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르게 넘어온 8월을 돌아보면, 깊이 있는 사색을 위해서는 역시나 충분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나름 확신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 여유의 근원이다. 인간의 여유는 물질에서 비롯되는지 아니면 정신에서 비롯되는지.
물적 요소에서 비롯된 여유를 생각하면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과 ’태평천하‘로 우리에 익숙한 작가 채만식이 떠오른다. 그가 친일의 길을 걸었던 이유도, 무척이나 가난했던 그의 말을 감히 빌리자면 정말이지 작가로서 먹고살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장 종이도 맘껏 구매하지 못했다고 하니. 요즘 표현으로는 ’지속 가능한‘ 지식인의 삶을 위한, 즉 꾸준한 저술활동을 위한 친일이었다는 셈이다. 물론 가난 속에서도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킨 사람들도 많았지만, 물질적인 기반이 받쳐주면 어떤 일이든 쉬워진다는 걸 부정하기는 힘들다.
정신적인 측면에서 비롯된 여유를 생각하자면, 각종 종교에 자신의 일생을 희생하는 사람들, 특히나 예전에 시청한 적 있는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에서 묵묵히 수행하는 자들이나 오체투지로 고행길에 나서는 티베트 불교 신자들이 떠오른다. 비록 그 사람들은 속세가 제공하는 문명의 이기에는 관심 없겠지만, 황금 따위로는 살 수 없는, 오로지 개인의 신념과 사색으로만 도달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 그리고 그 세상을 꿈꾸는 자들은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만이 깊이 있는 사색을 위한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 지식이 상품이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에서 돈을 왕창 많이 벌면 될까? 아니면 그깟 돈 따위, 욕심을 줄이고 저 어딘가 숨어있는 내 가치관을 찾아 그걸 우직하게 밀고 나가면 그 과정에서 깨닫는 게 있을까?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하고 산다는 거 자체가 젊은 날의 치기이자 여유일지도 모르겠다.