉아 사춘기 소녀처럼 재잘대기도 했다. 운전하는 이분도 눈이 오니 스키를 재미있게 타게 될 생각에 신이 나는지 콧소리까지 흥얼대며 기분이 최고였다.

KakaoTalk_20260420_165605462_03.jpg 눈이 내리며 설국이 건설중인 15 번 도로 북으로 북으로 전진중이다.

그런데… 그런데… 굵어지는 눈발이 심상치 않나 했더니 점점 시야가 스려 지고 화이트 아웃 현상이 발생하는가 했더니 여기저기 나자빠진 대형 트레일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눈이 쌓여가는 길탓에 점점 스피드는 떨어지기 떨어지고 도로 위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내리는 눈과 낮은 기온에 차량 와이퍼가 얼어붙었는지 말을 듣지 않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오전 11시경부터 오후 3시가 다되어서까지 눈길을 운전해 헤쳐나갈 수밖에 없었다.

전화통화를 해보니, 시애틀에서 내려오는 팀도 고생은 매한가지였다. 위도상으로 우리보다 훨씬 높은 곳이라 내리는 눈의 양도 도로 사정도 더 나쁜 것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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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패잔병같이 드러누운 차량들. 사진으론 현실감이 꽤나 떨어진다.실제론 살벌한 전쟁터같다.

Salt Lake에 도착한 건 오후 4시가 넘은 시각. 지친 몸을 이끌고 한인마트에서 장을 보고 숙소에 체크인하고 짐을 내리고 냉장고에 집어넣고 허둥지둥하다 보니 벌써 오후 6시. 시애틀 선배님들이 도착했다.

KakaoTalk_20260420_165605462_09.jpg 언제였냐는듯, 소복히 쌓인 숙소밖의 풍경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 아이고야~ 너네들 못 보고 황천길 가는 줄 알았어. 차가 밀리는 것도 모자라 중간에 미끄러운 경사길에서 다른 차들이 이리저리 미끄러져 내리는 바람에 몇 번이나 사고가 날뻔했어.” “

막힌 곳도 몇 곳이나 돼서 하이웨이를 돌아 로컬을 타고 오고 하느라 고생이 장난이 아니었다고…”

일흔이 넘은 큰 선배님이 유난히 힘드셨는지 얼굴을 보자마자 고생담을 쏟아놓으셨다.


그래도 열정으로 모인 팀이라 그런지 아니면 가진 건 체력지존 분들이라서인지, 저녁으로 감자탕을 뜨끈하게 끓여서 한 그릇씩 비우시더니 살 것 같다 하시면서 흥겨운 수다는 끝날 줄 몰랐다.

늦은 밤 잠을 청하는데 운전을 하나도 안 한 나도 피곤한데 하루 종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운전한 이분, 눕자마자 곧바로 기절각이다.


일정을 위해 새벽같이 일어난후라 일행 모두 피곤이 풀리지 않은 탓에 얼굴이 퉁퉁 붓고 커피도 제대로 들이켜지 못할 만큼 기운들이 없으시다. 첫날 일정은 가장 먼 곳 스키장. 45분 정도 걸리는 Snow Basin 스키장에 도착한 게 오전 7시경. 차를 세우고, 커피를 내리고 사과를 깎고 베이글로 아침을 준비했다. 작은 캠퍼밴 안에 5명이 앉으니 꽉 차서 비좁지만 사이좋은 선배들이시라 크게 불편하진 않다.


참고로 Snow Basin 은 내가 Utah에서 가장 좋아하는 스키장이다. 말로 다 할수 없으리만치 고급스런 내장재로 마감된 롯지안의 풍경은 보는 이를 압도할만하다. 화장실 문이 회장님실의 문만큼 두터운 나무재질이고 장식도 금장이니 더할 나위없이 호사스런 화장실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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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화장실, 오른쪽은 화장실 밖 휴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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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궁궐같은 느낌의 계단. 그리고, .스키복대신 화려한 드레스가 어울리는 롯지안의 식당.



아침을 드시고 출정하는 시간이 되어 모두들 장비를 챙기고 부츠를 신고 나서는 선배님들. 새벽녘에 비해선 훨씬 생기가 돌아오고 목소리에 힘도 들어간 듯. ㅎㅎㅎ.


일정을 마치고 하루 출정을 되돌아보며 마주 앉아 삼겹살과 김치를 굽고 된장찌개를 끓여 맛난 저녁을 함께 나눈다. 언제 피곤했냐는 듯, 살얼음판 눈길을 헤치고 도착했을 때의 절망스러운 눈빛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삶과 죽음이 가까이 있는 등반의 경험을 함께 나눈 탓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케미가 맞는 것일까? 얼굴을 붉혀가며 어느 누구의 이름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씹어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옛적 함께 등반하던 순간을 추억하거나 지금은 잊힌 혹은 스러져간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해 내는 가슴 뭉클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모인 팀원들의 나이를 따져보자면, 칠순을 이미 넘긴 선배가 두 분, 이제 막 65세가 되어 정부 보험혜택을 받는 선배 한분 그리고 환갑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막내(ㅎㅎ) 두 사람.


그래도 열정만큼은 젊은이 못지않다. 1000마일 가까운 거리를 단숨에 달려와 얼싸안고 만남의 기쁨을 나누는, 그리고 피곤함을 잊은 채 새벽공기를 가르고 숙소를 나선 후 하루 온종일 눈밭에서 스키를 지치는. 줄어들지 않는 열정 그것을 지키려면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임을 선배님들을 비롯해 나 또한 기억하고 또 기억하기를 소망할 뿐이다.

KakaoTalk_20260420_170658657_07.jpg 유명한 스키장답게 이른 아침 개장전부터 인산인해 줄이다.
KakaoTalk_20260420_170658657_06.jpg 창밖으로 트레일을 바라보는것만으로도 호사질..

아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